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점수·봉사활동 안 묻는다" 대기업 '스펙 배제' 채용

지난해 11월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채용박람회에 몰린 구직자들. /사진=뉴시스

대기업들이 대졸 신입사원 채용 과정에서 그간 요구해왔던 어학점수·봉사활동 등 '스펙'을 보지 않기 시작했다. 스펙쌓기에 소요되는 사회적 비용을 줄이고, 직무능력 중심 채용을 확대하겠다는 취지다.

SK그룹은 이달 9일 시작되는 '2015 상반기 대졸 공채'부터 입사지원서에 △외국어 성적 △IT활용능력 △해외경험 △수상경력 △업무 경험 △논문 내용 등의 기재란을 삭제했다. 증명사진 역시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지원분야별로 최소한의 검증을 위해 학력, 전공 및 학점 등만 본다. 해외영업직 또는 제약연구 분야만 외국어성적 및 자격증을 제시하도록 한다.


채용제도 변화에 대해 조돈현 SK그룹 인재육성위원회 기업문화팀 전무는 "경영환경과 사업내용이 복잡해짐에 따라 각 구성원의 문제해결 역량 등 직무수행 능력이 사업 성패의 핵심 요소로 중요해졌다"며 "대학생들이 스펙 쌓기에 지출하는 사회·경제적 비용을 축소하고, 문제해결 역량과 도전정신을 갖춘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는 최고 경영층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LG도 '스펙 배제' 채용을 그룹 전반에 확대 시행하기 시작했다. LG그룹은 지난해 하반기 공채부터 수상경력·인턴경험·어학연수 등의 기재란을 없앴다. 주민등록번호와 증명사진, 집주소 등의 개인정보도 요구하지 않는다. 일부 지원 분야에만 어학성적 및 자격증을 요구한다. 자기소개서 역시 문항을 3개로 줄여 단순화했다.

이 같은 결과 지난해 하반기 LG그룹 채용에는 12만여명의 지원자가 몰렸다. 총 11개 계열사에서 1200여명을 선발해 경쟁률은 100:1에 육박했다. 계열사별로는 LG전자 3만여명, LG유플러스 2만여명의 구직자가 지원했다.


이에 앞서 현대자동차는 2013년 상반기 공채부터 증명사진·외국어·대학원 학력·이중국적을 묻지 않고 있다. 2014년부터는 해외거주 및 비상연락망 정보란이 삭제됐으며 올해 상반기 공채에서는 동아리와 봉사활동 내역까지 없앴다. 대한항공은 지난해 하반기 공채부터 신장·학력·유학경험·병역사항 기재란을 이력서에서 지웠다.

스팩 배제 채용은 금융권에서도 이뤄지고 있다. 산업은행,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 등은 금융자격증과 외국어 성적 기재란을 지난해 하반기 공채부터 없앴다. 우리은행, 국민은행 등도 지난해부터 어학 및 금융자격증을 요구하지 않고 있다.

대기업들의 잇따른 스펙 배제 채용 움직임에 대해 기업 인사담당자는 "스펙 위주의 채용전형을 수년간 실시한 결과 만족할만한 결과를 못 봤다는 고민에서 탈스펙 전형이 시작된 것"이라며 "구직자들이 스펙을 쌓기 위해 소모하는 불필요한 비용과 시간을 줄여준다는 측면에서 사회적 기여라는 의의도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한 구직자는 "일부 대기업의 탈스펙 전형은 보다 세밀한 자기소개서 등 또 다른 준비과정을 요구하는 것"이라며 "많은 구직자들이 대부분의 기업 공채를 동시에 준비한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스펙전형'과 '탈스펙전형'이 이중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