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수천 개 만들면 뭐하나…"

/그래픽=임종철 디자이너

# “미래창조과학부는 2017년까지 기업 1000개 육성을 목표로 'K-Global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서울산업진흥원(SBA)은...총 1조원을 투입해 미래유망기업 1000개를 키운다. 이와 별도로...오는 2018년까지 혁신적 창업기업 1000개를 발굴, 육성한다”

지난달 말 이후 발표된 몇몇 스타트업 육성 정책들이다. 대충 계산해 보아도 스타트업 수천 개가 만들어진다.


구글이 운영하는 스타트업 지원기관인 구글캠퍼스가 전 세계에 세 개(미국 제외)뿐인데, 우린 구글캠퍼스 같은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이미 전국에 걸쳐 9개나 세워졌고 올해 안에 8개가 추가된다. 각 지역 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제공하는 창업지원 자금을 모두 합치면 수천억 원이 넘고 육성되는 스타트업도 수천 개는 된다.

스타트업 육성은 이 뿐만 아니다. 판교밸리, 테헤란밸리, 상암밸리 등 전국 곳곳에 창업자금이 넘쳐나고, 전국 대학교의 창업인큐베이팅센터와 중기청의 창업사관학교, 지방자치단체와 민간의 창업지원센터 등을 거치거나 육성되는 스타트업들을 모두 합치면 족히 수천 개는 넘는다.

이렇듯 수량으로만 따져보면 대한민국은 가히 스타트업의 천국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문제는 스타트업 수천 개가 만들어졌어도 제대로 성장한 ‘스케일업(scale-up)’ 하나가 없다는 데 있다.


# “현재 영국은 (스타트업의 산실인) 미국보다 국민 1인당 더 많은 창업이 이뤄지고 있지만 구글이나 페이스북처럼 스타트업이 스케일업 단계까지 성장하는 데는 미국에 비해 크게 뒤져 있다”

지난해 11월 영국의 창업가이자 엔젤투자자인 쉐리 쿠투(Sherry Coutu)는 “영국 경제성장의 스케일업 리포트(The Scale-up Report on UK Economic Growth)”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하며 일약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 보고서에서 정의된 스케일업은 과거 3년 동안 직원 수나 매출이 연평균 20% 이상 성장한 기업으로 기준 시점에 최소 10명 이상의 직원을 거느린 기업을 대상으로 한다. 한마디로 급속도로 성장하는 신생 기업으로 일자리 창출과 매출증대가 큰 기업이다.

미국은 구글, 페이스북 처럼 작은 스타트업에서 출발해 대형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기업들이 많다. 반면 영국은 수많은 유망 스타트업이 만들어졌음에도 자국 내는 물론이고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고, 상당수의 창업가들은 기업을 매각하는데 급급해 스케일업으로 키우는데 관심이 적다. 영국은 미국이나 기타 G8국가에 비해 스케일업 기업 수가 부족한 ‘스케일업 갭(gap)’에 봉착해 있다.

이는 심각한 문제인데 왜냐하면 스케일업 기업이야말로 일자리와 국가 부(富) 창출에 막대한 기여를 하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쉐리 쿠투는 “국가의 경쟁우위(competitive advantage)는 ‘스타트업’에 초점을 두는 국가가 아니라 ‘스케일업’에 초점을 두는 국가에 있다”고 말하고, 링크드인의 창업자 리드 호프만(Reid Hoffman)도 “퍼스트무버우위(first mover advantage)는 최초 출시기업이 아니라 최초로 규모를 키운 기업에 있다”며 스케일업 키우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 “영국정부가 스케일업 키우기에 좀 더 초점을 둔다면 미래 세대까지 상당한 수의 일자리 창출과 막대한 세수 및 국가 부의 증대, 국가 경쟁우위 향상을 확보할 수 있다”

기업이 직원 수가 10명에서 100명, 500명, 1000명으로 늘어나면 자본, 경영자, 기술 및 조직이 이에 상응하게 변화해야 하는데, 일반적으로 이 과정에서 ‘성장통(growing pain)’을 겪게 마련이다. 여기서 영국정부가 이런 병을 겪을 가능성 있는 성장기업을 찾아내 진단하고 이해관계자들이 협력해 조치를 취한다면 보다 많은 스케일업 기업을 키울 수 있고 결과적으로 국가경제에 더 큰 혜택을 줄 수 있다.

이 보고서는 “스케일업 기업 수를 1%만 늘려도 향후 3년간 24만 명의 일자리와 380억 파운드(약 62조원)의 총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리고 “영국정부가 스타트업 만들기와 창업가 치켜세우기에만 그치지 말고 한 단계 더 나아가 더 많은 스케일업이 자랄 수 있도록 벤처 생태계의 초점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2012년 3월 영국에 구글의 스타트업 지원 공간인 구글캠퍼스가 오픈하는 날 영국의 재무장관은 구글캠퍼스가 영국을 유럽의 테크놀러지 중심지로 만들어 새로운 일자리 창출과 신(新) 성장 및 번영을 이끌게 되길 기원했다. 이러기 위해선 영국이 단지 스타트업의 메카가 아닌 스케일업이 넘쳐나는 국가가 돼야 한다고 이 보고서는 건의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대한민국도 박근혜정부의 창조경제정책이 2년을 넘겼으니 그동안 만들어진 스타트업 기업 수만 따져보면 족히 수천 개는 될 만큼 많다. 하지만 수천 개 스타트업 만드는 데만 초점을 두면 대한민국엔 수천 개의 일자리와 수십조 원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스케일업은 도저히 나오기 어렵다. 이젠 ‘스케일업 국가(scale-up nation)’를 창조경제의 새로운 목표로 내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