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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태 칼럼]그래도 해야 하는 일이니까

투자의 의미를 찾아서 <73>

투자의 의미를 찾아서 머니투데이 박정태 경제칼럼니스트 |입력 : 2015.02.02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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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태 칼럼]그래도 해야 하는 일이니까
#며칠 전 우리은행의 계약직 은행원이 사기 대출금으로 떼일 뻔한850억원을 지켜냈다고 해서 화제가 됐다. 지난해 말 무려 3조원이 넘는 수출실적을 위조해 여러 은행들에 수천억 원의 손실을 입힌 모뉴엘 사건에서 우리은행이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이 직원 덕분이었다.

나이 마흔둘에 직장생활 16년간을 계약직으로만 일해왔던 이 직원은 그 공로로 은행장 표창과 함께 정규직 전환까지 약속 받았다. 얼마 전 TV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던 만화 ‘미생(未生)’의 주인공 장그래처럼 계약직의 설움을 순전히 자신의 능력으로 단번에 날려버린 작은 성공 신화였다.

#그의 무용담을 잠시 들어보자. 그가 우리은행으로 옮겨온 지 두 달만인 2012년 10월 이미 우리은행에서 850억원을 대출해간 모뉴엘이 추가 대출을 요청해왔다. 모뉴엘은 당시 “빌 게이츠도 주목한 기업”이라는 찬사와 함께 언론으로부터 집중 조명을 받고 있었고 대출금에 대한 이자도 꼬박꼬박 잘 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모뉴엘이 홍콩을 거쳐 미국의 대형 유통업체 ASI에 수출했다고 하는홈시어터컴퓨터(HTPC)에 대해 직접 알아보기 시작했다. 모뉴엘 쪽에다 대충 물어본 게 아니라 아마존 같은 인터넷 쇼핑몰에서 팔고 있는지, 또 ASI가 실제로 납품 받았는지 확인해본 것이다. 알다시피 모뉴엘의 HTPC는 못쓰는 물건이었고 수출증빙은 전부 허위였다.

#그렇게 해서 우리은행은 대출금을 회수했고 이로부터 1년 뒤 모뉴엘이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사기극은 드러나게 됐다. 우리은행은 다행히 피해갈 수 있었으나 다른 은행들은 엄청난 피해를 입었고 무역보험공사와 책임 공방을 벌이고 있다.

물론 한 직원이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기에 가능했던 일이지만 어쨌든 계약직 은행원도 할 수 있었던 일을 다른 은행과 무역보험공사에서는 아무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일이라는 게 실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 세상에 수백억 원을 대출해 주면서 그 회사가 생산하는 제품의 품질이나 성능도 알아보지 않고, 또 제대로 수출돼 얼마나 잘 팔리고 있는지 확인해보지도 않는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그런데 이보다 더 기막힌 것은 모뉴엘의 전 직원이 털어놓은 이야기다. 그는 말하기를 이미 2010년에 대다수 직원들이 회사 경영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허위 매출이 많다는 걸 알았고 공공연히 ‘우리는 산업은행(모뉴엘에 대출해준 은행)에서 월급을 받는 공무원’이라는 말까지 오갔다고 했다. 심지어 회사가 불법과 탈법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을 안 뒤로 적지 않은 직원들이 저녁에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자기 개인 일을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왜 신고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양심적으로 (금감원에) 신고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바른 말 하면 자리 없애고 문제 제기하면 돈을 줘 입막음을 했다. 직원들도 생계가 달려있는 데다 월급도 적지 않았고 실적 올리라고 다그치지도 않으니까 가만히 있었던 거다.”말문이 막힐 지경이지만 이 말에 가슴 뜨끔한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사실 직장에서는 정규직이지만 자기 인생에서는 계약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진짜 중요한 것은 주체성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다. 자기 삶의 주인이 되려면 책임이 필요하다. 책임이 없이는 자존심도 가질 수 없고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조차 알 수 없다.

만화 ‘미생’에서 제일 와 닿았던 대목은 회사가 벌이던 요르단 사업의 비리를 장그래가 속한 영업3팀에서 캐내는 장면이었다. 그로 인해 여러 사람이 검찰 수사를 받거나 한직으로 물러나지만 “그래도 해야 하는 일”이라는 김 대리의 말에 장그래는‘휠체어 대국’으로 유명한 조치훈 9단의 말을 들려준다. 어차피 바둑일 뿐인데 왜 이렇게 처절하게 치열하게 두냐는 물음에 조치훈 9단은 이렇게 답했다. “그래도 바둑이니까.”바둑 한 판 이기고 지는 것, 그래봤자 세상에 아무 영향도 주지 못하지만 그래도 그에겐 전부인 바둑이다.

계약직이건 정규직이건 그래도 그게 내 삶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바로 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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