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AIIB 가입 결정...경제적 실익 택했다

막판까지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신중한 결정이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THAAD)배치 결정을 앞두고 미국의 눈치를 봐야했지만 한중 관계도 무시할 수 없었다. 정부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창립멤버로 가입해달라는 중국의 요청을 받고도 8개월 동안 결론을 내리지 못한 이유다. 중국이 AIIB 가입시한을 오는 31일까지로 못 박으면서 정부의 고민은 더 커졌다. 결국 아시아 개도국 인프라사업에 진출할 기회와 한중간 경제적 관계강화라는 실익을 택하기로 결정했다.


◇AIIB 참여, 어떤 이득이 있나? = 인프라 개발 수요가 높은 아시아 개발도상국은 한국 기업이 진출해야할 미래의 시장이다. 아시아개발은행(ADB)에 따르면 아시아 지역의 인프라시설 투자수요는 2020년까지 매년 7300억불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세계은행(WB), 아시아개발은행(ADB) 등 기존 다자개발은행의 이 지역에 대한 투자자금 공급은 이에 훨씬 못 미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이 AIIB에 가입하면 아시아 개도국의 사회간접자본 건설사업에 한국 기업들이 참여할 기회가 늘어날 수 있다. AIIB에 참여하지 않을 경우, 이 기회에 한국이 배제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큰 상황이었다.

AIIB 참여로 중국과의 관계도 더욱 강화될 수 있다. 중국은 한국의 최대 수출시장이다. 2008년 글로벌경제위기 당시 한국만 견조한 성장세를 보일 수 있었던 것은 중국내 한국시장이 커진 덕분이라는 것이 경제전문가들의 지배적 분석이다. 최근에는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에 이어 AIIB 가입으로 한-중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아울러 북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국의 영향력이 막대한 점을 고려하면, 정치적, 경제적 부문에서 모두 한국에 이득이라는 얘기다.

AIIB는 우리가 설립 시부터 주요 회원국으로 참여하게 되는 최초의 국제금융기구다.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경제적 지위에 걸맞는 적극적 역할을 할 필요가 있으며, AIIB는 우리의 금융외교영역을 확장시킬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중국이 AIIB에서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한 것도 한국의 AIIB 참여를 이끌었다. AIIB 설립을 중국이 주도하면서 중국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큰 방향으로 설계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과 인도 등 중국의 패권을 경계하는 나라들 사이에선 AIIB가 결국 중국의 정책 수단이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끊임없이 제기됐다. 그러나 최근 중국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지면서 분위기가 급변했다. 중국이 이같은 의사를 밝힌 후 영국, 독일, 프랑스 등 미국의 유럽 핵심 동맹국들이 대거 AIIB 참여를 선언했다.


이로인해 한국 정부의 정치적 부담도 대폭 줄었다. 그동안 정부는 미국의 눈치를 보며 AIIB 가입의사를 적극 밝히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미국의 동맹국들이 참여를 선언하면서 이 같은 부담이 대폭 줄어든 것이다. 또 중국의 거부권 행사 포기는 한국이 나름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길도 열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상호 견제를 통해 기구 내 각 국가 간 힘의 균형을 맞출 수 있다는 얘기다.

◇향후 과제는 = 그러나 AIIB 내 중국의 지분율과 의결권이 지나치게 높은 점은 여전히 우려되는 사안이다. 그동안 AIIB의 투명성과 지배구조를 둘러싼 우려가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다. 여전히 가입을 망설이고 있는 호주를 비롯해 영국 프랑스 등은 AIIB 가입을 앞두고 은행의 운영 투명성 등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정부의 가장 큰 고민도 중국의 지분율이다. 중국은 1000억달러를 조성해 아시아 개발도상국에 대한 인프라 건설자금을 대출해줄 계획을 세우고 있다. 중국은 그 중 50%인 500달러를 출자해 지분율과 의결권을 보유할 것을 구상하고 있다. 기존의 국제금융기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높은 지분율이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의 경우 최대출자국인 미국과 일본이 각각 15% 내외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은행에서 미국의 지분은 17%다. 이로인해 중국이 지분율을 40%까지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한국은 향후 AIIB의 투명성과 지배구조를 두고 적극 협상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이 창립멤버로 참여를 결정한 것도 지분율 등을 둘러싸고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였다. 기재부 관계자는 "정부는 AIIB의 지배구조와 세이프가드 등이 국제적 수준으로 설계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주요 우방국들과 함께 적극 표명하면서, 중국측에 설립안 개선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며 "중국을 제외하고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큰 지분율을 갖게 될 한국 정부는 AIIB 창립멤버로 참여해 적극적인 협상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