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셀' 비켜!…겉의 완성도보다 속의 진솔한 목소리 담는다"

25일부터 서울 국립중앙도서관 디지털 도서관에서 열리는 '독립출판 특별전'. 개성이 살아있는 다양한 종류의 출판물들이 시선을 자극한다. 이 전시회는 3월31일까지 이어진다. /사진=김고금평 기자

100페이지가 넘는 책이 거의 없고, 글자체도 별로 눈길을 끌지 못한다. 책 구성도 밋밋하고 오색찬연한 화려함과 세련미는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다. 대형 서점에서 흔히 보던 보편적 기준에 부합한 책들은 이곳에 하나도 없다.


대신 자주 들어보지 못한 특이한 주제들로 엮인 자신만의 고백이 있거나 훈련받은 생각에서 조금은 멀리 떨어진 삐딱한 시각이 촘촘히 배어있을 뿐이다.

지난 25일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처음 얼굴을 드러낸 ‘독립출판 특별전’은 못생긴 과자에 자꾸 손이 가는 느낌처럼 속살을 보고 싶은 충동이 강한 현장이었다. 형식도 틀도 갖추지 않은 제멋대로의 구상과 콘텐츠 앞에선 나와 다른 사람의 특별한 생각들, 한번쯤 들추고 싶었던 심연의 세계가 골고루 수놓였다.

영화판에선 ‘독립영화’가 있고, 음악신에선 ‘인디음악’이 있는 것처럼, 출판계에서도 ‘독립출판’이 있다. 기존 상업 출판사들이 하지 못하는 전혀 다른 방식의 제작과 신선한 콘텐츠로 구성된 출판물이 그 대상이다.

국립중앙도서관이 오는 3월31일까지 디지털도서관 전시실에서 여는 독립출판 특별전 ‘도서관, 독립출판, 열람실’은 6, 7년 전 태동해 이제 본격적인 성장기를 겪고 있는 독립출판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


임원선 국립중앙도서관 관장은 독립출판의 특별전을 개최한 것과 관련, “중앙도서관의 존재 이유는 국내 존재하는 모든 책의 망라적 수집을 관철시키는 일”이라며 “대중성과 상업성에 연연하지 않는 영역도 충분히 주목받고 조명돼야한다”고 말했다.

'독립출판 특별전'에서는 400여종 600여권을 만날 수 있다. 일러스트, 만화, 라이프스타일, 사회, 예술, 문학, 사진, 디자인, 유스컬처 등 다양한 장르의 콘텐츠들이 가득하다. /사진=김고금평 기자

◇ 수제책, 엽서 매거진 등 다양한 독립출판물…“형식과 틀을 깨다”

10개 섹션으로 나뉜 이번 특별전에는 400여 종 600여 권에 이르는 출판물들이 선보인다. 이 가운데 3분의 1이 잡지고 나머지가 ‘기타’다. 6, 7년 전 시작된 독립출판물은 새로운 출판인과 예술가, 젊은이들의 열정과 세계관이 어우러지며 자연스럽게 활성화됐다.

셀프 퍼블리싱(self-publishing)으로 불리는 자가 출판 방식으로 책을 만드는 이들부터 기존 상업 출판사와 다른 방식으로 책을 출간하려는 소규모 출판사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다.

독립출판물의 가장 큰 매력은 개인의 작은 목소리를 창의적으로 배출할 수 있다는 점이다. 독립출판 서점 헬로인디북스 관계자는 “독립출판물은 겉으로 보이는 완성도보다 책속에 담긴 진솔한 목소리와 열정적인 제작 과정이 매력”이라고 소개했다.

속이 중요하다보니, 형식과 틀을 깨는 과정들이 속속 이어진다. 제작에선 손으로 직접 만든 수제책, 부록으로만 이뤄지거나 엽서로 구성된 매거진 등 새로운 형식의 책들이 늘고 있고, 이를 찾는 독자층도 10대에서 50대까지 폭넓게 구성되고 있다.

