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권경제, 기축통화의 횡포와 에너지 전쟁

미국은 세계경제를 주무르고 있다. 미국은 자국의 세계경제 장악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있을 경우 정치력과 군사력을 동원해서라도 경제패권을 놓지 않으려 한다. 대표적인 예가 1985년에 있었던 '플라자 협정(Plaza Accord)'이다.

당시 일본은 세계경제의 최강자였다. 1인당 국민소득이 미국을 능가했고, 전자와 자동차를 위시한 각종 제품들이 세계시장을 석권했다. 미국은 당시 대규모 무역수지 적자에 시달리고 있었다. 특히 일본으로부터만 무려 430억 달러에 달하는 적자를 보여 전체 무역수지 적자의 38%를 차지했다.


미국은 이대로 가다가는 일본에게 세계경제 패권을 빼앗길 것이라는 위기의식을 느꼈다. 그래서 착안해낸 것이 바로 플라자 협정이다. 엔화의 환율절상을 강요한 것이다. 미국시장 의존도가 워낙 컸던 일본은 미국의 압력에 굴복하게 된다. 이에 따라 일본은 3년 동안에 엔화를 달러당 260엔에서 120엔으로 거의 3배 수준으로 절상시켰다. 이것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의 단초가 되었다. 이후 일본 경제는 끝없는 추락을 하게 되고 반면 미국은 서서히 경제가 회복되어 패권을 유지해 나갈 수가 있었다.

여기에 미국은 경제패권을 확고히 정착시키기 위해 금융자본주의 체제를 최대한 활용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자국경제의 회복을 위해 6년이 채 안 되는 기간 동안에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란 이름아래 약 4조 달러이상의 달러를 살포했다.

경제논리에 따른다면 양적완화시책으로 야기된 달러의 증발은 달러가치 하락으로 연결되고, 이는 미국의 채무부담 완화와 무역수지 개선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러나 현실은 달러의 증발이 달러의 가치하락을 초래하지 않았다. 오히려 위기의 순간에는 안전자산을 선호하는 심리가 확산돼 달러가치가 안정되거나 오르기까지 했다.


또한 미국이 2014년 10월 양적완화를 종료하자 신흥국시장들은 또다시 출렁이는 모습을 보였다. 즉 그동안 신흥국시장에 유입되었던 달러자금 등 외국계 여유자금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왜 그랬을까? 바로 달러가 기축통화인데다가 미국의 패권전략이 주효했던데 기인한다. 즉 달러가치가 폭락하게 되면 미국의 달러를 많이 보유하고 있던 나라들도 덩달아 커다란 손실을 보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먹혀들었다. 사실 중국과 일본은 각각 1조 달러 이상의 미국국채를 보유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달러화가치 폭락은 중국과 일본에게 엄청난 타격을 가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이들 달러 채권국들은 달러가치의 폭락을 원하지 않는 것이다.

기축통화란 국제간 결제에 금과 동격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는 통화를 뜻한다. 그러면 달러는 어떻게 해서 기축통화가 될 수 있었을까? 제1차 세계대전 전까지만 해도 영국의 파운드화가 금본위제하에서 세계의 기축통화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금본위제가 붕괴되고 영국의 경제력이 점차 쇠퇴하면서 기축통화로서의 파운드화는 그 운명을 마감해가게 됐다. 반면 미국과 미 달러화가 부상하기 시작했다. 제 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미국은 슈퍼파워가 되었다.

당시 미국의 GDP가 전 세계 GDP의 50%를 훌쩍 뛰어넘었고, 전 세계 금의 70%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미국만이 당시 유일한 금본위제 국가였으므로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달러가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더욱이 강력한 군사력이 뒷받침 되었다. 여기에 뉴욕은 이미 국제금융의 중심지로서의 역할과 기능을 수행하고 있었다.

/삽화=임종철 디자이너

기축통화가 되면 어떤 이득을 볼 수 있는가??

첫째, 전 세계를 상대로 시뇨리지(seigniorage)를 누릴 수가 있다. 국가권력은 국민경제 내에서 화폐를 찍어낼 수 있다. 이 때 화폐의 액면가치에 비해 실제로 화폐를 만드는 데에 들어가는 비용의 차액, 국가가 화폐를 찍어냄으로써 얻게 되는 이익을 시뇨리지라고 한다.

