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연합회장이 뭐길래…

연말 은행권의 최고경영자(CEO) 교체 시즌을 맞아 최근 세간의 관심이 집중된 자리는 단연 은행연합회장이다. 일찌감치 불거진 하영구 전 한국씨티은행장의 '내정설' 때문이다.


은행권에선 업계의 순수 이익단체에 '위로부터의 압력'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비판과 함께 은행연합회장이 갖춰야 할 중량감·공공성·당국과의 교감능력 등 자격기준을 감안하면 일정 수준의 '관치(官治)'는 수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맞선다.

은행연합회는 시중은행과 특수은행 및 지방은행 등을 정회원으로, 외국은행 국내지점을 준회원으로 구성된 비영리 사단법인이다. 지난 1928년 설립된 경성은행집회소를 모체로 하며, 국내 금융산업 변화와 국제화 추세에 따른 기능강화의 필요성으로 1984년 5월 은행연합회로 발족했다.

은행연합회는 회원사간 업무 협조와 각종 금융문제 조사·연구·개선 등으로 산업발전을 도모하는 동시에 이익단체로서 은행업계를 대변한다. 또 종합신용정보 집중기관 역할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1인을 추천하는 권한도 가졌다.

한국 금융사의 주요 장면에서도 적지 않은 역할을 수행했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고비마다 정부와 소통하며 기업 구조조정과 회생지원의 한 축을 담당했다. 키코(KIKO) 사태 당시엔 이익단체의 역할에 충실해 은행권의 목소리를 대변했고, CD금리가 '담합' 논란으로 시장의 신뢰를 잃어버리자 새로운 지표 금리로 코픽스(COFIX)를 개발하기도 했다.


공공과 민간을 아우르는 은행업 고유의 성격을 감안해 경제관료들은 은행연합회장 자리를 쉽게 민간에 넘겨주지 않았다. 역대 은행연합회장 10명 중 민간 은행장 출신은 이상철(전 국민은행장)·신동혁(전 한미은행장) 전 회장 2명뿐이었고, 한국은행 부총재 출신인 유시열 전 회장까지 제외하면 모두 경제관료 출신이다. 타 금융업 협회에 비해 월등한 보수도 관료들의 재취업 대상으로 매력적이었다. 연봉 상한선만 해도 기본급 4억9000만원과 성과급 최고 50%를 합해 7억원을 웃돈다.

그러나 이 같은 관료 중심의 선임은 오히려 은행연합회 고유의 이익단체 기능을 축소시켰다. 은행연합회장이 업계의 목소리를 당국에 대변하는 대신, 반대로 당국의 목소리를 은행에 관철시키는 역할을 수행해 왔다는 불만은 줄곧 제기돼 왔다.

최근 '내정설'이 도마 위에 오른 것도 이 같은 비판에서 비롯된다. '관피아(관료+마피아)' 논란으로 차기 은행연합회장에 관료 출신 인사의 선임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하 전 행장이 금융당국으로부터 '간접지원을 받는다'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다. 하 전 행장은 민간 출신이지만, 2008년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 당시 금융당국에 조력하는 등 깊은 인연을 맺었다는 평가다.

한 시중은행 고위인사는 "은행연합회는 이익단체인만큼 민간 출신이든 관료 출신이든 '힘이 센' 인물이 오는 게 좋다. 반드시 민간 은행장 출신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며 "하 전 행장이 당국과의 연결고리가 다른 후보들보다 좀 더 명확해 교감 측면에선 장점이 있어 보인다"고 평가했다. 다만 그는 "하 전 행장이 그만큼 힘이 센 인물인지가 문제"라며 "겉옷만 '민간'일 뿐 관료 출신 연합회장과 똑같은 역할에 그친다면 문제"라고 지적했다.

다른 시중은행 전직 부행장은 하 전 행장의 이력도 문제삼았다. "외국계 은행에서만 일한 것은 은행연합회장으로선 결격사유"라며 "가령 국내은행의 중국법인장이 중국은행연합회 회장에 출마한다면, 가당키나 한 일인가"라고 지적했다.

반면 한국씨티은행이 과거 한미은행의 명맥을 잇는 은행이기 때문에 '외국계 은행 출신'이라는 지적은 적절치 않다는 옹호론도 존재한다. 또 14년 동안 은행장으로 재직하면서 금융당국과 줄곧 원만한 관계를 유지한 것은 탁월한 위기 관리 능력의 증거라는 평가도 있다. 은행연합회 이사회 한 멤버는 "당국과의 소통 능력을 무조건 '관치'로 매도할 순 없다. 은행연합회장에는 매우 필요한 능력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