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세 현역작가가 청춘에게 보내는 편지

친애하는 청춘들아, 너희들에게 써야 하는 문장이 가장 힘들다. 말도 없고 단어도 없다. 그러나 신문사에 납기가 정해져 있는 이 칼럼을 위해 나는 기어이 써야만 한다. 이십 대 태반이 백수여서 ‘이태백’, 취직을 못해서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다는 ‘삼포세대’라는 이런 처참한 단어들만 앞 다투어 나온다. 참으로 난감하다. 우리 어른들이 청춘이었을 때 ‘삼포로 가는 길’은 아름다운 소설이었고, 영화였고, 노래였다는 비유로 그 틈에 문장이나 꾸며보려는 나의 유치함이 부끄럽다.


나는 ‘현시창’(임지선 지음)을 알고 있다. 현실은 시궁창, 대한민국은 청춘을 위로할 자격이 없다,는 말에 동의한다. ‘88만원 세대’(우석훈 지음)들아, ‘이런 나라 물려줘서 정말 미안해’(함영훈 외 지음)라고 사과하는 어른들이 얄미울 것이다. ‘그래서, 그런데, 그러니 우리보고 어쩌라는 거야’라 절규하는 너희들의 아픔과 비명에 진심으로 공감한다. 그러니 어찌하랴.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그 뻔한 경험칙이라도 들려줄 밖에.

'친애하는 청춘에게' 저자 김욱은 올해 85세의 현역 작가이다. 산 자보다 죽은 자가 더 많은 나이다. 죽은 자보다 못한 산 자이기 십상인 나이다. 그는 70세에 작가로 등단해 15년 동안 200 권이 넘는 번역서와 7권의 저서를 냈다. 그리고 또 이 책을 펴냈다. 그 역시 청춘들 위로한답시고 뻔하고 어쭙잖은 말들 남발하는 건 아닌지, 자기까지 나서서 그럴 필요가 있을지 고민하다 어렵게 내놓았다.

김욱은 일제 치하에서 태어나, 20대에 전쟁을, 30대에 혁명을, 40대에 군부독재를 겪고서 50대엔 산업화에 밀려 경쟁에서 낙오했다. 60대에는 평생 모은 재산을 IMF로 통째 날렸고, 70대에는 쪽방 들어갈 처지도 못돼 시골 묘지기로 남의 문중 제사나 지내주면서 연명했다. 그리고 80대에 이렇게 작가가 되어 자신의 이름으로 책을 내고, 글을 쓴다.

청춘들아, 젊음이나 늙음이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너희들의 잘못이 아니야’라는 위로가 너희들의 현실을 바꾸지 못한다. 분노와 무기력은 너희들의 목구멍에 밥을 벌어주지 못한다. 더불어 사는 세상 같은 건 없다. 세상은 어떻게든 살려고 발버둥치는 사람들과 함께할 뿐이다. 그러므로 정면으로 맞서,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는 것만이 유일한 출구다.


너희가 스스로 맞서 죽기로 싸워 이긴 그 문장들을 내가 여기에 다시 쓰게 해다오. 보다 많은 걸 누릴 수 있었던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이 땅의 청춘들에게 미안하고, 미안하고, 미안할 뿐이다.

◇친애하는 청춘에게=김욱 지음. 비전코리아 펴냄. 280쪽. 1만3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