둘째, 기축통화가 되면 대외균형에 얽매이지 않고 국내의 경제정책 목표를 추구할 수 있다. 쉽게 말해 환위험에 노출되지 않기에 아무리 무역적자가 나더라도 우리나라가 IMF 외환위기를 겪었던 것과 같은 외환부도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미국은 세계 최대의 무역수지 적자국가이다. 또한 세계최대의 재정적자 국가이기도 하다. 경제이론에 따른다면 미국은 만성적인 외환위기에 시달리거나 달러가치의 폭락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가 않은데, 이 또한 달러가 세계의 기축통화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세계 2대 경제대국으로 부상하면서 달러화 패권에 대한 견제심리를 노골적으로 표출하고 있다. 중국의 싱크탱크인 중국과학원은 2013년 1월 발표한 '국가 건강 보고'라는 연구보고서에서, 미국이 전 세계 패권적 이익을 싹쓸이하고 있으며 이로 인한 최대 피해국이 중국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패권적 이익이란 패권국가가 세계적으로 짜놓은 패권구조를 통해 얻는 독점적이고 약탈적인 초과이익이라고 정의했다.

또한 보고서는 미국은 화폐 주조, 국제통화 팽창, 채권 발행, 해외투자, 불공정 무역 등 다양한 경로로 이런 패권적 이익을 얻고 있다고 지적하고, 미국이 2011년 패권을 통해 얻은 이익이 7조4000억 달러로 전 세계 패권적 이익의 96.8%를 점한 것으로 분석했다. 아울러 미국의 패권 추구로 인한 최대 피해국이 중국이라며, 그 손실액은 3조7000억 달러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금융을 통해 세계를 지배하려는 전략은 또 다른 패권경제의 형태이다. 이는 세계경제의 주도권은 돈의 흐름, 즉 금융에 있다는 것을 뜻한다. 흔히들 금융을 경제의 혈맥이라고 부른다. 제조업이 아무리 강력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금융이 제대로 받쳐주지 않으면 경제가 원활히 돌아가지 않는다는 뜻이다. 미국과 일본경제의 부침에서 이를 잘 알 수가 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제조업강국이던 일본은 세계제패의 꿈을 키웠다. '21세기 일본의 시대'라든지 '일본제일(Japan as Number One)'이라는 말이 유행어가 됐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일본의 영향력은 급격히 축소됐다. 당시 일본이 이처럼 패권경쟁에서 뒤떨어지게 된 이유는 파워의 중심이 제조업에서 금융으로 옮겨가는 패러다임 시프트(paradigm shift)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미국은 1980년대 플라자협상을 열어 달러약세를 가져오고 이를 통해 제조업 경쟁력강화와 경상수지 개선을 꾀했으나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그래서 경상수지 개선의 목표는 버리고 차라리 달러강세를 통해 자본수지 개선을 도모했다. 이것이 루빈의 '금융에 의한 미국의 세계 지배전략'의 골자이다. 즉 통상을 통한 문제해결방식을 버리고, 금융을 통해 세계의 주도권을 행사하겠다는 정책전환인 것이다.

에너지 패권은 또 다른 하나의 패권경제이다. 에너지는 경제성장의 동력원으로서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투입요소이다. 에너지 공급이 어려움에 처하면 일부 경제활동이 중단되거나, 심할 경우 국가경제 전체가 마비되는 상태에 이를 수도 있다. 앞으로도 세계경제의 성장이 지속된다면 에너지수요 또한 계속 늘어날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에너지 다소비국가이면서도 대부분의 에너지를 해외에서 들여오고 있다.

이미 세계는 두 차례에 걸쳐 에너지 파동을 겪었다. 앞으로도 에너지 수요는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반면, 공급 상황은 중동 및 북아프리카 정정불안 등에 따라 악화되는 추세에 있다. 더욱이 자원보유국들은 에너지를 국제사회에서의 자국위상강화를 위한 지렛대로 활용하는 경향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

이에 자원 확보를 위한 국가 간의 경쟁은 한층 더 가열되고 있다. 중국은 풍부한 외환보유고를 활용해 세계의 주요 유전매입에 열을 올리고 있다. 미국은 세계 에너지시장의 주도권을 지속적으로 확보해나가기 위해 중동질서를 재편하고, 새로운 대체에너지 개발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다. 또한 러시아, 베네수엘라 등 주요 산유국들은 국영석유회사의 위상강화를 통해 자원통제력를 강화하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이제 에너지문제는 세계안보와 국가 간 패권다툼의 문제로까지 비화되고 있는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