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호의 MLB산책] 강정호-피츠버그 협상 가상 시나리오

피츠버그와 입단 협상을 진행하는 강정호. /사진=뉴스1

포스팅에서 500만2,015달러를 베팅해 강정호(27)와 독점협상권을 따낸 피츠버그 파이어리츠는 과연 어떤 자세로 계약 협상에 임할까.

스몰마켓 팀으로 팀 재정상태가 그리 넉넉한 편이 아님에도 500만달러가 넘는 만만치 않은 액수를 제시해 강정호와 협상할 권리를 손에 쥔 파이어리츠가 강정호측과 본격적인 협상이 시작되면 어떤 자세로 나설지가 관심거리다.


사실 내야에 젊고 뛰어난 선수들이 많아 강정호가 들어설 마땅한 자리조차 잘 안 보이는 데다 재정상태도 그리 넉넉한 편은 아닌 파이어리츠가 강정호 포스팅에서 최고액을 써냈다는 사실은 정말 의외였다.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기에 심지어는 계약할 의사도 없으면서 다른 팀으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 소위 ‘위장입찰’을 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하지만 강정호가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할 수 있을지 여부조차 불투명한 상태로 다수의 팀이 영입전에서 발을 빼고 있는 상황이었다. 또 굳이 강정호를 뺏기기 싫은 뚜렷한 라이벌 팀도 없는 파이어리츠였다. 힘들게 위장입찰까지 했다는 것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500만달러나 베팅을 했을 때는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강정호를 원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500만2.015달러라는 포스팅 입찰 액수도 다른 팀이 500만달러를 베팅할 경우에 대비, 잔돈(2,015달러) 차로 협상권을 얻겠다는 ‘성의’가 담긴 액수다. 2년전 류현진이 포스팅됐을 때 다저스가 2,573만7,737달러33센트라는 깔끔하지 못한(?) 액수를 베팅한 것도 같은 이유다.

하지만 파이어리츠가 당장 강정호를 내년 시즌부터 주전급으로 보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1년 정도 적응기를 거쳐 메이저리그에 연착륙시킬 수 있다면 미들 인필더로는 드문 수준의 파워를 보유한 강정호의 잠재력을 살릴 수 있다는 생각에 그를 붙잡은 것으로 풀이된다.


그렇다면 강정호와의 계약협상 과정이 어떻게 전개될지 매우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파이어리츠는 일단 협상과정에서 헤게모니를 행사할 것이 확실하다. 강정호가 절실하게 필요한 입장이 아니라 그를 잘 키우면 미래의 자산이 될 수 있다는, 다시 말해 ‘되면 좋지만 안 되도 그만’인 입장에서 임하는 협상이기 때문이다. 만약 협상이 결렬된다면 500만달러의 포스팅 피는 지불하지 않아도 되기에 금전적 손실도 전혀 없다. 그야말로 잃을 것이 없는 ‘밑져야 본전’인 협상이다. 반면 강정호 입장에선 이번에 계약에 실패하면 빅리그 진출을 최소한 1년 미뤄야 하기에 상대적으로 불리한 협상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파이어리츠가 계약협상에서 터무니없는(사실 이것도 주관적인 관점의 표현이다) 액수를 제시한 채 “받던가 말던가”(take it or leave it) 식으로 협상엔 나서지 않을 것이다. 거액을 들여 베팅에 참여하고 그를 잡기 위해 노력하는 만큼 나름대로 ‘적절한’ 계약조건을 제시할 것이다. 문제는 파이어리츠에겐 ‘적절하게’ 보이는 오퍼가 강정호에겐 ‘터무니없는’ 것으로 비춰질 가능성은 있다는 사실이다. 양측이 생각하는 입장이 워낙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강정호의 에이전트인 앨런 네로는 포스팅 전 이미 팀들에게 강정호가 원하는 계약조건을 알렸다. 4년 계약에 연 평균 500만달러씩 총 2,000만달러를 기본으로 3년 계약이면 평균연봉 550만달러, 2년 계약이면 평균 600만달러를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했다고 한다. 즉 4년에 2,000만달러, 3년 1,650만달러, 2년 1,200만달러 급이라면 바로 계약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한 셈이다.

