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한국화', 도태되나 전진하나

김승영 '구름'

작가 김승영의 ‘구름’은 마치 서양화가의 추상표현주의 작품을 보는 것처럼 이국적이지만, 가장 한국적인 정신과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고요하면서도 정신적인 색인 파랑(영속)을 공간으로, 구름(순간)이라는 실체를 얹어 삶에 대한 허무함을 순환적으로 표현한다. 정과 반의 부조화가 아닌, 극과 극의 조화로 연결되는 삶의 고리는 동양적인 철학을 상징하는 셈이다.


곽훈이 한지로 만든 작품 ‘점’은 한국적인 재료로 모든 질곡의 근·현대사를 압축한다. 투명한 듯 뿌연 듯 어지럽게 기억되는 순간들이 그물망 같은 한지속에 오롯이 녹아있다.

지금 시대에 한국화는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올까. 때론 가장 한국적인 재료로 한국인이 공감하는 전통과 역사를 대변하는 작품이기도 하지만, 때론 서양화에 견줘도 손색없는 독특한 아이디어와 실험 정신이 빛나는 산물이기도 하다. 그 무엇이든 하나로 수렴되는 가치는 ‘한국화의 정신’이다.

구 서울역을 개조해 지난 2012년 복합문화공간으로 새롭게 출발한 문화역서울284가 기획한 특별전 ‘한국화의 경계, 한국화의 확장’은 이 ‘정신’을 되새기자는 취지에서 출발했다. 1일부터 30일까지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리는 ‘한국화의 경계, 한국화의 확장’전은 작가 29명의 120여점 작품이 선보인다.

곽훈 '점'

◇ 다양성이 요구되는 시대에 ‘한국화의 흔적들’


‘한국화란 무엇인가’ ‘현대의 한국화란 무엇인가’란 질문은 국내 예술가들에게 끊임없이 던져진 화두였다. 다양성이 요구받는 시대에, 우리 예술이 세계 예술 정신을 선도할 가능성이 있는가. 한국화, 서양화, 사진, 설치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하는 29명의 예술가들이 ‘한국화의 정신’이라는 기치 아래 모인 것도 도전과 가능성 때문이다.

작가 구본창은 ‘조선 백자’에 주목한다. 백자가 단순히 도자기 이상의 혼을 가진 그릇으로서 우리의 마음을 담을 수 있고, 만든 이의 마음을 담을 수 있는 용기로서 보이길 기대하기때문.

배나 사과, 꽃 등을 거대하게 그리는 김종학은 단정된 의미에 머물러있기를 거부한다. 그는 “내가 새롭게 보게 된 하나의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을 뿐”이라며 “그건 현재의 나를 형성하고 있는 모든 감정이 잉태한 시각이며, 모든 것은 그 안에 있다”고 했다.

서정태 작가가 그린 ‘푸른초상’은 왜곡과 비틀림의 인물을 통해 본 우리 시대 욕망의 자화상 같다. 설치미술작가 차기율의 ‘순환의 여행-방주와 강목사이’에선 예술인문학의 흔적을 더듬을 수 있다. 서양으로 상징되는 ‘문명’과 동양의 뿌리인 ‘자연’의 융합을 통해 인류의 문제를 되짚으려는 시도가 그의 작품에서 엿보인다.

작가들은 이처럼 장르와 재료의 경계를 넘어 ‘한국의 정체성’ ‘한국인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찾아 한국화의 경계와 확장성에 대해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서정태 '푸른 초상'

◇ ‘경계 넘어 확장’…한국적 정신을 통해 일구는 ‘한국화의 미래’

‘한국화’에 대한 기획전은 ‘예술이란 무엇인가’와 ‘한국적인 것은 무엇인가’라는 두 가지 큰 화두로 시작됐다. 그간 한국화는 고유의 회화와 시각 예술 양식이 존재했지만, 서양 미술의 관계속에서 지금의 한국화는 큰 도전에 직면했다. 개성과 지역적 특수성을 인정받으면서(‘한국적’) 현대미술로서의 가능성과 가치(‘예술’)에 대응할 수 있느냐에 대한 문제는 한국화의 미래와도 연결된다.

작가들은 그래서 한국화의 정신이 무엇인지, 각자의 작품을 통해 특별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문화역서울284에서 전시를 꾸민 것도 한국인의 사연이 응축된 공간이라는 역사성을 통해 미래를 보자는 의미가 담겨있다.

전시기간에는 특강도 마련됐다. 김상철 동덕여대 회화과 교수는 ‘디지털시대의 한국화’(2일 오후 5시)라는 주제로, 고충환 평론가는 ‘한국화의 경계, 한국화의 확장’(17일 오후 5시)이란 주제로 문화역서울284 2층 세미나실에서 각각 강의를 펼친다.

전시 총감독인 우종택 인천대 교수는 “이 특별전은 우리 시대 한국화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한국화의 미래는 어떻게 펼쳐질지에 대한 작가들 나름의 답변이라고 볼 수 있다”며 “이번 전시를 통해 한국화뿐 아니라 한국의 정신이 경계를 넘어 확장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