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선의 컬쳐 톡톡]택시비 2만원

금요일 새벽 1시 반. 이게 실수였다. 양재역에서 과천 가는 택시를 잡으려 하다니. 혹시나 했지만 빈차 등 택시는 역시나 멈추지 않았다. 간신히 신호등 앞에 선 택시기사에게 과천을 불렀더니 그냥 얼굴을 돌린다. 이게 실수였다. 그냥 타야 되는데. 그런데 그랬다가 몇 번 언성을 높인 적이 있어서 아무래도 주저된다. 그렇게 25분. 차는 많았으나 전부 그냥 내뺐다.


4월 밤이라 춥지는 않아서 체력 단련 겸 과천 집으로 걸어갈까 했으나 2시간 이상 걸어야 할 거리. 또 주저된다. 할 수 없다. 고전적인 방법을 쓸 수밖에. 한 대가 섰다. 큰 소리로 불렀다. “과천 따블” 40대 초반쯤 보이는 택시 기사가 잠시 망설이더니 어색한 미소로 “기왕 따블인데 2만원”한다. ‘평소면 7천원 거린데...’ 벌써 2시. 머뭇거리다 할 수 없어 탔다.

그렇게 5분을 가니 부에가 난다. “아저씨, 법은 왜 만들었어요? 그 법이 지키지 못할 법이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돼요? 왜 제값 내는 사람도 초라하게 만들어요?” 했더니 “ 거긴 돌아올 때 손님이 없어서요.” 나는 또 쏘아붙였다. “그래서 심야할증하고 시외요금 할증 이중으로 올렸잖아요.” 했더니 “자꾸 민망하게 그러지 마세요. 우리도 미안해요. 오늘이 금요일만 아니어도...” 말을 흐린다. 어색한 침묵. 술김에 하늘에 대고 푸념을 했다. “우리 사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것도 하나 못 지키는데...” 또 침묵. 둘의 한숨 소리.

세월호 1주기 주간에 이런 찌질한 푸념 글이나 쓰고 있는 내가 한심하다. 그러나 우리 안에 또 다른 세월호는 이렇게 있다. 이 사회는 뭔가 계속 침몰하고 있다. 아이들은 시퍼런 물속에서, 시민들은 새벽의 무법 속에서. 정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 이 무법한 시대... 무엇이 그 기사들을 쌩쌩 달리게 했고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우리도 미안해요’, ‘금요일만 아니어도’ 라고 변명하게 할까?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약속 안 지키는 사람들, 갑을 욕하면서도 자신들은 또 어디선가 더 작은 을에게 갑질 하는 수많은 을들, 블랙 스완에 대해 안전 장님인 리더들, 세월호에 물 타기하고 흑색선전 했던 좀비 세력들, 보이지 않는 기초보다는 화려한 외형만 찾는 문화, 생명의 밑바탕보다는 지식을 팔아먹으려는 비즈니스 인문학... 여기서 세월호가 터진 것 아닌가? 세월호가 아직도 침몰하는 중 아닌가?

그래서 세월호가 우리에게 던진 과제는 너무 깊고 크다. 기본, 약속, 생명, 정화의 문화부터 무책임, 회피와 도피, 안전, 부정과 부패의 00피아 청소, 다시 세워야 할 인문학까지. 약속에 대한 신뢰 없이, 생명에 대한 존중 없이 5천만이 어떻게 또 건국 60년을 이어갈 것인가?


세월호는 말한다. 망각의 샘에서 퍼 올려 시퍼런 4월에 가라앉은 그 아이들을 슬퍼 추도하고 악어의 눈물에 분노하고 내년 선거에 보자고 뿌드득 벼를 일을 넘어 국민적 정신 운동으로 승화되어야 한다고. 그래야 세월호 트위터 그래프처럼 화산처럼 폭발했다가 점점 사그라지는 불꽃이 되지 않는다고.

지금 세월호 재단 (또는 운동 본부)이 만들어졌는지는 모르겠으나 ‘우리도 미안해요’, ‘금요일만 아니어도’처럼 한국 사회 구석구석 숨은 잠재 세월호 인자를 찾아내는 일을 담당할 주체도 필요한 것 같다. ‘우리도 미안해요’ 변명하는 그들을 욕하기 전에 우리들 가슴에 세월호를 주홍글씨로 심어야 한다. 나의 변혁을 향한 이 싸움은 끝이 없을 것이니.

숨어 버린 자유혼, 김두수 노래가 문득 듣고 싶다. ♬ 저 태양의 광휘에/ 눈부신 저 바다에 나의 배를 띄워야 하네/ 열풍은 불어라. 이 가슴에 차오르는/ 그 물결을 어이하나. 열풍은 불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