하지만 실제 계약이 이렇게 강정호의 바램대로 이뤄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실제 협상이 어떻게 매듭지어질지 모르지만 결과는 인센티브와 옵션으로 가득 찬 훨씬 복잡한 조건의 계약서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이를 위해 가능한 협상 시나리오 하나를 생각해봤다. 100% 기자의 개인적 생각이고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 시나리오 중 가장 간단한 것으로 꼽아봤다. 파이어리츠가 진정으로 강정호를 붙잡기 원하고, 또 협상의 칼자루 역시 파이어리츠가 쥐고 있다는 사실을 기본으로 쓴 것이다. 이하 파이어리츠는 ‘피츠’로, 강정호 측은 ‘강’으로 표기한다. 내용 전달과 무관한 내용은 제외한다.

피츠버그 닐 헌팅턴 단장. /AFPBBNews=뉴스1

피츠 우리는 강정호를 꼭 얻길 원한다.
강 고맙다. 우리가 원하는 계약조건은 이미 알려준 바 있는데.
피츠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조건은 좀 힘들다. 우리 팀에서 야수로 연봉이 500만달러가 넘는 선수는 앤드루 맥커천과 닐 워커, 스털링 마테 등 단 3명뿐이다. 강이 뛰어난 재능을 지닌 건 인정하지만 빅리그 경험이 전무한 선수에게 처음부터 그런 계약을 줄 수는 없다.
강 그렇다면 왜 우리가 요구하는 계약 수준을 알면서 포스팅에 응했나.
피츠 우리는 그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당장 처음부터 메이저리그에서 스타가 될 것으론 생각지 않는다. 그에게도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
강 그렇다면 구단에서 생각하는 조건을 말해보라.
피츠 우리 기본적으로 4년 계약을 원한다. 강정호가 적응하고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기간이다. 개런티는 첫 2년간 450만달러다. 첫 해 계약금으로 100만달러, 연봉으로 100만달러, 2년째엔 200만달러를 주겠다. 2년 후 구단 옵션으로 2년 계약을 추가하는 조건이다. 만약 구단이 옵션을 거부하면 강은 프리에이전트(FA)로 풀리며 바이아웃 액수로 50만달러를 받게 된다. 구단이 옵션을 행사할 경우 3년차 연봉은 350만달러, 4년차 연봉은 400만달러다. 이렇게 되면 4년간 총액 1,150만달러(구단옵션 행사로 바이아웃 50만달러는 제외됨) 계약이 된다. 이 정도면 현재 우리팀 야수 가운데 3번째로 큰 계약이다.
강 그것은 우리 쪽에서 받기 힘들다. 당초 우리가 원했던 금액의 60%도 안된다. 더구나 2년 후 다음 2년간의 계약권리를 전적으로 구단이 쥐고 있으니 실질적으로 2년간 450만달러짜리 계약 아닌가.
피츠 계약기간 문제는 첫 2년간 성적에 따른 추가조항으로 해결이 가능하다. 즉 강정호가 2년간 타석과 타율, 홈런, 타점 등에서 정해진 기준치를 넘으면 자동적으로 추가 2년 계약이 발효되도록 안전장치를 해 놓으면 된다.
강 이 경우 기준치를 어떻게 정하느냐가 문제다. 지나치게 높게 잡으면 우리로선 있으나 마나한 권리조항이 된다.
피츠 그 기준은 양측이 충분히 합의가 가능하다고 본다.
강 염두에 둔 기준치를 말해보라.
피츠 2년간 400타석 이상에 나서 타율 .250을 기록한다면 자동적으로 4년 계약으로 바뀌는 것이다. 또 2년 합쳐 30홈런 이상, 또는 20홈런과 80타점 이상을 기록한다면 역시 자동적으로 4년 계약으로 전환된다. 물론 여러 문제로 그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더라도 팀이 판단해 4년 계약으로 전환할 수 있다.
강 그 수치는 조정이 많이 필요한 것 같다.
피츠 그쪽 입장을 이해한다. 하지만 여기서 많이 내리기는 힘들다.
강) 그렇다면 또 다른 기준치를 도입하자. 만약 내가 첫 2년간 이 기준치를 넘는 성적을 올린다면 2년 계약이 끝난 뒤 FA가 될 수 있는 권리를 달라.
피츠 우리는 강정호를 장기간 붙잡길 원하고 있다. 그가 잘 적응하지 못해 떠나가지 않는 한 2년 후 FA 권리를 주는 것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
강 이 경우 강정호가 팀의 기대보다 훨씬 뛰어난 성적을 올릴 경우 지금의 계약조건은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것이다.
