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평시즌 '전초전'…신평사 칼날에 떠는 기업들

오는 6월 신용급등 정기평가 시즌을 앞두고 신용등급 하향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건설, 철강업 등 일부 업종의 경우 업황 회복이 더디게 나타나고 있는데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신용평가사들에 대한 각종 제재들로 인해 좀더 엄격한 심사가 이뤄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26일 나이스신용평가, 한국신용평가, 한국기업평가 등 3개 신용평가회사가 각각 집계한 올 초부터 지난 23일까지 등급이 하향된 무보증 회사채 기업 건수는 총 64개로 전년 동기(29개) 대비 120.7% 늘어났다.

나이스신용평가(나이스신평)는 9개에서 23개 기업으로, 한국기업평가(한기평)는 12개에서 17개로, 한국신용평가(한신평)는 8개에서 24개로 증가했다.

신용평가회사들의 정기평가는 해당 기업 결산일로부터 최대 6개월 이내에 이뤄져야 한다. 따라서 결산법인이 12월인 기업은 주로 5~6월에 정기평가가 이뤄진다.

본격적인 정기평가 시즌이 도래하기 전에 이미 신용등급 하향사례가 속출하고 있어 올해 등급 강등 '쓰나미'가 우려된다는 의견이 나온다. 한 신용평가회사 관계자는 "올해 신용등급 전망(Outlook)이 '부정적'인 기업 수가 역대 최대 수준"이라며 "정기평가 시즌이 가까워질수록 건설과 철강 등 취약업종을 중심으로 등급 하향 사례가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달들어 한신평은 포스코의 신용등급을 기존 AAA(부정적)에서 AA+(안정적)으로, 동국제강은 A-(부정적)에서 BBB(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포스코는 국내 대표 철강기업인데도 3대 신평사로부터 모두 초우량등급(AAA) 지위를 잃게 됐다.

한기평은 지난 2월 GS건설 신용등급을 기존 A+(안정적)에서 A(안정적)으로, 이달들어 계룡건설산업을 BBB+(부정적)에서 BBB(안정적)으로 각각 내렸다. 나이스신평도 이달들어 KCC건설에 대한 신용등급을 기존 A(안정적)에서 A-(안정적)로 하향 조정했다.

하이트진로는 회사채 발행을 앞둔 시점에서 신용등급이 A(안정적)에서 A-(안정적)으로 강등돼 내수업종에 대한 잣대도 엄격해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채권업계 관계자는 "신평사마다 보고서를 낼 때 하향 조정의 정량적 기준이 될 수 있 는 '트리거(Trigger)'를 제시하는데 이 지표에 도달했는지 여부에 대한 검토가 과거보다 신속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신평사의 평가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날카로워진 것은 지난해부터 이어진 신평사에 대한 금융당국의 제재가 영향을 끼쳤다는 설명이다. 김필규 자본시장연구원 동향분석실장은 "KT ENS 사태 등을 통해 신평사들에 대한 각종 제재와 '뒷북공시' '신용등급 장사'라는 질타가 이어졌다"며 "이에 따라 예전보다 깐깐한 심사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엄격한 심사 시스템이 앞으로 발행사와 신용평가회사간 올바른 문화를 정립해 나가는데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다. 이훈호 동부증권 연구원은 "그간 신용등급 결정에서는 고객의 위치에 있는 발행사의 입김이 셌던 것이 사실"이라며 "신평사가 발행사의 눈치를 보지 않고 엄정한 신용평가를 실시해 시장에 좀더 정확하고 올바른 등급 정보가 제공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