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만 약세..'왕따 증시'의 3가지 배경

최근 각국 증시흐름과 무관하게 한국만 유독 약세를 띄는 기이한 현상이 계속된다. 미국, 일본은 물론 올 하반기 한국과 동조화가 컸던 중국증시와도 동떨어진 모습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발생하는 호재도 정작 물만 건너오면 약발이 떨어진다.

한마디로 한국증시가 '외톨이 신세'가 된 셈인데, 한국경제의 성장동력 저하로 투자메리트가 감소한데다 수급적인 불균형이 겹치는 악순환 고리가 형성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코스피 1900 붕괴..연초수준으로 회귀

18일 코스피지수는 전일대비 2.66포인트(0.14%) 내린 1897.50으로 마감했다.

이날은 주요국 증시가 일제히 상승한 날이다. 일본 닛케이225지수는 2.3% 오른 1만7210.05로 장을 마쳤고 전날 뉴욕시장에서는 다우지수가 1.69% 오른 것을 비롯해 S&P500지수, 나스닥지수가 각각 2% 이상 상승률을 기록했다.


프랑스와 호주, 캐나다, 이탈리아, 대만, 인도, 브라질, 러시아 증시도 강세를 보였다. 약세를 보인 건 상하이증시와 독일(DAX) 등 일부에 그쳤다. 이날 글로벌 증시가 일제히 강세를 보인 까닭은 전날 열린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결과가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FOMC에서 예상과 달리 기준금리 인상을 서두르지 않겠다는 정책방향이 나오면서 시장을 억눌렀던 악재가 해소된 것이었다.

한국증시도 초반에는 강세로 출발했으나 이내 약세로 돌아섰고 코스피지수는 심리적 지지대인 1900이 깨졌다. 종가기준으로 1900선을 하회한 것은 올해 2월 이후 처음이다.

올 하반기 정부의 강력한 경기부양책이 나오며 '박스피' 돌파까지 예상됐던 시장이 불과 3~4개월만에 속절없이 무너진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韓증시 "메리트? 글쎄…" 외국인 떠나는 이유

시장양상이 이렇게 급변한 것은 한국경제의 성장력 둔화, 수급불균형, 신뢰감 잃은 시장정책 3가지 요인에서 찾을 수 있다.

그간 한국증시를 이끌었던 것은 삼성전자를 필두로 한 IT부문과 함께 무역수지 성장을 이끈 조선·철강·기계와 글로벌 톱 플레이어로 올라선 자동차, 아시아권역을 점령한 석유화학 등 다양한 플레이어들이 있었다.

기업들의 외형은 물론 수익성까지 빠르게 오르며 외국인 투자자들의 자금이 급속도로 유입됐고, 국내도 연기금, 공제 등 기관투자자들의 자금이 커지면서 투자시장이 확대되는 선순환이 있었다.

그러나 한국증시를 특징짓던 이런 장점들이 올해를 기점으로 추세가 전환되면서 투자메리트를 떨어트리는 요인이 됐다는 지적이다.

최근 싱가포르, 대만, 일본 등 각국에서 열린 투자 컨퍼런스에 잇따라 참석했다는 자산운용사 한 임원은 "해외투자자들에게 한국증시에 대한 전망을 물어보니 메리트를 느끼지 못한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시장 강세를 이끌 요인이 없기 때문에 과거 일본증시의 장기침체와 같은 국면으로 접어서는 게 아니냐는 질문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며 "엔화약세 역시 한국에선 큰 영향이 없을 거라고 하는데, 물밑에선 다른 이야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일본은 오랜 침체를 겪었고 엔화강세를 이기기 위해 기업들의 수출 경쟁력이 크게 올라간 반면, 한국은 원화약세와 엔화강세라는 우호적인 상황에서 쉽게 돈을 버는 국면이 계속됐다. 최근에는 이와 정 반대의 상황이 전개됐고, 여기에 중국이라는 후발주자의 추격도 거세졌다.

◇불안한 수급, 커진 호가공백 탓에 낙폭 커져

이 임원은 "한국증시에선 어느 섹터를 들여다봐도 예전 같은 성장세가 유지되는 산업이 전무하다"며 "이는 최근 성장세가 커지는 중국, 베트남 등 신흥시장 뿐 아니라 일본에도 뒤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결국 최악의 국면에서 반등하는 일본, 막대한 잠재력이 아직도 나오고 있는 중국의 틈바구니에 한국이 껴 있다는 얘기다. 최근 중국과 일본증시가 급격한 강세를 보이는 와중에 한국증시만 디커플링(역 동조화 현상)이 커지는 이유다.

증권사 한 애널리스트는 "중국증시는 원화기준으로 180조원이 하루에 거래되는 반면 코스피 시장은 3조~4조원에 불과하다"며 "해외증시에 비해 한국의 시장규모가 너무 작아졌다는 점도 메리트를 떨어트리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시장을 떠받치는 자금수급이 약해졌다는 점도 급격한 약세장이 연출되는 까닭이다. 매도 포지션을 취하고 있는 자금에 비해, 저가매수로 유입되는 자금은 많지 않다.

이러다보니 종목별로 호가공백이 커졌고, 이런 균형이 살짝만 깨져도 주가가 급락하는 종목이 속출한다.

자산운용사 한 매니저는 "최근 같은 약세장을 발 빠르게 대응하려면 주가상승 이벤트가 발생하는 종목으로 신속히 자금을 이동시켜야 한다"며 "이를 위해 기존 보유주식을 처분해야 하는데, 호가공백이 있어 조금만 팔아도 주가 급락하고, 이게 다시 매도를 부르는 악순환이 고민"이라고 털어놨다.

이날 상장한 제일모직 (150,600원 ▲200 +0.13%)과 앞서 상장한 삼성에스디에스 (151,300원 ▼200 -0.13%) 등 외국인, 기관, 개인을 망라하는 투자주체들의 자금을 끌어들이는 유동성 스폰지 종목들이 나타날 때 마다 시장이 약세를 보이는 까닭이다.

기업은 물론 정부까지 시장의 신뢰를 잃는 모습을 보였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일단 정부의 배당확대 정책이 발표된 후, 외국인들은 한국증시의 격이 한 단계 오를 기대를 걸었으나 결과물은 아직 없는 상태다.

일부 기업들이 내년 배당확대 등의 방안을 내놨으나 아직은 적극적인 시장변화가 관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에 현대차의 한전부지 고가매입 논란, KCC의 현대중공업 지분매입 등 외부주주들의 이익에 반하는 정책이 잇따라 나왔다.

여기에 한국전력은 최근 전기가격 인하논란까지 있다. 전기가격은 원칙적으로 한전이 생산원가에 맞춰 자체적으로 결정해야 하는데, 중요한 경영의사 판단에 정부가 간여하는 게 합당하느냐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