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대국 이스라엘에서 창업을 배우다.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만난 스타트업 마일스톤 포드(Milestone Pod). 이들에게서 가장 이스라엘스러운 창업의 면모를 느낄 수 있었다.


허름한 사무실 안에 세 명의 자유로운 창업자. 그들은 하나같이 목 늘어난 반팔 티셔츠, 청바지, 운동화를 신고 취재진을 반갑게 맞이했다. 격식을 차리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들의 기술력을 설명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보이는 자신감과 여유가 인상적이었다. 꾸밈이 없고 소박하지만, 실용적이면서 기술경쟁력까지 갖춘 참신한 창업소재. 이후에 이스라엘에서 만난 대부분의 스타트업에서 느낀 공통점은 바로 이 것.
마일스톤 포드의 제품은 단순히 보면 스마트폰앱과 연동된 만보기 정도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얼마나 걸었는지 △지면에 내딪는 발의 모양(앞꿈치가 먼저인지 뒷꿈치가 먼저인지) △올바른 조깅의 자세 등을 종합적으로 데이터화해 조깅 후 스마트폰을 통해 자신의 상태를 세밀하게 확인할 수 있는 기능이 인상적이었다.

이미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인 '인디고고'를 통해 시제품을 선보였으며, 중국을 통해 완제품 생산을 마쳤다. 특히 운동화 제조사와 웨어러블 디바이스를 제조하는 업체와의 협업뿐만 아니라 벤처캐피탈의 투자문의도 잇따른다는 후문. 오는 5월쯤이면 미국의 신발매장에서 선보일 이 제품은 조깅이 생활화돼 있는 유럽, 미국시장에서는 상당히 인기를 끌 것으로 기대된다.

물론 국내 창업시장에서도 이와 유사한 헬스 기능성 제품 개발에 주력하는 스타트업이 많기 때문에 기술적 측면으로만 바라본다면 큰 감흥을 얻을 수 없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스타트업은 투박하지만 실용성과 기술력을 강조한다. 또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지나친(?) 자신감과 여유, 개방적인 창업 분위기는 국내에서 접한 수많은 창업자들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부러운 모습이다.

◆이스라엘에서 창업을 배우는 한국인


이스라엘 히브리대학교에서 만난 한국인 유학생 부부. 이중훈, 강지원(부인)씨는 앞으로 유학생활을 1년 남겨두고, 빈부격차가 심한 중동지역에서 어려운 환경 속 소외받는 사람들을 돕는 사회적 기업을 형태의 스타트업을 구상하고 있다. 학업을 마치고 취업난과 무한경쟁이 기다리는 국내보다 이스라엘의 훌륭한 창업환경에서 꿈을 펼쳐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이들 부부는 말했다.
부부가 바라보는 이스라엘의 창업 발달은 교육에서 시작한다고 강조했다. "일방적인 강의식 교육이 아닌, 토론 위주의 쌍방형 교육방식은 비판적·창의적 사고를 길러주는데 탁월하며, 실제 사회 각 분야의 실무자를 초청해 특강을 듣고 이들과 미팅을 하는 많은 수업, 의무 인턴쉽 역시 창업을 시작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실제 이스라엘의 창업지원기관들과 창업공간을 둘러보면 대다수가 탁 트여 있다. '소통의 장'이라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오픈돼 있다. 어린 시절부터 토론 위주의 소통형 교육방식이 몸에 벤 이스라엘의 청년들은 대화와 소통, 협업 등을 통해 창조적인 활동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상당히 자연스러운 모양새였다.

예루살렘 스타트업 지원기관 시프테크(Siftech)에서 만난 이창우(24·연세대 경영학과) 학생. 그는 지난해 10월 교환학생으로 히브리 대학에서 왔다가 우연찮게 이스라엘 동료 3명과 함께 창업에 도전했다. 현재 익명메신저 프랭크(Frank)를 개발해 사업화 단계에 임박했다.

이창우 학생과 프랭크 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페이스북과 연동해 페북친구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할 수 있는 것이 주요기능이다. 예를 들면 페북에 "나는 섹시한가"라는 질문을 던지면 페북친구들의 답변을 통계치로 볼 수 있으며, 익명 메시지가 오가는 기능도 인상적이다. 이 서비스는 "페이스북 친구에게 질문을 던졌을때 질문과 답변이 익명을 보장한다면 더 객관적이고 정확한 결과를 도출해내지 않을까"라는 발상에서 시작했다.

또한 익명을 기반으로 한 커뮤니티 서비스는 전 세계적으로도 인기가 높아 프랭크의 시장성이 기대된다. 우선 프랭크 서비스를 이스라엘에서 선보인 후 캐나다, 프랑스, 한국 등 아시아 국가에도 마케팅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단순하지만 아이디어의 참신함때문인지 최근 이스라엘의 민간투자자로부터 50만 달러의 투자 제안을 받는 등 반응이 좋다.

