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때 갚자" 엔저에 엔화대출 급감, 신규대출은 꺼려

머니투데이

김경환 기자

원·엔 환율이 장중 900원이 무너지는 등 엔저가 가파른 속도로 진행되면서 금융권에서는 엔화 대출 상환 움직임이 더욱 빨리지고 있다. 엔화 값이 싸지면서 기업과 자영업자들이 서둘러 그동안 빌린 엔화 대출을 갚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급격한 엔저가 은행들의 경영 여건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는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엔저 현상이 가팔라지면서 엔화대출 상환이 크게 늘고 있다. 국민은행의 엔화대출 잔액은 지난해 3월말 643억엔에서 올해 3월말 현재 487억엔으로 감소했다. 신한은행의 엔화대출 잔액도 지난해 3월말 915억엔에서 지난 3월 말 743억엔으로 감소했다. 우리은행의 엔화대출잔액은 같은기간 704억엔에서 471억엔, 하나은행은 753억엔에서 545억엔으로 줄어들었다.

엔화대출잔액이 크게 줄어든데는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1.75%까지 낮추면서 일본 저금리 매력이 저하됐고, 국내외 돌발 변수에 따라 환율 변동성(환리스크)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엔화 대출 상환은 원·엔 환율이 100엔당 1000원 밑으로 내려간 지난해부터 급증했다. 엔화가 100엔당 1000원일때 대출을 받아 900원에 갚는다면 100엔당 100원의 환차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은행들도 엔화 가치가 크게 하락하자 고객들에게 환리스크 관리차원에서 엔화대출 상환 및 원화대출로 전환을 적극 권유하고 있다. 반대로 국내 저금리 기조, 엔화의 반등 가능성 등의 영향으로 신규 엔화 대출은 최근 전무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과거 원·엔 환율이 높을때 대출을 받았던 자영업자나 개인사업자들이 엔저로 원리금 상환부담이 줄어들자 엔화대출을 대거 상환하고 있다"며 "최근 기준금리가 사상최저인 1%대로 내려가 국내자금 조달비용이 크게 줄어든 점도 고객들이 엔화대출 상환에 나서는 이유"라고 밝혔다. 그는 "엔화대출을 원화대출로 갈아타는 수요도 최근 늘어나고 있지만 원엔 환율 변동성이 커질 것을 우려해선지 신규 엔화 대출은 거의 없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도 "엔저가 은행 등 금융권 경영여건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있다"며 "다만 엔저로 수출 경쟁력을 상실한 국내 기업이 은행 여신을 상환하지 못하면 연체율이 높아질수는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