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인구 500만명 시대…사양산업 굴레 속 성장하는 이유

#직장생활 3년차인 김민식씨(32·가명)는 4월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다음 달 생애 첫 골프 라운딩 일정이 잡혀 있어서다. 김씨는 지난해 11월 우연히 동료들과 스크린 골프장을 찾은 이후 골프 재미에 푹 빠졌다. 부서 회식이나 친구들 모임으로 1주일에 1∼2회는 스크린 골프장에 간다. 김씨는 "40∼50대에게나 어울리는 따분한 운동이라고 손사래를 치던 친구들도 최근 골프를 시작했다"며 "팀을 꾸려 분기당 최소 1번은 필드(골프장)에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사양 산업으로 인식되던 골프시장에 봄바람이 불고 있다. 골프인구가 수년째 계속 늘고 있는데다 정부가 골프산업 활성화에 나서면서 핑크빛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3일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2008년 381만 명이던 골프인구는 지난해 529만 명으로 늘었다. 전국 골프장수도 2008년 345개에서 지난해 505개로 증가했다. 스크린골프와 용품, 의류 등 관련 시장 규모도 연 10% 안팎 성장하고 있다. 골프인구 감소로 침체국면으로 접어든 미국, 일본 등과는 대조적이다.

◇벙커에 빠진 美·日 골프산업…한국은 성장 =세계 최대 규모인 미국 골프시장은 장기 불황과 골프인구 감소로 극심한 침체를 겪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2003년 3000만 명이던 미국 골프인구는 지난해 2500만 명으로 줄었다. 특히 골프에 입문하는 20∼30대가 30% 감소했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고령화와 청년들의 외면으로 1990년대 2000만 명에 달했던 골프 인구가 지난해 800만 명으로 급감했다.

반면 한국은 골프인구 500만 명 시대가 열려 골프장 수는 물론 골프장 이용객도 늘고 있다. 한국레저사업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골프장 이용객수는 3050만 명으로 전년 2940만 명 대비 3.7% 증가해 사상 처음으로 3000만 명을 돌파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30대 젊은 골프수요가 크게 늘었다는 점도 특징이다.


미국, 일본과 달리 한국의 골프 인구가 증가한데는 스크린골프가 한 몫 했다. 1990년대에 도입된 스크린골프는 2000년대 후반부터 급속히 증가했다. 2008년 3500개에 달하던 스크린 골프장은 2010년 6400개, 지난해 8000개로 늘었다.

골프존 관계자는 "스크린 골프의 대중화에 따라 사치 운동으로 치부되던 골프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며 "스크린에서 골프를 접한 20∼30대 직장인들이 필드로 나가 전체 시장 성장에 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 중국에도 스크린 골프장이 있지만 한국과 문화가 달라 시장이 커지지 않고 있다"며 "퇴근 후 동료, 친구들과 회식을 즐기는 한국만의 고유문화가 스크린골프와 잘 맞아 떨어졌다"고 덧붙였다.

김효주, 박인비, 신지애 등 여성 프로 선수들의 선전도 기여했다. A그룹 관계자는 "LPGA 대회를 개최하면 광고 문의가 빗발치고 경기가 있는 날엔 구름 관중이 찾아온다"며 "자녀들을 프로골퍼로 키우고 싶어 하는 수요도 많다"고 귀띔했다.

/사진=머니투데이 DB

◇"20∼30대 필드족 잡자" 시장 후끈…'김영란법' 변수될 듯=박근혜 대통령이 "공직자들의 골프를 금지한 적 없다"며 "골프산업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골프시장에 훈풍을 몰고 왔다. 10월 인천 송도에서 국제 골프대회인 '프레지던츠컵'이 열리고 내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골프가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것도 골프바람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바람을 타고 유통업계가 잇따라 대규모 골프행사를 기획했다. 롯데백화점은 4∼8일 본점과 잠실점, 부산본점에서 골프 의류·용품을 40∼70% 할인 판매한다. 총 150억 원 규모로 역대 최대 행사다. 같은 기간 현대백화점도 대규모 골프용품 행사를 연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일각에선 23조원에 달하는 골프시장이 정점을 찍었다고 하지만 지난달 백화점 골프관련 매출이 19% 성장했다"며 "올해와 내년 한국 선수들이 국제무대에서 선전할 경우 시장이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골프시장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서천범 한국레저산업연구소 소장은 "회원권 골프장 이용객 상당수가 접대골프"라며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회원권 가격 급락 등 시장이 요동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접대골프가 줄어들면 골프장간 가격할인 경쟁이 치열해져 골프를 즐기는 일반 수요가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