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통합검색
셰프데일리

창신동 '쪽방'·화곡동 '유흥가'에서 키운 꿈 일본까지 갔다

[국민내비 '김기사' 록앤올 성장기]경상도 사나이 셋의 의기투합…2016년 중화권 등 진출국 확대

머니투데이 신혜선 부장, 최광 기자 |입력 : 2015.01.05 05:25|조회 : 218175
폰트크기
기사공유
창신동 '쪽방'·화곡동 '유흥가'에서 키운 꿈 일본까지 갔다
1999년 경북 안동서 올라온 사내가 살던 서울 창신동 쪽방은 햇빛도 들지 않는 반지하였다. 화장실마저 공용, 변변한 살림 하나 없던 그 곳에 '침입자'가 나타났다. 부산 동아대 컴퓨터공학과 91학번 동기가 상경한 것. 사내가 다니던 벤처에 친구가 1년 늦게 합류하면서 둘 다 연고가 없던 서울살이라 동거를 택했다.

월세 반을 부담하기로 한 친구는 쪽방생활에 반기를 들었다. 부산 토박이였던 친구는 조용한 쪽방이 답답했다. "봐라, 머스마 둘이 사는 데 TV와 세탁기는 필요하지 않겠나." 친구는 자신이 TV를 살 테니 사내에겐 세탁기 살 것을 제안했다. 친구는 약속대로 세탁기를 사왔다. 그런데 사내의 손에 들려 온 것은 TV가 아닌 전자기타. "TV를 사려고 세운상가에 갔어. 기타 악기점이 보여서 구경이나 하자 들어갔는데, 전자기타가 너무 이쁘더라고. 나도 모르게 그냥 샀네." 친구는 부아가 치밀었다. '내 저 기타를 언제고 없애리라.' 사내는 그저 무덤덤했다. 아니 오히려 속상했다. 쪽방 반지하라 소리도 크게 키우지도 못해 헤드폰을 끼고 연주를 하다 보니 맛이 안 났다. 학창 시절 즐거움을 모처럼 느껴볼까 했지만 기대는 물거품으로 끝나고 친구와 사이만 틀어지게 생겼다. 친구는 화 난 게 분명했다. 사내는 다음 달 바로 TV를 샀다.

30대 경상도 비혼 청년 두 사람의 꿈은 따뜻한 물이 나오고 화장실이 딸린 집이었다. 1999년 12월31일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밀레니엄버그가 실제로 존재하는지를 확인하겠다며 자정, 종로의 한 커피숍에 있던 두 남자는 '생활 도원결의'를 했다. 이번에도 역시 친구가 먼저 제안했다. "따신(따듯한) 물 나오는 곳에서 잠시라도 인간답게 살아보자. 이건 아이(니)다."
국민내비 김기사를 서비스 하는 록앤올의 두 창업자 박종환(왼쪽) 김원태 공동대표./사진=김창현 기자
국민내비 김기사를 서비스 하는 록앤올의 두 창업자 박종환(왼쪽) 김원태 공동대표./사진=김창현 기자
그들이 서울에서 두 번째 정착한 곳은 강서구 화곡동의 '유흥가'. 이사는 야반도주가 따로 없었다. 비용을 아끼기 위해 회사 봉고차를 빌리기로 했다. 근무 후 이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새벽 2시에 도착한 화곡동에서 친구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계약했던 낮의 동네와 밤의 그곳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정신 사나운 네온사인 불빛을 헤매다 결국 계약한 집을 찾지 못한 청년 둘은 여관방에서 하루를 묵었다. 아침에 깨고 보니 계약한 오피스텔 바로 앞이었다.

어찌어찌 이사를 마치고 회사로 돌아오는 길마저도 순탄치 않았다. 서울에서 운전이라곤 딱 두 번이 전부였던 친구가 운전대를 잡고 회사로 복귀하던 길. 사내는 옆자리에서 지도를 펴고 '길안내'를 했다. 하지만 길을 잘못 들어 경기 일산을 거쳐 파주까지 길을 헤매고 또 헤맸다. 논두렁에 차를 처박기까지 했다. 가까스로 차를 빼내던 이들은 앞으로 서울살이가 고단할 것임을 예견했다.

