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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클릭]세월호 희생자는 ‘소유격’이 아닌, ‘목적격’이다

현장클릭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입력 : 2015.04.05 0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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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클릭]세월호 희생자는 ‘소유격’이 아닌, ‘목적격’이다
영문법을 공부해보면, 가장 어려운 것이 명사의 해석이다. 특히 동사에서 파생된 명사를 ‘명사’로 해석해야 할지, ‘동사’로 해석해야 할지 가늠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동사에서 파생된 명사는 그 앞에 곧잘 인칭 소유격이 따라붙기 마련이어서 해석의 어려움은 가중되기 일쑤다.

이를테면 ‘his analysis’는 명목상 해석은 ‘그의 분석’인데, ‘~의’때문에 ‘그’가 주체인지 객체인지 혼란스럽다. 이때 가장 쉽게 알 수 있는 방법이 주어 술어로 풀어쓰는 해석이다. 따라서 이 단어의 해석은 ‘그의 분석’ 대신 ‘그가 분석한 것’이라고 하면 좀 더 분명해진다.

이 같은 해석의 전제 요건은 반드시 이 명사가 동사에서 파생된 것이어야 한다. analysis가 두 가지로 해석이 가능한 건 analyze라는 동사에서 파생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명사앞에 소유격이 오면 이 명사는 동사의 성질을 띠기 때문에 소유격은 주격처럼 해석되고, 이 명사 뒤에 인칭 대명사가 오면(이 경우 명사 뒤에 목적격이 바로 올 수 없으므로 전치사(of) 뒤에 인칭대명사) 목적격을 써서 목적어로 해석해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his analyis’는 ‘그의 분석’보다 ‘그가 분석한 것’으로, ‘analysis of him’은 ‘그에 대한 분석’보다 ‘그를 분석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리콴유(李光耀) 전 싱가포르 총리의 장례식에 참석해 조문록에 쓴 영어가 논란이 됐다. 마지막 문장 ‘The Korean people join all of Singapore in mourning his loss’에서 ‘his loss’라는 표현 때문이다.

loss는 lose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동사형 ‘명사’이기 때문에 소유격이 올 수 있고, 그 소유격은 주격으로 해석가능하다. 그러다보니 손실의 주체가 리콴유 총리가 되어 문장 자체가 어색해졌다. 따라서 ‘그를 잃어버린 것’이라는 표현을 제대로 살리기위해선 ‘loss of him’이 정확한 표현인 셈이다.

영어에서 회화와 작문은 다른 언어로 비치기 십상이다. 회화를 잘해도 작문이 엉망인 경우가 수두룩하고 그 반대도 횡행하다. 국가 통수권자의 작문은 어쩌면 ‘작은 실수’로 그냥 넘겨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것’과 ‘나를 사랑하는 것’의 차이만큼 ‘그’의 사용에 대한 주체와 객체의 혼동은 국가 외교상 예의를 고려하면 창피스러운 일에 가깝다. 이 결과만 보면, 이 작문이 나오기까지 과정의 허술함과 확인 부족이 저절로 읽히기까지 한다.

오는 16일로 ‘세월호 참사’는 1년이 된다. 침몰한 배는 365일 바닷속에 머물러있고 아직 물속에서 나오지 못한 이들도 9명이나 된다. 참사를 당한 가족들은 아직도 거리를 헤매며 일상과 마주하지 못하고 있다.

참사 가족 중 한 아버지는 “가끔 아침에 눈을 뜨면 고요한 외침에 깜짝 놀란다”고 하고, 또다른 참사 가족은 “시간이 갈수록 내 잘못이라는 생각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진 것 같다”고 자책하기도 한다.

노파심에 하는 말이지만, 정부가 바라보는 ‘세월호 희생자’에 대한 판단이 목적격이 아닌 소유격을 향해있는 건 아닌지 묻고 싶다. 세월이 흘러도, 참사의 과정은 ‘희생자가’ (스스로) 빠진 것이 아니라, ‘희생자를’ (누군가가) 빠뜨린 것이라는 사실만큼은 불변의 진리이기 때문이다.

‘그만 하라’고 주장하는 일각의 목소리는 배를 몰지 않은 정부를 ‘누군가’로 책임지울 수 없다는 논리로 대항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국가와 국민의 안위를 책임지는 정부는 ‘누군가’에 당연히 속할 수밖에 없다. 차가운 바닷길에서 아직도 ‘엄마’ ‘아빠’를 부르는 아이들을 1년간 방치하는 무책임을 어떻게 쉽게 수긍할 수 있겠는가.

정부의 책임이 ‘누군가’에서 ‘스스로’로 전가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다른 나라에서의 문장의 실수는 어떻게든 넘어갈 수 있지만,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의 뒤바뀌는 ‘격’의 쓰임은 용서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김고금평
김고금평 danny@mt.co.kr twitter facebook

사는대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대로 사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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