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직구 2조원 시대…"블프 직구족들의 마우스를 돌려라"

롯데백화점 허종욱 영업총괄팀장은 블랙프라이데이에 해외 쇼핑몰로 눈을 돌리는 직구족을 잡으려고 지난 7월부터 숨가쁘게 움직였다. 9월에는 추석과 신학기 영업을 하는 동시에 이달 말 블랙프라이데이를 겨냥해 다양한 기획행사를 준비했다. 매일 4∼5차례씩 팀 회의와 협력사 미팅을 반복했다. 요즘은 내달 중순 롯데호텔에서 진행할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 행사를 준비하느라 눈코 뜰 새 없다.


허 팀장은 "해외직구 시장이 커지면서 블랙프라이데이 시즌에 소비자들의 지갑이 확실히 많이 열린다"며 "해외 쇼핑몰에 매출을 뺏기지 않으려면 직구상품보다 훨씬 경쟁력 있는 상품을 내놔야 하는 만큼 피 말리는 기획회의를 거듭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직구 열풍이 불면서 내수산업의 첨병인 한국 유통시장도 바뀌고 있다. 특히 미국 최대 쇼핑시즌인 블랙프라이데이(11월 마지막 금요일)를 맞아 한국의 온·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은 경쟁적으로 '블프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인터넷 발달로 한국 소비자들이 미국 쇼핑몰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쇼핑에 나서자 경쟁적으로 한국 유통업계도 파격 할인행사로 고객 잡기에 나선 것이다.

◇"블프 엑소더스 막자"…유통업계 대응책 마련 분주=그러나 지난해만해도 한국 백화점과 온라인 쇼핑몰들은 블랙프라이데이에 이렇다 할 대응을 내놓지 못했다. 하지만 올해는 상황이 다르다. 백화점마다 70∼80% 파격 할인행사를 준비하며 강력하게 대응하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인터넷쇼핑몰인 현대H몰과 함께 오는 28∼30일 직구족들에게 인기가 많은 브랜드 상품을 최대 80% 할인 판매한다.

신세계백화점도 통합쇼핑몰인 SSG닷컴에서 이달말까지 최대 75% 할인행사에 나선다. 프라다와 지방시 등 명품 브랜드와 프리미엄 패딩 브랜드 등 온라인몰에서 쉽게 구입할 수 없는 상품도 다양하게 준비했다.


오픈마켓과 소셜커머스 등 온라인 쇼핑몰 업체들은 미국 현지 가격보다 값 싼 제품을 내걸고, 미국 쇼핑몰과 정면 승부를 벌인다. 내달 12일에는 11번가와 롯데닷컴 등 온라인몰 10여곳이 사상 첫 연합 행사인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를 열고 국내외 인기제품을 할인 판매한다.

해외직구 전용 서비스를 도입하고, 무이자 할부기간을 1년으로 늘린 유통업체까지 등장했다. 롯데백화점은 최근 서울 소공동 본점 2층에 해외직구 상품 전문매장인 '비트윈'을 개장했다. 갤러리아백화점은 통상 3~6개월인 백화점 무이자 할부기간을 최장 12개월로 늘렸다. 30만원이상 구매자에게 블랙프라이데이를 기점으로 무르익는 연말 쇼핑시장을 장악하겠다는 전략이다.

◇해외직구 연 2조원 급성장…"더 뺏기면 죽는다" 위기감=이처럼 유통업계 판도가 달라진 것은 해외직구 시장 규모가 하루가 다르게 커지고 있어서다. 관세청에 따르면 해외직구 시장은 2010년 3000억원에서 지난해 1조원을 돌파했다. 3년만에 3.8배 커졌다. 올해는 10월 현재 1조3500억원으로 이미 지난해 규모를 훌쩍 넘어섰다. 유통업계는 블랙프라이데이 등 연말에 해외직구가 급증하는 만큼 올해는 2조원까지 해외직구 규모가 커질 것으로 추정한다.

A온라인몰 관계자는 "연 230조원에 달하는 국내 유통시장에서 해외직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1% 안팎에 불과하지만 지금 같은 추세라면 5%, 10%에 도달하는 것은 시간문제"라며 "직구 인구가 매년 30∼40%씩 늘고 있는데다 구매 단가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B백화점 관계자는 "경기 침체와 유통 규제 등으로 내수시장 성장이 멈춘 가운데 해외 쇼핑몰에 손님까지 빼앗기면 타격이 더 크다"며 "블랙프라이데이가 임박하면 증시에서 조차 유통업체 주가가 맥을 못 춘다"고 말했다.

우승택 숭실대 경영대학원 금융서비스학과 교수는 "해외직구가 늘면 의류, 잡화, 가전 매출 비중이 전체의 70% 이상인 백화점과 온라인쇼핑몰의 타격이 가장 크다"며 "최근엔 직구업체간 경쟁으로 배송료도 점점 낮아지고 파손 보험까지 등장해 한국 유통업체의 위기감은 배가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