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승객 외면하고 선원들만…" 말 잇지 못한 재판장

세월호 승무원에 대한 항소심 선고공판이 열린 28일 오전 이준석 선장을 비롯한 승무원 15명이 광주 동구 광주고법 201호 법정에 배석해 있다. /사진=뉴스1(사진공동취재단)

"…이른바 '골든타임'에 선장으로서 아무런 역할도 수행하지 않아 이들을 끔찍한 고통 속에서 죽음에 이르게 했으며, 심지어 이들을 철저하게 외면하고 선원들만 데리고 먼저 탈출했습니다."


이준석 선장을 비롯한 세월호 선장·선원 총 15명에 대한 항소심 선고 공판이 열린 28일 오전 광주고법 201호 대법정. 주문을 읽기 앞서 판결 이유를 설명하던 재판장 서경환 부장판사가 갑자기 말을 멈췄다. 법정의 모든 눈이 재판장을 향했다.

서 부장판사는 잠시 후 다시 입을 열었지만 감정이 복받친 듯 한동안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목소리는 세월호 피해자들의 고통을 설명하는 내내 흔들렸다.

"피고인 이준석의 무책임한 행위로 꽃다운 나이에 꿈도 펼치지 못하고 삶을 마감한 수많은 학생들, 생때같은 어린 자식들을 먼저 보내고 아직도 자식의 사진을 가슴에 품고 살면서 분노와 좌절 속에 신음하고 있는 부모들, 1년이 넘도록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팽목항을 맴돌면서 방황하고 있는 실종자 가족들, 구사일생으로 탈출했으면서도 죄의식과 우울증 등 극심한 후유증에 시달리는 생존자들에게 치유될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광주고법 형사5부는 이날 이 선장에게 '살인의 고의'가 없었다는 1심 판결을 깨고 살인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이에 따라 형량은 징역 36년에서 무기징역으로 가중됐다.


다만 다른 선원들은 선장의 지휘·감독을 받았던 점을 참작해 형량을 징역 1년6월~12년으로 줄였다. 1심이 징역 5년~30년을 선고한 것과 비교하면 형량을 최대 20년 줄여준 것이다.

오전 10시에 시작된 이날 재판은 30여분 만에 끝났다. 개정 전부터 희생자·실종자 가족들과 취재진이 몰려들어 100여석을 가득 채웠지만 재판은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 속에 시작됐다.

이 선장을 비롯한 선원들은 녹색 수의 차림으로 법정에 들어서 재판부를 향해 고개를 숙인 뒤 피고인석에 앉았다. 일부는 방청석을 향해 고개 숙여 인사를 하기도 했다. 이들은 모두 다소 굳은 얼굴로 재판에 임했다.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협의회와 시민단체 등이 28일 오전 광주 동구 광주고법 앞에서 세월호 참사 이준석 선장 등 항소심 선고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뉴스1

서 부장판사가 이 선장에 앞서 다른 선원들에 대한 판결 이유를 설명하고 각각의 형량을 밝히자 조용하던 방청석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1심에 비해 형량이 줄어든 것을 납득하지 못한 듯 일부 피해자 가족은 탄식을 토했다.

소란은 재판이 끝난 뒤에도 벌어졌다. 방청석에서 고성이 쏟아져 나왔다.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어디 있어" "선체 인양도 안 했는데 이렇게 끝내는 경우가 어디 있어" "다 풀어줘, 우리가 다 가서 죽여버리게" 등 거친 말도 나왔다.

재판이 끝난 뒤 세월호 유족들은 이번 판결에 대해 유감스러운 입장을 전했다. '4·16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협의회'는 "오늘의 (선고) 결과는 우리 가족들에게 적지 않은 실망을 안겨줬다"며 "피고인들은 끝내 죄를 인정하지 않고 변명으로 일관했다"고 밝혔다.

이어 "불리한 부분만 기억하지 못하고 유리한 부분만 정확히 진술하는 (이 선장 등의) 모습을 재판 내내 보며 가족들은 끊임없이 상처를 받았지만 정의가 살아있다고 믿고 사법부의 판단을 기다렸다"며 "그런데 오늘의 결과는 처참하기만 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