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객들의 필수코스, 러시아 지하철은 '지하궁전'

머니투데이

공영희 소설가

날씨가 많이 추워졌다. 하긴 12월이 낼 모래니 추울 수밖에 없겠지만 낙엽이 너무 예뻐 아직도 가을인가 싶다. 그러고 보니 올 가을엔 비가 내리지 않았다. 비가 온 뒤면 날씨는 훨씬 더 추워지고 낙엽들도 더 빨리 떨어질텐데 가을비가 내리지 않아 시간이 더디 왔나 보다.

러시아에도 어김없이 가을이 온다 싶으면 겨울이 쉬이 온다. 들판에서 추수한 양배추와 감자들이 쌓이고 온갖 야채를 소금에 절여 우리네 김장처럼 겨울준비를 한다.

러시아처럼 추운 나라에서 일반 서민들의 잠시 잠깐이라도 추위를 피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지하철이다. 땅 밑에 있는 지하철은 한 여름에는 시원하기는 해도 겨울이면 그야말로 외부의 추위를 잠깐이라도 피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기도 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러시아 전 시민의 신속한 발이 되어 시내를 돌고 있다는 것이다.

필자가 러시아 모스크바에 도착한 다음 날부터 이용하게 된 교통수단은 바로 러시아 지하철이었다. 러시아 지하철을 처음 타면서 놀랐던 것은 일단 지하로 내려가는 깊이였다. 모든 지하철역에는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어 있고 지하철을 타려면 무려 100m이상 깊이 까지 빠른 속도로 내려간다.

약간 어두운 조명아래 검정 옷을 즐겨 입으며 얼굴에 표정이 없는 러시아 사람들과 함께 지하철을 탈 때면 사실 무서워 긴장을 하곤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긴장감이 사라지고 주위를 살피게 되자 아름다운 지하철 내부가 눈에 들어왔고 그러자 더 자세히 살펴보게 되었다.

흔히 모스크바 지하철은 지하궁전이라고까지 불린다. 지하철 역사내부는 박물관이나 궁전(표현이 그렇다는 것이다)에 들어온 것 같은 착각이 일 정도다. 역사 내부 바닥과 벽은 좋은 대리석이고 벽에는 크고 화려한 벽화나 부조조각품은 물론이고 천정의 멋지고 근사한 샹들리에와 그림, 혁명구호, 선전구호, 유명한 사람들의 조각 등으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예술품을 보며 역사를 알 수 있게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지하철역에 아치형으로 우아한 통로를 만들어 사람들이 그 통로를 통해 다른 역으로 이동해 목적지의 전철로 갈아타게 설계되어 있다. 또 육중한 대리석 판에 튼튼한 나무로 상판을 놓은 벤치도 있어 사람을 기다리거나 피곤할 때 잠시 쉬기도 하면서 지하철역 내부를 구경하는데 매우 고풍스럽고 고급스러우며 안정감이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모스크바 지하철은 1930년대 스탈린 시대부터 건설하기 시작해 1935년 처음 개통되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11호선, 150여개의 전철역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하루 약 900만 명의 승객이 이용한다고 한다. 필자가 놀란 것은 그 옛날에 지하철역을 이렇게 멋있게 지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다. 누구의 머리에서 이런 발상이 나왔는지 그야말로 창의적이고 예술적인 발상이 아닐까 싶다. 필자가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 이태리 등의 지하철을 타보았지만 지하철 역사내부가 러시아처럼 예술적으로 지어진 곳은 없었다. 그리고 러시아 사람들은 지하철을 타면 거의 책을 읽었는데 이 점도 놀라웠던 일 중의 하나다.

러시아 지하철을 100m 이상 깊이 판 것은 전쟁시, 그러니까 어떤 유사시에, 핵 공격에도 피할 수 있는 방공호로 사용하기 위해서라는 말을 들었는데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조건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러시아에서 지하철을 타려면 일단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해 지하로 내려가야만 한다. 에스컬레이터가 없는 전철역은 없다. 그만큼 깊은 곳에 지하철이 있기 때문이다.

모스크바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하철역이라고 알려진 곳은 '마야콥스카야'역이다. 마야콥스카야 전철역은 1938년에 개통되었고 구소련의 혁명시인이자 러시아 최고의 시인인 '블라디미르 마야콥스키'의 이름을 땄는데 세계 2차대전 때는 실제로 방공호로 사용되었고 시민들이 한 달 이상 이곳에 머물렀다고 한다. 그리고 아이들도 태어났으며 세계대전 당시에 시의회를 이곳에서 열었다고 하니 이 역의 중요성은 역사적으로 유명하다. 필자도 이 역을 갈 때마다 지하철역을 사무실로 사용했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나름대로 상상해보기도 했다.

러시아 전철은 빠르고 시끄러운데 1-2분 만에 시커먼 전철이 긴 차량을 달고 굉음을 내뿜으며 나타난다. 지하철은 깔쪼(원)로 설계되어 있다. 직선의 지하철은 없고 원으로 돌고 돈다는 말이다. 어느 역에서 타든지 어느 역을 가든지 한곳에서만 타면 모든 역을 다 연결해서 갈 수 있으니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모스크바의 많은 지하철역은 내부가 모두 아름답고 견고해서 지하에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다.

러시아 지하철은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관광객들이 꼭 가봐야 하는 필수코스이기도 하다. 그리고 필자는 한국을 비롯해 다른 나라에서 러시아 지하철을 벤치마킹 하러 온 사람들을 만난 기억도 있다. 새로 개통되는 지하철역들은 아주 현대적 감각으로 꾸미고 있다.

러시아 사람들이 지하철이 러시아의 자랑거리라고 생각하게끔 지하철을 건설하는 책임자들의 책임감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