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가 '말랑말랑' 하다고? 사실은…

소프트 로이유리 이미지/사진제공=KCC

"유리를 소프트하게 만든다니 너무 신기하지 않아요?"

2년여 전 유리업체 A사의 홍보담당자를 만났을 때 당시 신공법으로 만든다는 '소프트 로이유리'를 설명하면서 그가 덧붙인 말이다. '부드러운', '연성의'란 뜻을 지닌 영어 단어 '소프트'가 주는 어감 때문이었을까. 그 말을 듣자마자 떠오른 생각은 '말랑말랑'한 유리였다. 현실적으로 말랑말랑한 유리는 존재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내 머릿속에는 상상의 나래가 펼쳐졌다.


얼토당토않던 나의 환상은 얼마 지나지 않아 소프트 로이유리를 정식으로 선보인 유리업체들에 의해 깨졌다. 실물로 본 소프트 로이유리는 역시나, 당연하게도 단단했고 얼핏 일반 판유리와도 차이가 없었다. 다만 표면에 불빛을 비췄을 때 푸른빛이 비쳐보인다는 점에서 일반 판유리와 구별됐다. 푸른빛은 로이 코팅을 했다는 증거였다.

그렇다면 '소프트'라는 수식어는 왜 붙은 것일까. 바로 로이유리를 만드는 공법의 차이에 그 해답이 있다.

로이유리는 한글로 번역하면 '방사율'(표면에서 열이 빠져나가는 정도)이 낮은 유리라는 뜻이다. '낮다'는 의미의 'Low'와 '방사'를 뜻하는 Emission을 합쳐 만든 이름이 '로이'다. 유리의 방사율을 낮추기 위해서는 표면 코팅작업이 필수인데 그 방식에 따라 '하드코팅'과 '소프트코팅'으로 나뉘는 것이다.


하드코팅은 유리가 성형되기 전, 주석인듐산화물이 600도에 달하는 유리 표면과 화학적으로 결합하면서 이뤄진다. 물리적 결합에 비해 강도가 세 '하드'(hard)라는 말이 붙었다. 코팅막이 산화막 형태여서 넓은 면적에 코팅이 가능하고, 일반 판유리와 같은 내구성을 확보해 일반 유리가공점에서도 손쉽게 재단, 강화 등 가공처리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다만 산화막 코팅의 전기 전도성에 한계가 있고 이로 인해 단열성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최근엔 사양추세다.

반면 소프트코팅은 진공상태에서 방전시켜 얻은 이온화된 반응성 기체가 고체상태의 코팅재료와 충돌하면서 발생시킨 이온물질이 유리 표면에 물리적으로 결합하면서 이뤄진다. 물리적 결합에 의한 코팅인 만큼 코팅막을 이루는 원자의 결합력이 화학적 결합보다 떨어질(soft)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한 내구성 문제가 동반된다. 소프트 로이유리가 국내에선 대세로 자리잡았지만, 유리업체들이 내구성 문제에 천착하는 이유다.

유리업체들의 지속되는 연구·개발에도 내구성 문제에 있어 아직 확실한 경쟁우위를 확보한 곳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누가 먼저 명확한 해법을 제시하며 시장확대를 위한 승기를 잡을 수 있을까.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