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호의 책통]독학의 천국시대가 왔다

“사내실업(社內失業)을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올해야말로 독학!” 일본 마이니치신문 1월 13일자에 실린 기사의 제목이다. 사내실업자는 감량경영에 따른 조직개편으로 중간관리직이 폐지되면서 직무를 배당 받지 못해 할 일이 없이 소일해야 하는 중간관리자를 일컫는다.

“올해 만은 뭔가 배우고 싶다”는 생각으로 신년을 맞이한 사람이 많은 탓일까? 지금 ‘독학’이 주목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독학 시대가 왔다’고 말한다.”로 시작되는 이 기사는 ‘도쿄대 교수가 가르치는 독학공부법’의 저자인 야나가와 노리유키가 “75세까지 일하는 시대가 머지않았다. 이제는 학창시절에만 모두 같은 궤도에서 공부하면 밝은 미래가 약속되는 고도성장시대와는 다르다. 직무상 필요한 스킬이나 지식을 새로 배우지 않으면 사회의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고, 50?60대에 ‘사내실업’이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퍼지지 않나”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왜 새삼 공부를 말하는 것일까? 시라토리 하루히코는 ‘독학’(이룸북)에서 “자기 변혁을 가져오기 위해 가장 크게 펼쳐져 있는 황야 속의 보이지 않는 길, 그것이 바로 자발적인 공부”라고 말했다. 우리 사회에서도 당장 써먹기 위한 공부, 성적을 위한 공부가 아닌 삶 속에서 그 자체를 즐기는 공부의 중요성이 강조되어왔다.

고미숙은 2007년에 펴낸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에서 “모든 학문이 동일한 욕망과 비슷한 능력의 주체들을 생산해”내는 구조이다 보니 “20세기 이래 한국사회를 지탱해온 ‘근대적 지식’의 종말이자 그것의 모태였던 ‘대학의 죽음’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한 바가 있다.

이런 경고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는 이명박 정부 내내 ‘셀프힐링’의 자기계발서에 깊이 몰두했다. 그러다 2012년에 바버라 애런라이크의 ‘긍정의 배신’ ‘노동의 배신’ ‘희망의 배신’ 등 ‘배신 3부작’이 나오면서 심리학과 교묘하게 혼합된 긍정에 관한 책들이 갖는 변종 자기계발서로서의 역할에 대한 비판이 일기 시작했다.


2013년에는 이원석이 ‘거대한 사기극’에서 자기계발 현상이 팽창의 끝에 이르러 거품이 꺼지고 있다고 밝히며 자기계발서는 ‘거대한 사기극’에 불과했다고 격렬하게 비판했다. 이후 우리 사회에는 자기계발서를 버리고 공부를 하자는 책들의 출간이 크게 늘었다.

기사에서도 지적하고 있지만 독학에 적절한 환경이 요즘처럼 갖춰진 적은 없다. 인터넷을 이용하면 세계 일류대학의 강의를 무료로 들을 수 있고 잘 만든 무료 교재가 인터넷에 퍼져 있어 독학 천국이라 할 수 있다. 마음먹기만 하면 자신이 편할 때 원하는 대로 마음껏 공부할 수 있다.

2015년 한국사회는 어떨까? 독학이라 해서 혼자 틀어박혀 공부하는 것이 아니다. 강연회나 컬처스쿨 등 다양한 기회를 잘 이용하고 뜻을 함께 하는 사람과의 만남도 소중하다. 따라서 함께 책을 읽으며 토론하는 모임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