독립출판 서점들의 행보도 다양하거나 파격적이다. 책방 일부를 제작자들의 전시 공간으로 운영하기도 하고, 워크샵이나 팟 캐스트 등을 통해 제작자의 이야기를 들려줄 기회를 마련하기도 한다.

'독립출판 특별전' 포스터. 특별전 주제는 '도서관, 독립출판, 열람실'이다.

◇ ‘나만의 작은 목소리’…편식과 쏠림의 사회에서 벗어나다

독립출판에서 ‘독립’은 자본과 책 형식에서의 탈피다. 어느 정도 수익을 담보해야하는 상업출판사는 1000부 이하의 책을 만들기 힘들지만, 독립출판은 이 같은 마케팅 전략에서 완전히 자유롭다. 자본에서부터 벗어나면 주제 의식이 강해지거나 개성 강한 콘텐츠들이 쏟아질 수밖에 없다.

이번 특별전을 맡은 김광철 큐레이터는 “독자들이 많지 않아도 독립출판이 계속 성장하는 이유는 젊은 제작자들의 소통 욕구가 갈수록 커지기 때문”이라며 “젊은이들이 세상을 좀 더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표현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기술의 발달도 독립 출판의 성장을 앞당기는 배경 중 하나다. 지금은 원할 땐 언제나 책을 낼 수 있는 ‘POD’(print on demand)시대여서 200, 300부 정도의 소량 출판이 가능해졌다.

김광철 큐레이터는 “책을 만들어 팔고 그 판매금으로 새로운 책을 만드는 흐름은 기존과 같지만, 교보문고 같은 대형 서점에서 만나는 비슷한 느낌의 책은 독립출판에서 공유하기 힘들다”며 “이는 독립출판이 경제보다 취향과 문화를 공유하는 태도에, 그리고 문화를 창조하는 의지에 더 큰 목적을 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편으로는 독립출판물이 게이트 키핑(gate keeping·콘텐츠 취사 선택 과정) 시스템이 확실하지 않아 기성 독자와 출판사에겐 장난 수준이나 순진하게 비쳐질 수 있지만, 그 역시 하나의 색깔있는 무기가 될 수 있다고 관계자들은 덧붙였다.

정준민(문헌정보학) 전남대 교수는 “19세기 개인출판운동에서 출발한 독립출판은 다양한 예술 등의 표현방식과 결합하면서 개인의 예술적 가치를 표현했고 나아가 커뮤니티를 활성화하는 도구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며 “독립출판에는 외부를 욕망하고 그 밖을 희망하는 개인의 솔직한 움직임이 꿈틀거린다”고 했다.

'독립출판 특별전'에는 제목부터 호기심을 자극하는 책들이 다양하게 수놓여있다.

◇ “안타까운 소멸 막기위해 도서관의 역할 중요”

앞으로 독립출판의 미래와 생존 가능성은 어떻게 전개될까. 독립출판 서점 유어마인드를 운영하는 이로씨는 “올해 (양적으로) 정점을 찍고 있고, 이후에는 더 잘게 분화될 것 같다”며 “더 팽창하면 독립출판속의 독립출판 같은 구도가 생겨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인디음악이 식상할 때, 또다른 인디가 나타나 신을 주도한 것처럼, 독립출판도 기존의 것을 공격하고 부정하는 변증의 과정을 거쳐 진화할 것이라는 얘기다.

부산의 한 독립출판 서점 관계자는 지금 독립출판의 모습을 과열되는 생성, 불안한 유지, 안타까운 소멸이라는 말로 요약했다. 최소의 독자만으로 자생하는 독립출판이 실행공동체로 나아가기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지원은 무엇일까. 해답은 도서관에 있다.

정준민 교수는 “도서관의 독자층을 불특정 다수가 아닌 특정인의 집단으로 바꿀 수 있다면 독립출판이 최소 독자층을 확보할 수 있다”며 “도서관이 독립출판물을 체계적으로 보유하고 만들어가면서 도서관내 실행공동체 또는 학습공동체를 조성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