이창우 학생은 "전 세계 1억명 이상의 가입자를 확보하는 것이 목표며 본격 런칭을 앞두고 현재 전략적 마케팅을 위해 준비 중이다"면서 "특히 아시아인들은 주변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관심이 높기 때문에 일본, 중국, 한국 등 아시아국가에서도 시장성이 밝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프랭크 서비스 아시아 지사장을 맡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스라엘의 창업에 대해 "인적네트워크가 상당히 자유롭고 개방적이라는 강점이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젊은 청년 창업가들이 함께 일할 수 있는 공간(co-working space)이 많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협업이 이뤄지며, 스타트업이 투자를 받을 수 있는 창구가 다양하다는 장점도 이스라엘이 창업대국으로 성장하는 원동력"이라고 설명했다.

테크니온 공대에서 유학 중인 박신욱 박사(한 스타트업의 CTO로 참여 중)는 "이스라엘은 공학계열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며 연구방향이 다양하다. 특히 주변 아랍국과의 적대관계에서 발생되는 안보의식이 우수한 기술력을 만들어내고 이 기술은 스타트업들의 기반이 되는 특수한 환경이다"고 설명했다.

◆이스라엘의 창업 생태계

이스라엘 정부는 18개의 인규베이터를 통해 스타트업을 지원한다. 하이파의 HI-center, 예루살렘의 VLX가 대표적인 기술창업 지원기관이다. VLX의 경우 매년 5~6개의 스타트업을 지원·발굴하는데 지난해 357개의 스타트업이 지원을 해 투자 검토를 했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특히 창업에 성공한 스타트업 지분 중 25~45%를 회수하는 지분공유형 투자시스템을 8년 전부터 도입해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이 시스템은 국내에서 최근 인기를 끄는 TIPS(Tech Incubator Program for Startups)프로그램과 상당히 유사하다. 정부가 지정한 인큐베이터가 스타트업에 투자를 하면 정부 R&D자금을 매칭하는 구조다.

물론 창업실패시 정부의 투자금 회수가 없어 무분별한 정부예산 지원으로 보여질 수 있으나, 실제 데이터를 확인해보면 정부와 인큐베이터의 전체 스타트업 투자비율은 1/4 수준이며, 나머지는 외부투자였다. 그만큼 이스라엘은 스타트업에 대한 민간투자가 활성화돼 있어 정부지원 자금에 목 메 는 국내창업 시장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이스라엘에서 만난 창업자들이 공통적으로 말한 "창업아이디어만 좋다면 투자받는 창구는 다양하다"는 내용이 이 데이터를 통해 재차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이들 창업지원기관은 지역 명문대학인 테크니온 공대, 히브리대학과 산학협력 모델이 체계적으로 갖춰져 있으며, 멘토링, 기술제휴 등 많은 부분이 협업을 통해 스타트업의 지원으로 이어지고 있다.

히브리대학에서 바라본 예루살렘 전경

테크니온 공대의 기술력에 투자지원을 아끼지 않는 수많은 기업들

◆국내 창업시장과 닮았으면서도 다른 그들만의 강점

이스라엘의 창업은 국내 창업시장과 많이 흡사했다. 이스라엘 창업환경은 수년 전부터 국내에 창업열풍이 불기 시작한 진앙지 중 한 곳이기 때문에 창업지원 체계와 구조, 산학협력 모델 등 전체적으로 색다르지도 낯설지 않았다. 심지어는 한국과 이스라엘의 스타트업들의 창업소재까지 유사성이 많았다.

그러나 수치적으로 비교해보면 인구 800만에 우리나라 경상도 크기에 불과한 이스라엘에서 연간 1천여 개의 스타트업이 쏟아지며, 이런 스타트업이 인수·합병돼 벌어들이는 돈이 8조원에 달하고 연간 수출액의 50%가 이런 벤처기업에서 나온다는 사실은 부러울 뿐이다.

이스라엘의 창업시장을 둘러보면서 △창의성과 비판적 사고를 길러주는 교육환경, △다양한 인종, 문화가 공존하면서 발생하는 시너지 효과와 창업시장이 세계를 무대로 하는 국제화 △주변 아랍국과의 분쟁관계, 안보의식이 나은 기술혁신 △체계적으로 자리를 잡은 산학협력, 창업지원 △창업실패를 가능성으로 인정하는 사회풍토 등이 창업대국 이스라엘을 만들고 있었다.

솔직히 국내 창업환경은 이스라엘과 상당히 유사하며 절대 뒤지지 않고 날로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가시적인 성과에만 집중돼 되려 빛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의구심이 든다.

물론 문화차이 등으로 특수성이 있을 수 있지만, 이스라엘이 창업의 가치와 가능성을 바라보는 관점은 우리나라와 확연히 달랐으며, 이런 장점부터 수용하는 자세로 국내 창업시장을 재조명해보고 변화를 시작한다면 우리나라 창업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히브리대학 관계자

주변아랍국과 적대관계에서 높은 안보의식을 앞세운 우수한 군사 기술력이 창업의 기반이 되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