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금융전문가, 집으로 내쫓는 대한민국

머니투데이

김진형 기자
박종진 기자

"저도 이제 몇 년 안 남았네요."

요즘 50대 초반 금융감독원 간부들 사이에서는 자조와 한숨이 끊이지 않는다. 취임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임원들이 줄줄이 나간데 이어 다음달 국장급 인사를 앞두고 대거 명예퇴직설마저 흉흉하게 돌고 있어서다.

수 십 년 쌓아온 경륜을 토대로 한창 열정적으로 일해야 할 금융당국 간부들이 언제 집으로 내쫓길지 몰라 불안에 떠는 실정이다. 이전처럼 각종 금융협회나 금융공공기관의 고위직, 금융회사 감사로 나가는 길은 완전히 막혔다. 말 그대로 그냥 집으로 가야 한다.

2011년 저축은행 사태 이후 감사 재취업 관행이 사라진데 이어 작년 '관피아'(관료+마피아) 차단으로 그마저 남은 '자리'도 언감생심 생각 못한다.

자리는 없지만 잘리는 나이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금감원의 경우 이번 부원장보 교체 인사에서 1958~1960년생들이 떠나고 1959~1963년생들이 후보로 내정됐다. 사정이 이러니 1959~1960년생, 심지어 1961년생 국장급까지 상당수가 명퇴를 해야 한다는 얘기가 파다하다.

현재 59, 60년생 국·실장급 간부는 10명 안팎, 61년생까지 더하면 20여명까지 늘어난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3월 말 공직자윤리법이 강화되면 취업제한 기간이 3년으로 늘어나는 만큼 조금 일찍 나가면 백수기간을 2년으로 줄일 수 있다는 차원에서 명퇴를 고민하는 국장급들이 있다"고 전했다.

물론 정년이 5년 이상 남은 이들 역시 사표를 내고 나간다하더라도 갈 곳이 없다. 당장 건강보험 등 4대 보험을 해결하지 못한다. 외부의 선입견과 달리 모아놓은 재산이 별로 없는 간부들도 태반이다.

게다가 3월31일부터 개정 공직자윤리법이 시행되면 취업제한 민간기업 수는 3960개에서 1만3500여개로 대폭 확대된다. 공직자윤리위원회 심사 없이 갈 수 있는 곳은 자본금 10억원 미만, 연간 외형거래액 100억원 미만의 작은 회사뿐이다.

답답한 건 금융위원회 공무원들도 마찬가지다. 후배들이 빼곡히 있는 마당에 마냥 한 자리에서 버틸 수도 없는 노릇이다. 최고위직인 1급(차관보)이라고 해봐야 1960년~1962년생으로 집에서는 아직 대학도 못간 어린 자녀들의 아버지이자 가장이다.

2년(3월 이후에는 3년)을 간신히 버텼다고 해서 특기를 살릴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지금 명퇴를 하면 1억5000만원 안팎의 명퇴금을 받을 수 있어 그걸로 2년을 버틸 수 있다는 계산도 해 보지만 2년 후에 자리가 난다는 보장은 없다. 2011년 저축은행 사태 이후 금감원 출신들의 금융권 진출이 차단되면서 공급이 부족한 만큼 기회가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희망만 있을 뿐이다.

오는 2월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 3월 권혁세 전 금감원장 등 거물급 인사들의 취업제한이 풀리지만 '관피아'라는 시각이 사라지지 않는 한 금융 산업을 위해 실력 발휘하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일각에서는 여전히 취업제한을 강화해야한다는 목소리가 적잖다. 그러나 수 십 년 전문 분야에서 실력과 경험을 쌓은 당국자들을 백수로 내모는 현재 상황은 득보다 실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모 대학 경영학과 교수는 "한 사람의 전문 당국자를 길러내는데 오랜 시간은 물론 국가적 자원이 투입된다"며 "문제가 있으니 무조건 차단한다는 발상보다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고급 인력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