대학시절부터 치자면 25년에 달하는 우정이다. 마흔을 훌쩍 넘은 이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당시 운전대를 잡은 친구는 '국민내비 김기사' 록앤올의 박종환(42) 공동대표, 옆에서 '인간 김기사' 노릇을 한 이는 김원태(43) 공동대표다. 대한민국 도로 위를 질주한다면 없어서는 안되는 앱으로 꼽히는 '김기사'. '김기사 이야기'는 이렇게 투박한 경상도 총각 둘의 창신동 '쪽방 동거'부터 시작됐다.
국민내비 김기사의 세 공동창업자. 왼쪽부터 신명진 록앤올 부사장, 박종환 대표, 김원태 대표./사진=김창현 기자
국민내비 김기사의 세 공동창업자. 왼쪽부터 신명진 록앤올 부사장, 박종환 대표, 김원태 대표./사진=김창현 기자
#1. 나이 마흔에 창업? "이혼도장 찍고 해!"

록앤올 창업 1등 공신에는 한명이 더 있다. 쪽방생활은 함께 하지 않았으나 박·김 공동 대표가 진학한 부산대 대학원 전자계산학과 동료 신명진(40) 현 록앤올 부사장이다.(김 대표가 대학원 97학번, 신 부사장이 98학번, 박 대표가 99학번) 신 부사장은 개발을 총괄한다. 이들 셋은 1999∼2001년까지 '김-박-신' 순차로 포인트아이라는 벤처 회사에 합류하면서 학창시절의 인연을 이어가던 중이었다.

포인트아이는 2006년 코스닥에 상장하고 KT와 LG유플러스(당시 LG텔레콤)에 폰내비를 제공하면서 잘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세 사람 모두 자기 일이 아닌 듯 허전함을 지울 수 없었다. 모두 지리정보시스템, 내비게이션 등 전공과 노하우가 분명한 '개발자'들이었다.

"그저 이동통신사를 위한 '용역수행자'아이가. 우리 삶은 그 이상도 이하도 아이다." 누군가 툭 던진 이 한마디가 청년들의 가슴에 비수로 꽂혔다.

창업을 하게 된 결정적 사건이 벌어졌다. 2009년 포인트아이가 SK텔레콤과 관련된 사업을 주로 하는 에이룩스에 인수됐다. KT는 경쟁사를 의식하며 협력을 중단했다. 결국 에이룩스에 인수된 포인트아이는 폰내비 사업을 정리하게 됐다. 김 대표와 신 부사장은 회사를 나왔다. 포인트아이에 홀로 남은 건 박 대표였다.

"사장이 사업을 중단한다는데, 우리가 쌓은 폰내비 노하우 그냥 버리기 아깝지 않나? 보아하니 미국에선 아이폰이 난리도 아이다. 우리나라도 곧 아이폰이 들어올 듯 하고. 이번 기회야말로 통신사에서 독립해 우리만의 내비사업을 할 기회 아니겠나." 이번엔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었다. 당시 김 대표의 나이는 불혹. 박 대표는 39세, 신 부사장은 37세였다.

남은 일은 집안을 설득하는 일. 반대가 가장 심한 곳은 박 대표 집안이었다. 첫째가 초등학교 3학년, 둘째가 세 살. "이혼도장 찍기 전에는 안돼, 못해." 부인의 태도는 강경했다. 상황은 김 대표 쪽도 비슷했다. "이보게 내 결혼할 때 뭐라고 했나. 돌아가신 장인어른이 사업해서 맘고생이 심했다고. 사업하지 않는다고 해서 결혼 허락했는데 1년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사업을 한다니. 내가 속았네 속았어." 신 부사장 아내만이 격려했다. "알았어요. 잘 해봐요."

