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도새도 모르게 빠져나간 은행돈 또 있었다…禍키운 경찰

농협 1억2000만원 무단 인출사고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과거 시중은행에서 여러 차례 유사 범죄가 있었는데도 경찰이 피의자 추적이 어렵다는 이유로 대응을 소홀히 해 화를 키웠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26일 피해자와 경찰청 등에 따르면 지난해말부터 올해 2월 사이에도 시중은행 계좌에서 예금주가 모르는 사이 텔레뱅킹을 통해 수천만원의 예금이 무단 인출된 사건이 수차례 발생, 경찰이 수사에 나선 바 있다.(☞2월3일자 머니투데이 '[단독]나도 모르게 월급통장서 1069만원이 빠져나가?' 참조)

지난해 11월2일 정모씨(36)가 자신의 A은행 계좌에서 텔레뱅킹을 통해 6차례에 걸쳐 현금 총 1069만원이 대포통장 계좌로 이체된 사실을 확인, 이틀 후인 4일 인천 남동경찰서에 신고했다.

앞서 직장인 조모씨(43)도 같은달 29일 동일 은행계좌에 예금해 둔 4169만원이 다른 계좌로 무단 이체되는 피해를 당해 경기 군포경찰서에 수사를 의뢰했다.

이들 피해자도 은행이나 본인이 개인정보를 유출한 적이 없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모두 텔레뱅킹에 가입돼 있었지만 실제로 상당 기간 사용조차 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조씨의 경우 경찰 수사로 인터넷뱅킹 홈페이지에 접속한 IP주소가 서울, 중국 베이징, 미국 등지였던 것으로 확인됐지만 대포통장 명의 대여자 일부 외에 총책을 특정하고 검거하는 데는 실패했다.

경찰은 범행을 상세히 파악하지도 못한 채 사건을 종결하는 수사 행태를 반복해왔다. 농협 사건이 피해금액이 크고 사회적인 관심을 받았다는 것 외에는 이전 사건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도 보강 수사는 이번 사건에 한해서만 진행되고 있다.

일선경찰서 관계자는 "텔레뱅킹이나 인터넷뱅킹 관련 사고가 접수되면 대부분 대포통장 명의를 대여해 준 내국인 몇몇만 검거하고 총책의 실체와 범행 수법을 파악하는 데는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며 "사건은 산더미인데 수사인력에는 한계가 있고 워낙 첨단 기법이 판을 치다보니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한편 '농협 1.2억 무단인출 사건'과 관련, 경찰청 사이버범죄대응과는 IT금융범죄수사팀 인력을 피해자가 거주하는 전남 광양 지역으로 급파, 보강 수사를 위한 피해사실 및 수사내용 파악을 진행 중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대포통장 명의자 일부를 검거했지만 실제 총책의 범행 루트나 신원을 파악하지는 못하고 수사를 종결한 경우"라며 "피해금액이 워낙 크다 보니 일선서에서 인력이나 장비 부족 때문에 기술적으로 미진한 점은 없었는지 확인하는 차원에서 보강 수사를 진행하게 됐다"고 말했다. 또 "신종수법의 경우에는 일선서에서 제대로 대응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앞서 전남 광양에 거주하는 주부 이모씨(50)의 농협 계좌에서 지난 6월26일부터 사흘간 41차례에 걸쳐 총 1억2000만원 가량이 텔레뱅킹으로 15개 대포통장으로 이체된 후 무단 인출됐다.

사건을 접수한 광양경찰서가 피해자 통화내역을 텔레뱅킹 이용 기록과 대조했지만 동일한 시간대 겹치는 부분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돈이 인출되기 직전 중국 IP주소가 이씨의 아이디로 농협 홈페이지에 접속한 흔적도 발견했지만 피의자의 신원이나 소재는 파악조차 되지 않았다.

수사는 대포통장 명의 대여자 4명을 검거하고 지난 9월10일 종결됐고 논란이 확산되자 경찰청에서 보강 수사에 나선 것이다.

경찰이 수사를 조기에 종결하는 탓에 피해자들은 수사 결과에 따라 보상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금융기관과 소송으로 과실을 다투거나 피해를 혼자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곤 한다.

전문가들은 첨단 금융범죄로 인한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경찰청 차원의 범죄 취합과 분석, 조기 대응방안 모색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또 수사기관의 대포통장 계좌동결 등의 요청에 금융권이 적극 협조하도록 금융감독원 등과 유기적인 협력시스템을 갖출 필요가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범죄가 빠르게 진화하는 데 비해 수사기관과 금융기관의 공조나 대응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며 "보이스피싱, 스미싱 등에 적용되는 지급정지 제도처럼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