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기아 '환율'로 이익주는데…'엔저' 일본車 R&D 사상최대

토요타와 혼다 등 일본 완성차 업체들이 올해 또 다시 사상 최대 규모의 연구개발(R&D)비를 투입한다. 엔저(엔화약세) 효과로 대폭 늘어난 이익을 활용해 친환경차와 자율주행차 등 미래형 자동차 기술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포석이다. 현대·기아차도 올해부터 R&D 비용을 2배 이상 증액할 계획이지만 환율 악재로 인한 수익성 악화가 부담이다.

자료=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

6일 외신과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 등에 따르면, 토요타는 2015 회계연도(2015년 4월~2016년 3월)에 전년(9800억 엔)보다 8.7% 늘어난 1조500억엔의 R&D 비용을 투자하기로 했다. 원화로 환산하면 9조4600억 원에 달하는 큰 규모다.

혼다도 최근 기업설명회(IR)에서 이번 회계연도의 R&D 투자비로 전년에 비해 7.1% 증액한 7200억엔을 투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밖에 마쓰다와 스바루도 각각 15.3%, 7.1%씩 증가한 1250억엔, 900억엔을 연구개발에 쓰기로 했다.

일본차들의 올해 R&D 투자는 사상 최대를 기록했던 지난해 규모를 또 다시 경신한 것이다. 토요타 등 7개 일본 완성차 업체는 지난 회계연도(2014년 4월~2015년 3월)에 엔저에 따른 환차익 5320억엔의 24%인 1290억엔을 R&D 비용으로 증액했었다.

토요타는 지난 회계연도에 2조7000억엔의 영업이익을 거둬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엔저로 얻은 가격경쟁력으로 판매가 늘어난 데다 환차익까지 거둔 덕분이다.


이준호 자동차산업연구소 연구위원은 "일본차들이 엔저 효과에 의한 실적 호조 기대감을 반영해 지속적으로 R&D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며 "올해도 지난해 수준의 환차익이 발생할 것으로 보고 R&D 재원으로 활용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일본 완성차의 증액된 R&D 투자비는 대부분 연비와 자율주행 등 자동차 기술 경쟁력 강화에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토요타는 특히 미국과 유럽에 비해 뒤떨어진 자율주행 시스템 상용화를 위해 센서와 인공지능 기술 개발 투자를 확대하기로 했다. 지난해엔 자율주행 관련 기술개발 전담부서도 신설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연구위원은 "토요타의 경우 연구개발 투자의 80%를 자국 내에 집중해 자동차뿐 아니라 기계나 전자 등 관련 산업 전반의 기술수준 향상도 꾀하고 있다"며 "일본업체들의 중장기적인 경쟁력 기반이 강화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자료=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

일본 완성차와 글로벌 시장에서 직접 경쟁하는 현대·기아차도 올해부터 R&D 투자를 대폭 늘릴 계획이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1월 2018년까지 향후 4년 간 자동차 부문의 연구개발에만 31조원을 투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중 현대차와 기아차 등 완성차 R&D 투자비는 27조1000억 원이다. 4년 간 연평균 6조7750억 원 꼴이다. 지난해 현대·기아차의 R&D 비용(3조3989억원)과 견줘 2배가량 늘리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엔저를 등에 업은 일본차들과 달리 현대·기아차는 환율 악재로 수익성이 줄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시장에선 엔화 약세로 가격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고 주요 수출지역 통화인 유로화, 루블화 등의 가치 하락으로 악전고투하고 있다.

이에 따라 현대차 (229,500원 ▼1,500 -0.65%)의 지난 1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보다 18.1% 내려간 1조5880억 원에 그쳤다. 이익이 줄면 연구개발에 활용할 재원 투입 여력이 작아진다.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환율 여건 등 경영환경이 불투명하고 어렵지만 친환경차와 연비 및 자율주행 기술 등에 선제적으로 투자해 파고를 헤쳐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