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사무라이債 6000억 선제조달…3% 인수금융 시도

머니투데이

박준식 기자
김남이 기자

올해 7조5000억원의 신규투자를 집행하기로 한 롯데그룹이 국내외에서 상반기 중 1조1000억원 이상의 선제적 자금조달에 나서기로 했다. 사실상 무차입 기반의 경영을 지켜온 롯데가 신동빈 회장의 경영권 승계가 확실해진 이후 재무 전략에서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롯데는 최근 KT렌탈을 1조200억원에 인수하기로 하고 이중 절반 가량의 자금을 주식담보 대출로 조달할 계획을 세우고 국내 금융권에 타진하기 시작했다. 롯데는 일본에서 롯데쇼핑과 호텔롯데를 통해 각각 300억엔(약 3000억원) 규모의 사무라이 본드(엔화표시 채권)도 발행키로 했다.

은행권 관계자는 "롯데가 신한, 우리, NH농협 등 대형은행을 상대로 (KT렌탈에 관한) 인수금융 패키지 제안서 제출을 통보했다"며 "주식담보 대출이지만 (롯데가) 3%대 초중반의 금리를 염두에 두고 있어 은행들이 이를 수용할지 관건"이라고 말했다.

롯데가 M&A(인수·합병)를 진행하면서 주식담보대출 성격의 인수금융을 국내 은행권에서 타진한 건 이례적이다. 롯데는 현금이 많고 부채비율은 낮아 연 4% 이상의 금리를 부담해야 하는 M&A 인수금융을 철저히 배격해 왔다.

롯데는 주력 계열사인 롯데쇼핑 (64,600원 ▼800 -1.22%)과 호텔롯데, 롯데칠성 (125,600원 ▼400 -0.32%) 등이 대부분 내수시장을 토대로 안정적인 현금을 창출하고 있다. 롯데쇼핑의 부채비율은 지난해 3분기 기준 123%에 머물고 주력 11개사의 2013년 부채비율도 65.1%에 불과했다. 그룹 전체로 보면 사실상 무차입 경영을 유지하면서 부동산 자산을 적절히 유동화해 자금 운용에 무리가 없도록 대처하고 있다. 차입금 의존도가 18.1%(순차입금 9조5870억)에 머무르고 있어 이른바 '재계의 현금부자'로 손꼽힌다.

하지만 이런 롯데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신격호 총괄회장의 차남으로 2004년부터 경영전면에 나선 신동빈 회장이 공격적인 M&A를 지속하면서 그룹의 재무전략이 바뀌는 것이다. 신 회장은 2009년부터 약 7조원이 넘는 자금을 M&A에 쏟아 부었고 주력사 롯데쇼핑도 2006년 국내외 동시상장으로 마련했던 조단위 잉여금을 대부분 소진했다. 롯데쇼핑은 2년 전부터 무담보였던 롯데백화점과 롯데마트의 부동산 자산을 팔아 신규 M&A 투자금으로 조달하고 있다.

롯데는 올해도 미래 성장사업의 기반 확대를 위해 약 7조5000억원의 신규투자를 추가로 집행하기로 했다. 사업부문별로 △유통 3조4000억원과 △중화학·건설 1조5000억원 △식품 1조원 △관광·서비스 1조1000억원 등이다.

2004년 이후 신동빈 회장은 계열사를 36개에서 74개로 늘리고 매출도 23조원에서 83조원으로 키워냈다. 2018년까지 매출을 200조원으로 확대할 계획이기 때문에 공격적인 투자와 이에 따른 확실한 성과를 원하고 있다. 이를 위해선 잉여현금흐름을 통해 사업체를 직접 세워 키우기보다는 전략적인 M&A를 통해 타인자본 중심의 차입형 공격투자가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타인자본은 자기자본에 비해 조달비용 측면에서 유리하다. 롯데는 최근의 저금리 기조를 성장의 기회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 신용평가회사인 JCR은 지난달말 롯데쇼핑과 호텔롯데의 회사채에 신용등급 A+, 신용등급 전망 '안정적'을 부여했다. 관계자들은 롯데가 앞으로 금리가 낮은 일본 자본시장에서 사무라이 본드를 조 단위로 발행할 것으로 예상한다. 롯데쇼핑과 롯데호텔은 일단 올 상반기 중에 각각 300억엔 규모의 2~3년 만기 사무라이 본드를 노무라, 미즈호, BNP파리바를 통해 발행하기로 했다.

비슷한 시기에 롯데는 3조~4조원으로 예상되는 이탈리아 면세점 기업 WDF(월드듀티프리) 인수전에서 참가했고 러시아 모스크바에서는 복합 쇼핑몰 아트리움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롯데의 M&A 분야 자금수요는 올해만 5조원이 넘을 수도 있다.

거래 관계자는 "신동빈 회장이 최근 신동주 전 회장과의 경영권 다툼을 정리하고 자신만의 색깔로 상당히 공격적인 사세확장에 나선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이 그룹 역시 창업주인 신격호 총괄회장에서 신동빈 회장에게로 그룹이 넘어가자면 지분율 희석 손해가 상당하기 때문에 M&A는 신수종사업을 찾아내는 기회이면서 동시에 그룹의 지배구조를 재편하는 방안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