피츠 그것은 성적에 따른 인센티브 보너스 조항으로 커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그가 한 시즌에 20홈런 또는 타율 .300 또는 50타점을 넘을 경우 성적에 따른 보너스를 얻는 것으로 해결하자. 좋은 성적에 따른 보너스는 후하게 책정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좋은 성적을 올린다면 자동적으로 다음 2년 계약이 개런티되는 것을 잊지 말라.
강 그 수치들도 역시 조정이 필요한 것 같다. 그리고도 4년간 총액 1.150만달러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강정호의 성적을 고려해 달라.
피츠 강정호의 성적이 뛰어난 것은 인정한다. 그렇기에 우리가 영입에 나선 것 아닌가. 하지만 그의 성적은 한국에서 거둔 것이고 여기서도 그런 성적이 나올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 아닌가. 우리는 그에게 그럴 성적을 올린 기회를 주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도 그가 성공하지 못할 경우에 대비해 리스크 관리를 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아직도 500만달러의 포스팅 피를 내야하는 것을 기억해달라. 이 액수를 합치면 2년에 950만달러, 4년에 1,650만달러짜리 계약이 된다. 우리는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싶을 뿐이다.
강 물론 그건 이해한다. 그렇기에 2+2 계약엔 동의할 의사가 있다. 하지만 첫 2년의 개런티 금액은 현재 450만달러에서 600만달러로 올려주길 원한다. 또 다음 2년의 구단 옵션 액수도 750만달러에서 1,050만달러로 올려달라. 4년 계약 기준으로 1,600만달러 조건이다.
피츠 이미 말했지만 우리 팀 야수 가운데 강보다 큰 계약을 가진 선수는 맥커천과 마테, 두 명 뿐이다. 우리로선 받아들이기 힘든 요구다.
강 우리 역시 2년 450만달러는 받기 힘들다.
피츠 그렇다면 중간에서 만나자. 바이아웃 액수를 50만달러에서 100만달러로 올리겠다. 그러면 2년 개런티는 500만달러가 된다. 마지막 2년 구단 옵션 액수도 750만달러에서 850만달러로 올리자. 이 경우 4년엔 1,250만달러 계약이 된다. (구단옵션 행사로 바이아웃 100만달러는 제외됨)가 된다.
강 우리가 이 조건에 동의한다면 옵션계약 확정에 필요한 기준 성적 협상에 유연하게 임해줄 수 있나.
피츠 가능한 최선을 다할 것이다.
강 마지막으로 의논할 문제는 마이너행 거부권이다.
피츠 그것은 곤란하다. 말했듯이 우리는 그를 장기적으로 키우고 싶다. 메이저리그 팀에서 벤치만 지키고 경기에 나서지 못한다면 본인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손해다. 마이너에 있는 게 결코 손해가 아님을 이해해 달라.강 하지만 우리 역시 장기간 마이너에 머물 수는 없는 입장이다.
피츠 이해한다. 하지만 그 것은 인위적으로 정하기 힘든 문제다.
강 최소한 마이너행 횟수와 기간에 제한이 있어야 한다. 또 기본적으로 메이저리그에서 뛸 기회를 주겠다는 보장이 필요하다.
피츠 어떤 조건을 원하나.
강 마이너행은 1년에 두 번 이내로 제한해 달라. 물론 부상 후 재활에 필요한 마이너행은 예외다. 또한 마이너에서 체류기간은 최대 2주로 해달라.
피츠 정규시즌은 6개월이나 된다. 1년에 두 번만은 어렵다. 최소한 3회는 있어야 한다. 또 체류기간도 3주까지로 하자.
강 그렇다면 여기에도 기준치를 설정하는게 어떨까. 어떤 기준치 이상의 성적을 올리면 마이너에 보낼 수 없게 한다면.
피츠 그 문제는 좀 더 검토해보자. 상호 윈-윈 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하지만 전진을 위해 때론 후퇴도 필요하다. 우리는 강정호가 메이저리그에서 스타가 되길 원한다. 그를 위해 마이너행도 필요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해달라.
강 알겠다. 긍정적으로 검토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