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0원도 무너진 원엔환율..'엔저공습' 증시 발목

고공행진을 하던 국내 증시가 환율에 발목을 잡혔다. 원엔환율이 7년만에 900원을 하회하는 등 엔저현상이 복병으로 등장하면서 증시 주도주인 화장품주들이 크게 흔들리고 있고 전통적인 엔저 피해주인 자동차주 등 대형 수출주들도 약세다.

단기적으로 원화강세 흐름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엔저 피해주에 대한 심리적인 타격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하반기 미국의 금리인상이 예정돼 있는데다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어 중장기적으로는 원엔환율이 안정화 행보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는 진단이다.

◇원엔 7년만에 900원 하회..엔저 우려에 증시 '출렁'=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원엔환율은 종가기준으로 898.56원을 기록하며 지난 2008년 이후 7년만에 800원대에 진입했다. 최근 한달간 2.5% 하락했다.

환율 변동성이 커지면서 상승흐름을 이어가던 증시도 출렁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전통적인 엔저피해주인 자동차 등 대형 수출주들의 주가가 큰 타격을 받았다.


지난 28일 현대차 (252,500원 ▲3,000 +1.20%)가 2% 하락했고 기아차가 3.5% 급락하는 등 최근 자동차주들은 엔저 공습에 크게 흔들리는 모습이다. IT, 조선 등 다른 대형 수출주들도 최근 약세를 면치 못하는 모습이다.

특히 최근 중소형주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세를 보이던 대형주들이 반등 흐름을 보이기 시작한 때 엔저 이슈가 등장하면서 시장 전체 활력도 약해지고 있다.

이상재 유진투자증권 팀장은 "엔저현상은 현재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수출 쪽에서 회복에 대한 기대를 약화시키는 요인"이라며 "IT, 소재, 자동차 등이 환율에 민감하기 때문에 주식시장에 조정 빌미를 주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엔저 어디까지..?=엔저현상은 아베노믹스 이후 추세적인 흐름을 보여왔다. 아베정권이 들어서던 2012년 중순 원엔환율은 1400원대를 유지해왔고 아베노믹스 이후 급락 추세를 보이며 900원선까지 위협하고 있는 중이다

다만 최근의 엔저는 원화 강세로 촉발된 면이 크다는 점이 지난 2012년말~2013년의 가파른 엔저와 차이점이다. 당시 엔저는 아베정권의 대규모 돈 풀기 정책이 반영된 엔화 약세 때문이었지만 현재는 국내 증시 등으로 외국인 자금 유입이 급증하면서 원화의 나홀로 강세 영향이란 지적이다. 지난 한달간 원달러환율은 3.3% 하락했고 엔달러환율은 0.3% 내렸다.

향후 원엔환율 흐름에 대한 전망은 다소 엇갈린다. 원달러환율이 하락하면서 외국인 매수세가 약화되기 시작했고 월말 수출네고 물량 영향도 줄면서 하락 속도가 늦춰질 것이란 전망이다. 특히 지난 주 4월 미국 FOMC(연방공개시장위원회)와 일본 금정위에서도 별다른 정책 이슈가 없었던만큼 당분간 환율이 안정적인 흐름을 보일 것이란 전망이다.

여기에 하반기 미국 금리인상이 예정된 상황에서 원화강세 추세가 길게 지속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또 정부의 개입 가능성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김용구 삼성증권 연구원은 "한국 수출의 부진이 지속되고 있어 원엔환율 하락은 수출부진의 장기화로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며 "5월 이후 정책당국의 환시 개입이 재개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新엔저 피해주..中소비주 '울상'=지난달 30일 LG생활건강은 전일대비 6.97% 급락한 78만8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최근 5일 동안 하락세를 이어가며 12% 넘게 하락했다.

대표적인 화장품주 중 하나인 LG생활건강 (390,500원 ▼1,500 -0.38%)은 그동안 요우커(중국 관광객) 대상 매출이 급증하며 주가 고공행진을 이어왔다. 화장품 대표주인 아모레퍼시픽은 액면분할을 앞두고 거래 정지 상태다. 또 호텔신라 등 면세점 주도 원엔환율 하락에 약세를 지속하고 있다.

화장품 등 중국 소비주들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엔저에 대한 우려가 가시화되면서다. 요우커들이 엔저에 따라 한국을 떠나 일본으로 몰리기 시작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면서 중국 소비주들이 신(新) 엔저 피해주가 된 것이다. 여기에 중국정부가 국내 소비 확대를 위한 정책을 내놓은 것도 투자심리 위축에 영향을 줬다.

류용석 현대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최근 급등에 따른 밸류에이션 부담을 갖고 있던 화장품, 면세점 주식들이 엔저라는 심리적 악재에 반응해 크게 하락했다"며 "일본 정부 역시 요우커를 의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 엔저가 이들 종목에 미치는 영향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