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정몽구·구본무 단독회동…재계'왕양 신드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사진 왼쪽)이 23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왕양 중국 부총리를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제공=삼성

"마치 한국 재계에 '왕양 신드롬'이 일어난 것 같네요"


왕양 중국 국무원 경제담당 부총리의 방한성과를 본 한 재계 관계자의 촌평이다. 지난 22~24일 2박3일 일정동안 삼성·현대차·LG 등 한국의 3대 그룹 총수들이 잇따라 왕 부총리와 개별 회동을 가졌고 국내 양대 재계모임인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도 단체 간담회를 잡았다. 사실상 재계가 왕 부총리를 만나기 위해 총출동한 셈이다.(본지 23일자 12면 참조)

왕 부총리가 물론 2017년 정치국 상무위원 진입이 유력한 중국 내 최고위급 핵심관료지만 국가 정상급 인사가 아님에도 이 같은 환대를 받은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그만큼 그의 파워를 보여주는 동시에 중국이 우리 기업들에 있어 얼마만큼 중요한 시장인지 새삼 각인시켜준 사례라는 얘기가 나온다.

◇中실세에 이재용·정몽구·구본무 "따로 만나겠다"=왕 부총리의 공식 방한 목적은 '중국 관광의 해' 행사 참관이었다. 하지만 실제 일정을 보면 박근혜 대통령 예방과 최경환 경제부총리 면담을 가진 뒤 한국 기업인들과의 만남에 대부분의 시간을 쏟으며 경제협력 강화에 초점을 맞췄다.

특히 관심을 끈 부분은 이재용 삼성전자 (77,600원 ▼2,000 -2.51%) 부회장과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등 '빅3' 총수들이 잇따라 자처해 왕양 부총리와 개별 회동을 가진 점이다.


맏형 그룹의 총수들이 단독 회동을 갖는데다, 허창수 전경련 회장(GS그룹 회장)이 스위스 다보스포럼 참석으로 출국하고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옥중에 있어 대신 '재계 서열상'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전경련 초청 오찬 행사를 주재했다는 후문이다.

24일 전경련 초청 오찬에는 토요일임에도 신 회장을 비롯해 권오준 포스코 회장,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등 50여 명의 우리 기업인들이 대거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그 전날 대한상의에서는 박용만 상의 회장(두산그룹 회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 등 서울상의회장단이 왕 부총리와 회동했다.

'빅3' 총수는 재계 단체 행사에는 전문경영인을 보내고 자신들은 일정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은 채 단독 회동을 가졌다. 그만큼 별도로 긴밀하게 협력을 논의할 중요한 자리라는 뜻이다. 거의 매년 이 시점에 열리는 다보스포럼에 참석했던 이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올해 빠진 것도 이번 회동의 중요성을 감안했기 때문이라는 전언이다.

현대차그룹 정몽구 회장(오른쪽)이 24일 오전 중국 왕양 국무원 부총리(왼쪽)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 정몽구 회장과 왕양 부총리는 이날 한-중간 자동차산업 협력 및 교류 활성화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사진제공=현대차그룹

◇'빅3' 총수-왕 부총리, 투자·협력 강화 의지 확인=이들 빅3 총수들은 개별로 만나 중국과의 중장기적 사업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재계에서 가장 먼저 23일 조찬 모임을 가진 이 부회장은 "신라호텔과 용인 에버랜드를 찾는 중국 고객들이 늘었다"면서 "중국 지방 정부 및 기업과도 협력을 확대해 한·중 교류 활성화에 적극 동참하겠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2월에도 베이징에서 왕 부총리를 만나 시안 반도체 공장 설립 등에 대한 협의를 한 바 있다.

24일 오전에는 정 회장과 구 회장이 잇따라 신라호텔로 방문했다. 특히 구 부회장은 2008년 왕 부총리가 광둥성 당서기로 재직하던 시절 그의 관할지인 광저우에 4조원 규모의 LG디스플레이 LCD(액정표시장치) 공장을 투자한 바 있어 인연이 각별하다. 이 공장은 지난해 9월 완공돼 본격 가동 중이다.

구 부회장은 광저우 공장 협력에 감사의 뜻을 표하는 한편 "중국 정부에서 펼치고 있는 경제정책, 특히 친환경 정책에 적극 동참하겠다"고 약속했고, 이에 왕 부총리는 "LG의 중국 사업이 잘 추진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화답했다. 왕 부총리는 LG의 전기차 배터리 기술력도 높은 관심을 나타냈다.

이와 함께 정 부회장은 "허베이성 창저우와 충칭시에 짓는 4·5공장은 중국 정부의 발전 정책에 기여할 뿐 아니라 한·중 경제협력의 새 가교가 될 것"이라며 "신공장 건설이 예정대로 추진될 수 있게 협조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왕 부총리는 "현대차그룹과 중국의 자동차산업 협력 관계가 30년 후는 물론 50년, 그 보다 더 먼 미래에도 지속될 수 있도록 중국 정부도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왕 부회장의 방한과 한국 재계의 적극적인 관심으로 한국과 중국 간 경제 협력이 한층 탄력을 받는 계기가 될 것이란 긍정적 전망이 나온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왕 부총리는 지금도 실세로 통하는데다 앞으로 올라갈 일만 남은 '블루칩'인 셈"이라며 "중국 문화에서 '관시'(關係·친밀한 인간관계)를 매우 중요시하기 때문에 현지 사업 비중이 높은 우리 기업들에겐 매우 중요한 비즈니스 기회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본무 LG 회장(오른쪽)이 24일 오전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한국을 방문 중인왕양 중국 부총리(왼쪽)를 만나 상호 발전 및 협력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사진제공=LG

한편 포스코는 충칭 일관제철소 건설에 대한 중국 정부의 조기 승인 움직임을 이끌어 냈다. 권오준 포스코 회장은 "충칭 프로젝트에 대해 (중국 정부가) 신속히 결정키로 했으며 시점은 1개월 이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중국 내 백화점과 대형마트 사업을 중심으로 투자 확대안을 논의했다. 롯데그룹은 중국 선양에 지난해 오픈한 백화점과 시네마를 비롯해 2017년까지 쇼핑몰과 대형마트, 호텔 등을 추가로 지어 연면적 116만㎡의 복합단지를 완성할 계획이다.

이밖에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금호타이어 난징공장 확장 이전 등에 대한 지원을 당부했고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대북사업에 대한 중국 정부의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