창신동 '쪽방'·화곡동 '유흥가'에서 키운 꿈 일본까지 갔다
#2. 록을 연주하고 듣듯 '록앤올'(LOC & ALL), 입에 감기는 '김기사' OK

세 사람의 결심은 굳어졌다. '경상도 사나이' 셋은 김 대표 집에 모였다. 진짜 '도원결의'가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와인 한잔을 놓고 두런두런 얘기를 시작했다. "친구끼리는 절대 동업하지 말라고? 고마, 됐다. 우리는 모르는 말이다. 지금 내비 전문 업체라고 하는 곳의 스마트폰 내비 앱은 기존 내비 소프트웨어를 단순히 옮겨놓은 수준밖에 안된다. 완전 새로운 걸 만드는 거다." 남자 셋의 자신감은 충만했다. 옆에서 안주를 챙기며 슬쩍 슬쩍 남자들의 얘기를 들었던 김 대표의 아내는 그제야 안심했다. "이 남자들, 생각보다 신중하구나. 무모하지 않겠구나."

셋은 모두 퇴직금을 털어야했다. 2010년 록앤올이 만들어졌다. 테헤란로 벤처기업의 성지로 불리는 오피스텔 성지하이츠. 사무실에는 이들 세 명과 포인트아이에서 내비사업을 한 팀원 4명, 총 7명이 합류했다.

이제는 회사명과 서비스명을 지을 차례. 차분하고 기획을 주로 하던 김 대표가 실력을 발휘했다. 기타연주를 좋아하는 김 대표는 록앤올을 제안했다. "록음악처럼 신나는 회사를 만들자는 의미도 있고, '로케이션 앤 올', '로컬'이라는 뜻도 있지. 어때?"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서비스명은 신 부사장이 맡았다. "서비스명은 쉽고 친숙하고 입에 착 달라붙고 귀에 감겨야해요. 좋잖아요, 김기사∼." 직원 투표에서 낙점됐다. 2011년 3월, 김기사 서비스는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3. "카드깡을 해도 직원 월급은 제때"…유명 VC 심사역에 3번 '까였지만'

김기사는 나온 지 일년도 안된 아이폰용 서비스 출시 후 한 달 만에 무료로 전환하며 유명세를 탔다. 하지만 지도정보를 사오고 서버를 운용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당장 매출도 없었다. 하지만 죽으라는 법은 없었나 보다. 마침 포인트아이는 SI(시스템통합) 사업마저 정리해야 했는데 사장의 도움으로 이 사업을 통째로 받아올 수 있었다. 최소한 먹고 사는 일은 해결했다. 그렇다 해도 개발비가 워낙 많이 드는 사업이라 계속 불어나는 적자를 막기란 쉽지 않았다.

투자자들은 쉽게 움직이지 않았고 창업 3인방은 속이 타 들어갔다. 한 유명 투자기관으로부터는 두 번이나 거절을 당했다. 심사를 담당한 심사역이 나와 설립한 또 다른 유명 투자사에선 고배를 마셨다. "그래도 월급날은 어길 수 없지 않나." 세 남자는 이미 집 담보 대출까지 받은 상태여서 각자 '카드론'을 받고,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했다.

그러던 중 길이 보였다. 김기사를 눈여겨본 이는 이석우 다음카카오 공동대표였다. 김기사는 머니투데이와 미래창조과학부(당시 방송통신위원회)가 공동주최하는 '2011년 대한민국 모바일앱어워드'에서 4월의 으뜸앱을 수상하고 그해 연말 대상(당시 방통위원장상)을 받았다. 모바일앱어워드 수상기업 모임에서 연을 맺은 이 대표가 한국투자파트너스에 다리를 놓아 드디어 2012년, 투자가 결정됐다.

물론 그해 1월 첫 미팅을 한 후 투자가 결정되기까지 우여곡절도 적지 않았다. 한참 한국투자파트너스와 투자 논의를 진행 중이었는데 유명 포털업체와 통신사로부터 동시에 인수제안을 받게 된 것. 당시 한국투자파트너스에서 록앤올을 담당하던 박영호 수석심사역은 록앤올의 사정을 이해하고 끝까지 기다렸다.

