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의 못된 버릇 '차벽'…어제도 그렇게 쌓았어야 했나

머니투데이

이승형 사회부장

2008년 ‘광우병 사태’에 따른 촛불시위를 막기 위해 출현했던 이른바 ‘명박산성’은 우리 역사에 길이 남을 ‘불통’의 상징이 됐다. 당시 컨테이너로 높아 쌓아 올린 그 ‘벽’의 존재는 그 자체로 충격이었고, 정권의 위기감을 보여주는 징표였다. 그 때 우리는 그랬다. “뭐가 무서워서, 저러는 걸까.”

세월호 참사 1주기였던 어제도 그 ‘벽’은 등장했다. 어제는, 4월16일은, 적어도 이 날은 국민들에게는 버겁고, 힘들고, 무거운 날이었다. 국민들은 우리 아이들을 그리도 허망하게 떠나 보냈다는 죄책감을 여전히 안고 있다. 어제 서울시청광장에서,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추모제는 아이들을 향한 그리움을 조금이나마 달래기 위해 서로 부둥켜 안고, 울고, 추스르는 그런 장(場 )이었음을 국민 모두가 안다. 이렇게 풀고 덜어내는 행위 없이 일상으로 돌아가는 길은 없다. 자식 잃은 부모는 더욱 그렇다.

그런데 꼭 그렇게 ‘차벽’으로 막았어야 했을까. 공공 질서가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꼭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다른 날은 몰라도 어제는 달랐어야 했다.
어제 경찰은 의경 130개 중대, 1만 여명의 경찰을 동원했고, 오후부터 일찌감치 경찰버스 100대와 트럭 10여대로 차벽을 쌓았다. 청계천로, 세종로 등 광화문을 중심으로 모든 도로 1개 차선은 온통 경찰버스가 점거했다.

왜 이 정도까지 대응을 하느냐고 물으면 돌아오는 경찰의 답변은 물론 “시민안전과 질서유지를 위해서”다. 과연 그럴까. 시민들의 통행권이나 표현의 자유,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 뭐, 이런 건 차치하고, 시민 ‘안전’ 관점에서 따져 보자.

어제 현장에 있던 시민들의 체험담은 경찰의 설명과는 다르다. 경찰이 시민들의 통행을 지나치게 막아서면서 불필요한 ‘불편’을 초래했다고 한다. 자정을 넘어서까지 경찰은 경복궁역 입구를 아예 ‘봉쇄’해 인근 주민들의 귀가를 방해했다. 한 20대 여성 직장인은 "집이 경복궁 옆이니, 경찰관에게 지나가게 해달랬더니 시청역에서 2호선 타고 3호선 갈아타고 가라고 하더라"고 전했다. 늦은 밤 귀가하는 이 여성의 안전은 누가 책임지는 것인가.

경복궁 인근 지역은 외국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 곳이다. 한 외국인이 경찰에게 항의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창피한 줄 알아야지, 이건 민주주의가 아니야.”

SNS에는 새벽 1시까지 세워 진 차벽 때문에 벌어진 직장인들의 고생담이 이어지고 있다. 야근을 끝내고 회사 문을 나서자 마자 몇겹으로 둘러싸인 견고한 차벽 앞에 어디로 가야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는 한 40대 남성 직장인의 말이다.

“곳곳에서 경찰 버스 사이로 ‘집에 가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시민들이 경찰들과 설전을 벌이고 있었다. 결국 나는 청계천 길을 따라 광화문에서 광교 방향으로 하염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차벽은 가도가도 끝이 없었다. 12시를 넘겨 도착한 광교 한화빌딩 앞에서야 차량들의 헤드라이트 불빛을 발견할 수 있었고, 귀가의 희망도 피어올랐다. 하지만 그게 끝은 아니었다. 차량이 정상적으로 운행되는 그곳에 귀가길 시민들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그곳은 이미 택시잡기 전쟁터였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빈차는 없었다. 겨우 30여분간의 기다림끝에 나는 택시를 겨우 잡아타고 집으로 향할 수 있었다.”

어제 추모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성숙하고 차분하게 진행됐다. 일부 시민이 차벽을 무너뜨리자고 제안했다가 다른 시민들에게 오히려 욕을 먹고 쫓겨나는 일도 있었다. 우리 시민의식이 이렇게까지 왔다.

자칫 통제가 불가능해질 사태를 우려해 애초부터 원천봉쇄하려는 경찰의 판단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어제 같은 날은 달라야 한다. 좀 더 유연해야 한다. 좀 더 정밀한 대응이 필요한 것이다.

‘무조건 막아서고 보자’식의 태도를 시민들이 볼 때 어떤 생각이 들겠는가. “질서 유지를 위해 애쓴다”보다 “과잉 충성한다”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이건 이 정부에도 부담으로 돌아온다. 명박산성이 그렇지 않았는가. 오죽 했으면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자신의 회고록에서 명박산성에 대한 해명까지 했겠는가.

더욱이 지금 국민들은 명박산성 이후 경찰이 집회 대응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차벽을 애용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갖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집회 현장에는 심심치 않게 등장해 도로변을 점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도 이제 국민 눈높이에 맞출 때가 됐다. '국민만 바라보고 가는' 경찰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