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오션 감자, 회생위한 채권단·주주의 손실 분담

팬오션이 기존 주주의 권리를 축소하는 내용(감자)을 담은 변경회생계획안을 법원에 제출했다. 법원은 회생절차에 있어서 변제 순위 높은 채권단이 손실을 보면 주주에 대한 감자를 함께 진행해왔다.


2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팬오션은 주주에 대한 1.25 대 1 무상감자 내용의 변경회생계획안을 서울중앙지법에 제출했다. 채권단은 채권액의 82%만 변제받는다. 계획안 확정을 위한 관계인집회는 오는 6월 12일에 열린다.

하림의 팬오션 인수대금은 1조80억원으로 이 중 내부유보금과 실사기준일 이후 회생채권 변제액 등을 제외한 9250억원이 회생채권 변제액으로 쓸 수 있는 자금이다. 이는 팬오션의 회생 채무(약 1조1300억원)의 82% 수준으로 변제 과정에서 채권단이 18%의 손실을 본다.

회생계획에서 선순위 권리자인 있는 채권단이 18%의 손실을 보는 만큼 팬오션은 1.25 대 1의 무상감자를 통해 기존 주주에 대한 권리감축에 나선다. 가령 현재 팬오션 A주주가 250주를 갖고 있다면 감자를 통해 주식수가 200주로 줄어든다. 채권단 손실율보다 소폭 높은 20%의 권한 감축이 진행되는 것이다.

보통 채권단보다 주주의 권한 감축이 더 큰 만큼 하림은 1.5 대 1의 감자를 팬오션과 법원에 제안했다. 하지만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팬오션의 소액주주들은 회생계획안 부결, 하림 불매 운동 등의 거센 반발을 했다. 이에 법원은 절충안으로 1.25대 1의 무상감자를 팬오션과 하림에 제안했고, 두 회사는 이를 받아들였다.

주주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법원이 감자 진행을 받아들인 것은 채권단 권리감축에 상응해 주주의 권리도 줄여야 한다는 법리적 해석 때문이다.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회생계획안은 회생담보권, 회생채권, 주주의 순으로 변제에 있어서 차등을 둬야한다. '공정·형평의 원칙'이다.


2004년 대법원은 "공정·형평의 원칙은 선순위 권리자에 대해 수익과 청산시의 재산분배에 관해 우선권을 보장하거나 후순위 권리자를 선순위 권리자보다 우대하지 않아야 됨을 의미한다"며 "예컨대 정리채권자의 권리를 감축하면서 주주의 권리를 감축하지 않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채권단이 손실을 보면 주주도 권한이 줄어야 한다는 의미다.

변경회생계획안 통과를 위해서는 주주보다 채권단의 찬성률이 더 높아야하는 것도 채권단이 변제에서 더 우선 순위에 있어서다. 변경 회생계획안은 관계인 집회에서 채권자의 3분의 2, 주주의 2분의 1 동의를 거쳐야 확정된다. 다만 관계인집회에서 부결되더라도 법원이 강제인가를 내릴 경우 변경 회생계획안은 통과된다.

법원의 이 같은 기조는 과거 다른 기업들의 회생절차에서도 잘 나타난다. 법원은 과거 쌍용차와 LIG건설 등의 경우에도 감자를 통한 주주권한 감축을 실시했다. 지난해에는 동양시멘트의 1.25 대 1 감자방안을 승인했다. 이들 회사는 당시 주주들의 반대로 회생계획안이 부결됐으나 법원이 강제인가를 내렸다.

업계 관계자는 "회생계획에서 변제방법은 담보채권자, 일반채권자 순으로 우선하고 기존 주주는 보다 불리한 내용의 주식 병합·소각을 보통 진행한다"며 "당장의 주주권한은 줄지만 기업이 회생하면 장기적으로 주주에게 이익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