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티비즘의 진화, 디도스에서 사이버 하이재킹으로

해킹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는 핵티비즘(해킹+액티비즘)이 접속 폭주를 통한 서비스 이용에 불편함을 초래하는 디도스(DDoS) 공격에서 정보를 탈취하거나 파괴하는 등의 사이버 하이재킹(행 중인 차량, 기차, 항공기, 기타 운송수단에 대한 불법적 납치행위)로 변화하고 있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해킹 역시 원전반대를 기치로 내건 '후엠아이(Who am I)'라는 해커 그룹이 원전 가동 중단을 요구하며 원전 설계도와 매뉴얼 등을 21일 공개했다.

후엠아이는 "아직 공개하지 않은 문서가 10만장이 더 있다"며 "25일까지 원전 중단이 없으면 아직 공개하지 않은 문서를 전면공개하고 2차 파괴를 실행하겠다"고 주장했다.

보안업계에서는 "후엠아이의 해킹이 전형적인 핵티비즘의 성격을 보이고 있다"며 최근 핵티비즘은 단순한 접속방해 차원을 넘어서 내부망을 침투해 비밀문서를 탈취하거나, 내부망을 파괴하는 등의 사이버 하이재킹으로 양상이 바뀌었다"고 경고하고 있다.

사이버 하이재킹은 기업이나 국가 시설의 보안 취약점을 노리고 장기간 잠복공격(APT)을 통해 '내부 비밀문서'를 탈취한다. 이후 이를 인터넷에 공개하며 자신들의 정체를 알린다. 이후 여론에 관심을 받게 되면 자신의 목적을 분명히 하며 협상이나 협박을 시도한다.

어나니머스 북한 해킹 예고

지난 2013년 4월 국제적인 해킹 그룹 어나니머스는 김정은 조선노동당 1비서에게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과 대남협박을 중단하고, 북한 주민의 참상을 더이상 방관하지 말라는 경고를 담은 동영상을 개시했다. 이후 2개월이 넘도록 북한이 반응이 없자 어나니머스는 같은 해 6월21일 공격을 예고하는 동영상을 올리며, 인트라넷을 해킹해 미사일 문서와 군 고위간부의 신상정보를 해킹했다고 주장했다.

어나니머스는 예고된 6월25일 우리민족끼리, 고려항공, 벗, 조선의소리, 노동신문, 내나라, 려명, 민족대단결 등의 사이트를 일시에 공격해 무력화시켰다. 이에 북한 측에서도 청와대 홈페이지를 비롯해 주요 11개 언론사, 정부기관 및 정당 홈페이지 등에 대한 보복공격이 이어졌고, 새누리당 당원 신상정보, 군장병 신상정보 등이 유출되기도 했다. 아직 어나니머스는 미사일 문서나 군 고위직 신상정보 등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

소니픽쳐스 해킹의 원인이 된 김정은 암살 소재 코미디 영화 인터뷰 스크린샷

최근 북한 소행으로 추정되는 소니 픽처스의 해킹사건 역시 사이버 하이재킹의 일종이다. 소니가 김정은 비서의 암살을 소재로 한 코미디 영화 '인터뷰'의 개봉을 앞둔 11월24일 '평화 수호자'(GOP)를 자처한 해킹그룹은 소니 내부망을 침투해 미개봉 영화 등 다수의 비밀문서를 탈취한다.

소니는 북한소행을 의심했지만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인터뷰 개봉일을 12월25일로 확정하자, 미개봉 영화들이 일제히 공유사이트에 나돌게 된다. 소니가 FBI에 수사를 의뢰하자 소니 고위 임직원의 이름과 직책, 연봉까지 상세히 기재된 문서가 공개됐고, 12월17일 "9.11을 기억하라 세계가 공포가 가득할 것이다, 영화관 근처 사람도 피해를 볼 것이다"라는 협박글이 또다시 올라오자 소니는 결국 영화개봉을 취소하게 됐다. 미국 정부는 이를 두고 북한의 소행이라 확신하며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는 방안까지 검토 중이다.

후엠아이의 핵티비즘도 문서를 탈취한 후 자신의 행위임을 알리고 추가적인 폭로나 공격을 알리겠다고 한 것으로 하이재킹의 전형을 따르고 있다.

임종인 고려대학교 정보보호대학원 원장은 "최근 사이버 공격은 이용거부라는 방식보다 더 치명적인 사이버 하이재킹으로 진화하고 있다"며 "미국 등 사이버 선진국에 도움을 요청해 보안 취약점은 없는지 신속히 점검해야 원전 테러라는 공격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