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문 열렸다" 필리핀行 러시

머니투데이

변휘 기자

은행권이 새로운 해외 진출 대상으로 일제히 필리핀을 주목하고 있다. 필리핀 정부가 외국계 은행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하면서 "이제야 문이 열렸다"는 표정이다. 이에 따라 우리은행과 신한은행, 기업은행 등이 동남아 신흥시장의 주요 공략대상으로 필리핀 진출을 서두르는 표정이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필리핀 정부는 지난해 말 외국계 은행의 숫자 제한을 없애는 방향으로 관련 규정을 개선했다. 기존에는 필리핀 내에서 운영할 수 있는 외국계 은행 숫자에 한계를 둬 새로운 지점(법인) 설립에 사실상 장벽이 있었지만, 앞으로는 신규 진출의 문이 열리게 됐다. 또 지난해 10월엔 외국계 은행의 지점(법인) 설립 과정의 최소 자본금 요건을 24억페소 수준으로 낮추기도 했다.

다만 이 같은 최소 자본금은 5년 뒤 대폭 상향돼 최소 40억페소 수준으로 올라갈 전망이다. 지점 설립까지 2년 안팎 소요되는 필리핀 정부의 그간 허가 관행을 감안하면, 은행들은 적어도 올해 안에는 필리핀 진출을 위한 첫 발을 떼야 한다는 판단이다. 또 미얀마·라오스·인도네시아 등 아직 국내 은행들의 진출이 적은 다른 동남아 국가들에 비해 필리핀 정부는 외국계 은행의 진입 문턱이 비교적 낮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현재 필리핀에 진출한 국내 시중은행이 외환은행 뿐이라는 것도 다른 은행들의 경쟁을 유도하는 요소다. 은행권 한 고위 관계자는 "현지화가 중요하지만 아무래도 진출 초기에는 한국 교민과 국내 기업들이 고객 기반이 될텐데, 진출한 국내 은행이 적다는 것은 처음에 안착하기에 비교적 용이한 조건"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최근에는 정치적 혼란과 치안 문제로 다소 주춤하지만 이미 필리핀에 진출한 기업이나 은퇴 후 이민자들의 현황을 감안하면, 국내 은행들로서는 '먹거리'가 충분하다는 평가다. 또 실제로 필리핀에 진출한 국내 기업들의 다앙햔 국내 은행 개설에 대한 수요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우리은행과 신한은행은 적극적으로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우선 우리은행은 다음달 말 합병이 완료되는 인도네시아 우리은행(BWI)과 소다라은행(Tbk)을 중심으로 소매영업 확대를 위한 동남아 벨트를 구축할 계획이며, 이 과정에서 필리핀을 포함한 다른 동남아 국가들을 함께 둘러볼 계획을 세우고 있다. 신한은행도 동남아 영업 벨트 구축의 후보지로 필리핀을 염두에 두고 지난해부터 현지 조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기업은행 역시 필리핀 시장 진출에 관심을 갖고 있다. 한 관계자는 "지난해 규제 완화로 필리핀에 진출할 수 있는 보다 나은 조건이 마련됐다"며 "필리핀에 진출한 국내 중소기업들도 많기 때문에 새로운 해외 네트워크로 매력적인 대상"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국내 은행들의 필리핀 진출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면 또 다시 국내 은행간 경쟁으로 필리핀 시장 자체가 '레드오션'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필리핀은 국내 은행들에게 현재까지는 미개척지로 평가받지만, 동남아 국가 중에선 비교적 금융 시스템이 선진화돼 있는 곳이기 때문에 미국·유럽은 물론 일본·오스트레일리아의 유수 은행들도 대거 진출해 있다"며 "현지화 대신 한국인만 상대로 하는 '편한 영업'을 고민한다면 국내 은행끼리의 경쟁 심화로 또 다른 수익성 악화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