특허제도 있는데도 기술유출…왜?

"특허로 등록하는 순간 그 기술은 다른 기업에 뺏긴다고 봐야죠. 저희 같은 힘없는 중소기업이 특허를 통해 핵심기술을 지키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한 중소기업 대표의 말이다. 기술보호를 위한 특허 제도가 오히려 기술유출과 도용에 이용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특허를 출원하는 동시에 핵심 기술의 주요 내용이 공개되는 탓이다. 경쟁업체나 대기업이 공개된 특허기술을 조금만 업그레이드하거나 변형해서 새로운 특허를 출원하면 금방 '죽은 기술'이 된다.


특허 출원 기술의 보호기간이 20년이라는 점도 독소조항이 됐다. 20년이 지나면 특허기술이 공공자산이 된다. 일반적으로 중소기업이 특허를 출원한 뒤 사업성을 검토하고, 이를 바탕으로 제품 양산까지 이어지는 데 최소 5~7년이 걸린다. 중소기업엔 20년이 결코 긴 기간이 아닌 셈이다.

때문에 많은 수의 중소기업들이 특허제도를 활용하기 보다는 기업의 핵심기술을 영업비밀로 유지하려 하고 있다. 특허를 출원하더라도 핵심 기술을 빼고 나머지 기술만 출원하는 경우도 많다.

특허청에 따르면 지난해 이뤄진 전체 특허 출원은 20만4589건이다.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 것은 대기업으로 23.5%인 4만8043건을 기록했다. 중소기업은 3만4547건의 특허를 출원했다. 일반 중소기업의 출원 평균건수는 0.09건에 불과했다.


자본력을 앞세운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의 특허 우회 기술활용은 중소기업의 주요 피해 사례다. 특허로 등록된 기술의 소재나 구현 방법 등을 달리해 교묘하게 특허 침해를 피해가는 방법으로 기술 약탈을 시도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재정이 열악한 중소기업으로서는 특허 침해를 증명할 여력이 없어 주저앉고 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핵심기술을 영업비밀로 보호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기술유출 범죄 처리는 2012년 448건에 달한다. 피해액은 평균 13억2000만원 수준으로 중소기업은 기업의 존폐가 좌우될 정도로 상당한 액수다.

해외로 유출되는 특허는 더욱 심각한 문제로 지적된다. 국내 중소기업들의 경우 재정적 여건으로 인해 국내 특허 출원을 하는 경우에도 해외 출원을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평균적으로 150만~200만원 정도인 국내 특허 출원 비용에 비해 미국의 경우 10배에 가까운 2000만원 가량이 필요하다.

최근에는 중국으로의 특허 유출이 빈번히 이뤄져 문제가 되고 있다. 한국산업기술보호센터 관계자는 "최근 중국에 한국 특허 번역을 전담하는 인력을 두고, 한국특허를 변형해 도용하는 수법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며 "국내 특허 출원 당시 중국 진출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가 당하게 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 맞춰 중소기업들이 중국 특허를 준비하는 것도 쉽지 않다. 중국의 경우 특허법이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어 중소기업들이 그 속도를 따라 잡기 어렵다는 말도 나온다. 김상훈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중국의 특허 제도는 정부 주도하에 급진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중국 내에서도 많은 혼란이 있을 정도로 활용이 쉽지 만은 않다"고 전했다.

중국 특허에 대한 전문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도 중소기업의 기술보안을 어렵게 만드는 문제로 지적된다. 현재 특허관련 전문 연구 인력들은 대부분 전통적으로 주요 시장인 미국 등 영어권 국가에 능숙하다. 신흥 시장인 중국의 경우 언어, 전문성 등을 종합적으로 갖춘 인재를 찾는 것이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중소기업이 핵심기술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특허에만 의존하기보다 다양한 보완책을 통해 종합적인 보안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하나의 보호수단에만 의지하기에는 기술의 핵심기술의 성격이 다르고, 그에 따른 보호 방법도 차이가 날 수 있어서다.

이준택 한국정보경영연구소장은 "특허는 정보 노출과 동시에 보호를 받는다는 양면성이 있다며 전세계적으로도 특허를 통해 기술유출이 되는 것에 대한 부분은 어쩔 수 없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소장은 "특허 제도 자체의 문제점을 개선해 나가는 것 보다는 기업들이 영업비밀법, 산업기술 유출 방지법 등의 다양한 보완책을 통해 종합적으로 대처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상훈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단순히 특허 제도만을 통해서 기업의 지적재산권을 보호하기는 힘든 것이 현실"이라며 "성공한 회사들을 살펴보면 특허 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법을 활용해 핵심기술을 보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 연구위원은 "특허나 영업비밀 외에도 상표권, 디자인권 등 다양한 지적재산권을 연계해야만 효과적으로 기업의 기술침해를 막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