국민내비 김기사를 서비스하는 록앤올 임직원들. 지난해 SI(시스템통합) 사업을 하던 직원들이 회사를 분리하면서 록앤올은 김기사 서비스만 집중한다./사진=김창현 기자
국민내비 김기사를 서비스하는 록앤올 임직원들. 지난해 SI(시스템통합) 사업을 하던 직원들이 회사를 분리하면서 록앤올은 김기사 서비스만 집중한다./사진=김창현 기자
#4. 좌회전 대신 우회전, U턴 대신 P턴…日 접수 후 '김기사 실크로드' 닦는다

록앤올은 현재 직원 45명의 어엿한 벤처기업이 됐다. 궁여지책으로 벌였던 SI사업은 아예 분리시키고, 오로지 김기사만 남겼다. 떠나간 10명의 자리는 '젊은 피'로 채웠다. 김기사는 누적 다운로드 850만건, 월 이용 건수는 8000만건에 달한다.

이들 말마따나 '강남 8학군' 출신도, 이른바 'SKY'로 불리는 명문대학 출신도 아닌 경상도 남자 셋이 친 사고의 결과치고는 '대단하다'는 칭찬이 결코 아깝지 않을 정도다.

'국민내비 김기사'는 2015년 양띠 해를 맞아 기어를 한 단계 올리고 '고속주행'을 멈추지 않을 계획이다. 우선 '드라이비'(dribee)란 서비스명으로 1월 중 일본 이동통신사 KDDI의 앱마켓 'AU스마트패스' 입점이 확정됐다. 1년간 준비한 결과다. KDDI앱마켓은 1200만명의 회원을 자랑하는 폐쇄형 회원제 마켓이다. 록앤올은 KDDI로부터 "통상 AU스마트패스에는 입점만으로도 월 5억원 이상 매출이 발생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연간 60억원 매출을 보장받는 일본사업 앞에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친구 셋'도 들뜨지 않을 수 없었다.

창신동 '쪽방'·화곡동 '유흥가'에서 키운 꿈 일본까지 갔다
김기사의 일본 진출에는 또 다른 도움이 있었다. 고영하 고벤처포럼 회장이다. 앞서 2013년 10월 록앤올은 일본 벤처캐피탈 사이버에이전트 등으로부터 40억원을 투자받았는데, 고 회장이 다리를 놓았다. 사이버에이전트 측은 "복잡하고 좁은 도로가 많은 일본시장에서 김기사 서비스는 충분히 승산있다"고 격려했다. 특히 "왜 이렇게 좋은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느냐"고까지 했다. 콘텐츠 유료이용 문화가 정착된 일본시장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록앤올이 일본 진출에 거는 기대가 큰 이유다.

을미년 록앤올의 일본 진출은 세계시장 진출의 첫발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을 거점으로 일본과 중국을 연결하는 '김기사 실크로드'. 박 대표는 "2016년엔 중화권, 매년 1개 나라씩 진출국가를 늘려갈 것"이라며 "2020년쯤 되면 '김기사 실크로드'도 완성되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레 말했다.

"우리 3명 모두 부자가 될 생각은 없습니다. 록앤올은 벤처지만 구성원 연령층도 결코 낮지 않고요. 늘 회사를 위해 일한다고 하는데 도대체 회사가 누구죠? 실체가 없어요. 그 회사가 누구인지 알 수 있도록 그렇게 함께 갈 겁니다." "즐거운 일, 목숨 걸 가치가 있는 일에 몰두하다보니 오게 됐어요. 정말 가치 있는 일이라면, 한 번쯤 목숨을 걸 만하다면 창업해볼 만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혼자였다면 절대 못했을 겁니다." 서로를 쳐다보는 세 남자 모두 고개를 끄떡이며 입을 모았다.

20대에 만난 남자 셋은 모두 마흔을 넘었다. 무심해 보이는 듯한 이들의 우정은 '같은 목표를 향한 즐거운 도전' 앞에서 투박하지만 선하게 빛나고 있었다.

  • 0%
  • 0%


오늘의 주요뉴스


베스트클릭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