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 내려꽂기' 제동 금융사 지배구조 모범규준, 논란 점화

머니투데이

김진형 기자
권화순 기자

금융당국이 입법예고한 '금융회사 지배구조 모범규준'을 놓고 논란이 점화됐다. 특히 대주주가 있는 대기업 계열금융사들이 사실 상 대주주의 주주권을 제한한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다음달 10일까지인 입법예고기간 동안 치열한 논쟁이 예상된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회사 지배구조 모범규준에 포함된 '임원후보추천위원회(이하 임추위)'가 논란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금융위는 모범규준의 적용을 받는 금융회사에 임추위를 상설 위원회로 설치하고 '임원의 자격 요건, 후보군 관리, 이사회 추천' 등을 수행토록 했다.

최고경영자(CEO) 등 임원의 자격요건을 미리 설정해야 하기 때문에 관련 분야 경험과 전문성이 떨어지는 후보는 CEO로 선임되기 어려워진다. 특히 임추위에 사외이사 뿐 아니라 공익대표까지 포함시키도록 유도할 방침이어서 사실상 대기업 오너가 계열사 사장단을 마음대로 임명해 온 관행에 제동이 걸리게 됐다.

모범규준의 적용을 받는 대기업은 삼성·한화·교보·롯데·동부 ·흥국·메리츠·현대 등으로 생명보험·손해보험·신용카드사· 증권사 등 주요 금융계열사만 해도 30개가 넘는다.

◇'주주권 제한'vs'금융회사는 다르다'= 당장 내년 인사를 앞두고 발등에 불이 떨어진 대기업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기업 계열 금융사들은 각 금융 협회를 통해 관련 계열사 및 동종업체들의 의견을 수렴해 전달할 계획이다.

'과도한 주주권 침해'라는 게 반대의 가장 큰 이유다. 대기업 금융계열사의 주축인 보험사의 경우 CEO후보추천위원회가 전무하다. 그룹에서 CEO를 일괄적으로 임명하고 있어서다. 이들에게 모범규준안은 '날벼락'인 셈이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대주주가 명확치 않은 은행과 달리 보험사는 대주주가 실질적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어 승계지연 우려 등 'CEO리스크'가 전혀 없다" 면서 "도리어 주주권 침해라는 부작용만 낳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 그룹의 장기적인 목표와 전체적인 시너지 효과 등을 감안한 인사를 해야 한다는 점에서 획일적으로 금융 전문성만 강조할 수도 없다는 지적이다. 재계 관계자는 "금융경험이 없는 CEO도 금융사에 가서 능력을 발휘하고 있는 CEO들이 얼마든지 있다"며 "이들이 금융사 CEO가 될 수 있는 기회 자체를 박탈하는 것은 행정편의주의적인 발상이다"고 비판했다. 특히 IT와 금융의 융복합 시대에 금융인만 CEO를 하라는건 구시대적 발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찬성하는 쪽은 금융회사는 일반적인 기업과는 다르다는 점을 강조한다. 금융회사는 고객의 돈으로 움직이는 만큼 이해관계자의 범위가 일반 기업들보다는 더 넓다는 것. 특히 대형 금융회사가 무너질 경우 공적자금 투입 등 공적인 피해를 야기하는 만큼 주주권의 문제로만 접근할 수 없다는 것도 근거다.

한 금융연구소 관계자는 "오너가 단기성과를 내기 위해 또는 특정인에게 대한 보상 차원에서 금융회사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을 선임해 CEO 리스크를 키우는 것을 막자는 것"이라며 "공적인 특성을 갖고 있는 금융회사에선 대주주의 권한은 일정 부분 제한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법적 근거없는 과도한 지침"vs"그래서 자율이다"= 주주권을 과도하게 제약할 수 있는 모범규준안이 법적인 토대가 모호하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상법상 대표이사 선임은 이사회의 권한이고, 회사의 정관으로 정한 경우 주주총회에서 선임할 수 있다. 즉 모범규준안이 정한 임추위는 상법상 이사회·주주총회 권한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현재 금융회사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제정안이 다수 국회에 제출 돼 있지만 금융당국은 법 제정에 앞서 모범규준 적용을 추진하고 있다. 모범규준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자율규제 성격의 가이드라인이지만, 금융당국은 공시의무 등을 부과해 사실상 구속력을 지닌다는 점에서 논란이 일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모범규준이기 때문에 오히려 금융사의 자율성을 준 것이라는 게 금융당국의 반론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지배구조에 정답은 없기 때문에 원칙만 제시 하고 세부적인 내용은 각 회사가 정하도록 한 것"이라며 "모범규준도 이행하지 못하는 회사는 연차보고서를 통해 합리적이고 구체적인 사유를 설명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임추위 경우에도 이사회 내부 또는 외부에 설치할 수 있고 참여하는 사외이사의 수를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아 금융회사의 자율성을 보장했다.

오히려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인 '지배구조법' 중 김기식 새정치 민주연합 의원안은 '임추위 설치 및 구성'을 법안에 명시하고 있다. 특히 여야 및 정부는 그동안 법안심사 과정에 임추위 설치에 의견 접근을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