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C감산합의 불발로 유가 하락세 지속…정유4사 '비상등'

OPEC(석유수출국기구)의 감산논의가 결국 불발에 그치며 국제유가 하락세가 반년가까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 하반기부터 시작된 국제유가하락은 우리 정유업계의 실적부진을 이끈 주원인 중 하나로, 내년 사업계획을 짜고 있는 정유 업계에 비상등이 켜졌다.


28일 외신과 업계에 따르면 OPEC은 지난 27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총회에서 하루 3000만 배럴로 정한 산유량 한도를 유지키로 결정했다. OPEC은 6개월 뒤 열리는 다음 총회에서 산유량 조정 여부를 다시 논의할 예정이다.

당초 국제유가가 배럴당 70달러선까지 무너지면서 OPEC의 감산 가능성이 나왔다. 하지만 당장의 유가 하락을 막기보다 셰일가스·오일을 바탕으로 산유국 대열에 오른 미국과의 '치킨게임'을 선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OPEC의 감산합의 불발 여파로 이날 국제 유가는 6% 넘게 떨어졌다. 국제유가 기준물인 브렌트유 선물은 지난 6월 배럴당 112달러를 웃돌았던 게 이날 72.58달러까지 추락했다. 4년여 만에 최저치로 5개월 새 35%가량 떨어졌다. 이날 하루 낙폭만 6.65%로 2011년 이후 최대를 기록했다.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이날 6.3% 급락하며 4년 만에 배럴당 70달러 선이 붕괴됐다. 업계는 유가하락세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브렌트유 가격이 내년 상반기에 배럴당 60달러 밑으로 떨어질 것으로 본 러시아 국영 석유회사인 로스네프트의 이고르 세친 회장의 전망이 대표적인 예다.


문제는 국제유가 하락이 정유업계의 수익성 하락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SK이노베이션 (103,800원 ▼2,400 -2.26%)과 GS칼텍스, S-OIL (76,800원 ▲1,400 +1.86%), 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정유4사의 지난 3분기 총 영업이익은 340억원에 불과했다. 전체 매출 38조7262억원의 0.1%에도 못 미치는 숫자다.

이들 모두 석유화학과 윤활유 부문 등에서 손실을 메워왔지만 매출 비중이 큰 정유부문의 손실을 감당하지 못한 것으로 분석된다. 국내 정유업계는 사상 최초로 정유부문 1년 누적손실 규모가 1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같은 실적 부진의 원인 중 하나가 바로 국제유가 급락으로 인한 재고평가 손실이다. 통상 정유사는 2~3개월 전 사들인 원유를 정제해 석유제품과 화학제품을 생산한다. 때문에 짧은 기간 유가가 오르내림을 반복하더라도 유가변동으로 인한 이익또는 손실이 발생한다.

하지만 최근처럼 국제유가가 꾸준히 하락할 경우, 미리 사둔 재고분에 대한 평가손실이 발생한다. 원유 구입부터 제품판매까지 1개월 이상 걸리기 때문에 제품 정제, 판매와 무관한 손실이 자연스럽게 발생한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이 때문에 최근 내년도 사업계획을 짜던 정유사들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통상 정유사들은 유가와 환율을 고려해 사업계획을 짜는데, 전망 이상으로 국제유가 하락가능성이 생기면서 사업계획 수정에 들어간 곳도 나오고 있다.

한 정유업계 관계자는 "올해 말에 배럴당 70달러 선이 붕괴되고 최대 30달러선까지 내려간다는 전망이 나왔다"며 "배럴당 70달러 안팎을 염두에 두고 내년도 사업계획을 짜고 있는데 수정이 불가피해졌다"고 말했다.

낙관론도 있다. 국제유가가 하락한 이후 안정세를 보이면 수요증가로 이어질 것이란 관측도 있다.

또 다른 정유업계 관계자는 "국제 유가하락은 정유업의 손실을 부르기도 하지만 수요 증가로 인한 정제마진 개선효과도 있다"며 "비용과 원가 절감 노력에 수요회복이 더해지면 내년 수익성을 회복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