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가차만 더 커진 시장…"대책전보다 분위기 안 좋아"

그래픽=최헌정

"정부 대책 발표 이후 재건축 기대감에 거래가 조금 느는 듯 했지만 지금은 매도자와 매수자간 호가차가 커져 오히려 대책 이전보다 분위기가 가라앉고 있어요. 이달 들어 매매거래는 1건도 없고 전화문의도 많지 않아 걱정이네요."(서울 양천구 목동 인근 S공인중개소 대표)


재건축 허용 연한 단축과 청약제도 개선을 골자로 한 '9·1 부동산대책' 발표 후 1만건을 넘어선 서울 아파트 매매거래량이 불과 1개월여 만에 38%가량 급감했다. 특히 대책의 최대 수혜지로 꼽힌 양천구의 경우 일일 평균거래량이 전월 대비 44% 이상 줄었다.

일각에선 최경환 경제팀의 '약발'이 벌써 다 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대책 발표후 집값이 오를 것이란 기대감에 매도인들이 호가를 올렸지만 매수세가 이를 따라붙지 못한 점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신규 분양시장과 수익형 시장으로 힘이 분산된 탓도 원인으로 꼽는다.

거래량이 줄면서 가격오름세도 주춤한 상황이다. 특히 대책 발표 이후 아파트값 오름세를 주도한 강남권 재건축단지가 힘을 잃고 있다. 강남구 개포동 주공1단지의 경우 이달 들어 매도호가가 3000만∼4000만원가량 하락했다는 게 주변 공인중개소의 설명이다.

인근 G공인중개소 관계자는 "대책 이후 호가와 시세가 반짝 오르다가 이달 들어 많이 내렸다"며 "매수자가 나오지 않자 급매물을 중심으로 매도자들이 다시 호가를 내리고 있지만 거래가 뚝 끊겼다"고 말했다.


기존 주택시장이 추진력을 잃은 데에는 신규 분양시장이 한몫했다는 평가다. 새 아파트라는 이점뿐 아니라 정부가 내년 청약문턱을 더욱 낮추기로 하면서 주택 수요가 분양시장으로 몰렸다는 것이다. 집값이 조금 오르면서 분양가상한제에 따른 저렴한 신규아파트는 가격경쟁력에서 기존주택보다 낫다는 의견이다.

양지영 리얼투데이 팀장은 "지금은 기존 아파트를 매입하기보다 신규 분양시장에 먼저 눈을 돌려봐야 할 시점"이라며 "그동안 경기침체로 내놓지 못한 다양한 분양물량이 쏟아져 나오면서 수요자의 선택 폭이 넓어져 청약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위례신도시, 부산, 대구 등 일부 인기 지역에선 '떴다방'(이동식중개업소) 업자들이 활개를 치는 등 청약열기가 뜨겁다. 하지만 이 같은 청약과열현상은 실수요보다 투자수요여서 이들 투자자들이 빠져나가면 가격이 하락할 수 있다는 게 업계 판단이다.

김은정 부동산투자연구소 대표는 "부산 등 일부지역의 청약시장 과열은 투기로 볼 수밖에 없다"며 "이들이 빠져나가면 가격이 크게 떨어질 가능성도 높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시기적으로 11월은 비수기이고 정부 대책의 한계가 여전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정재호 목원대 금융보험부동산학과 교수는 "11월은 비수기인데다 '9·1대책'이나 LTV(주택담보인정비율)·DTI(총부채상환비율) 규제 완화의 경우 거래활성화를 목표로 내세운 정책이지만 실수요보다는 가수요만 자극한 측면이 크다"고 꼬집었다.

이어 그는 "실수요자들이 움직이도록 하기 위해선 경기가 회복된다는 믿음이 있어야 하지만 지금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며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여야나 정부부처간 협의를 통해 부동산활성화 관련 법안을 조속히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택시장 내부적으론 전세난이 여전히 변수다. 집값이 올랐지만 거주비용이 가장 적게 드는 전세를 벗어나 상당한 금액을 대출 받아 집을 사기에는 아직까진 상승세가 약하다는 분석이다. 다만 내년 입주물량 감소, 재건축 대규모 이주 등으로 전세난이 계속 심해지면 전세를 계속 고집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올해 수도권에서 아파트 전세재계약을 하기 위해선 평균 4000만원 이상 올려줘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동산써브에 따르면 11월 3주차 기준 수도권 아파트(주상복합 포함) 354만2124가구의 평균전세가는 2억3212만원으로 2년 전인 2012년(1억9172만원)보다 4040만원 상승했다.

김미선 부동산써브 선임연구원은 "최근 금리인하 등으로 전세에서 월세로 전환되는 물건이 늘어나면서 학군이 좋거나 역세권 단지의 경우 전세물건이 품귀를 보이고 있다"며 "전세재계약 시 평균전세가 상승금액보다 높은 가격으로 계약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고 매매나 반전세 등으로 전환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