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요금인가제가 특혜라고? 그럴 바에 차라리…"

정부가 통신요금 인가제를 24년 만에 폐지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그러나 향후 국회 법 개정 논의 과정에서 만만치 않은 진통이 예상된다. 정부 방침이 나왔지만 인가제 폐지를 둘러싼 찬반 여론이 여전히 팽팽해서다.


이 과정에서 몇 가지 오해들까지 뒤섞어 있어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요금인가제 폐지로 즉각적인 요금 인하 경쟁이 촉발 될 것이라는 섣부른 기대나 시장 지배적 사업자의 횡포가 현실화될 것이라는 지나친 우려 등이 그것이다.

엄밀히 따지면 통신요금 인가제 폐지는 '규제의 정상화' 차원에서 추진됐다. 통신요금 인가제란 시장 지배적 사업자인 SK텔레콤과 KT가 각각 이동전화와 유선전화 요금을 출시할 때 정부의 허가를 받도록 한 제도다. 시장 지배적 사업자의 요금인상과 불공정 경쟁 소지를 막겠다는 취지에서였다.

그러나 최근 2~3년간 음성, 데이터 등 복합 상품이 크게 늘어나면서 요금의 적정성을 따지기 어렵게 됐다. 또 인가절차 문제로 요금 출시가 지연되고 경쟁사들이 모방상품을 먼저 출시하는 등 부작용도 따랐다. 요금 인가 제도를 유지하는 국가도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통신 시장 변화와 글로벌 기준에 맞게 규제 정책을 정상화하겠다는 것이 인가제 폐지 방침을 정하게 된 배경이다.

일부 정치권과 시민단체들은 인가제가 폐지되면 특정 사업자가 시장 지배적 입지를 남용해 기습적인 요금 인상을 시도하더라도 막을 방법이 없다고 우려한다. 그러나 가계통신비 인하 압박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요금 인상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중론이다. 우리나라만큼 경쟁 통신사로 손쉽게 갈아탈 수 있는 곳도 드물다. 데이터중심요금제 사례로 보듯이 출시 하루 만에 기존 요금제, 타사 요금제와 비교 분석된다. 요금 인하 경쟁은 있어도 요금 인상 경쟁은 쉽지 않다는 얘기다.


경쟁사들이 우려하는 '불공정 경쟁' 소지가 있을 수 있다. '규모의 경제'가 지배하는 통신 시장의 특성상 과점 사업자가 강력한 망내 결합상품을 출시할 경우, 시장 경쟁구조가 와해되고 결국 후발 사업자의 퇴출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

정부는 이런 이유로 인가제를 폐지하더라도 그 대안으로 '유보 신고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SK텔레콤이 새로운 이동통신 요금제를 신고하면 15일 이내 '이용약관심의자문위원회'를 열고 심사하게 된다. 문제가 없을 경우 즉시 효력이 발생 되지만, 시장 지배력을 남용해 공정경쟁 환경을 해치거나 요금인상이 우려될 경우 보완을 요구할 수 있다.

인가제는 폐지되지만 정부가 개입할 여지는 충분히 남겨놓은 셈이다. 밖에서는 이번 인가제 폐지로 SK텔레콤을 최대 정책 수혜자로 꼽고 심지어 '특혜'까지 운운하지만, 당사자인 SK텔레콤의 속내가 복잡한 이유다.

요금제 출시 기간이 1~2개월에서 15일로 줄어들고 심사 기준도 명확해져 규제의 예측 가능성이 높아진 점은 반길 만하다. 그러나 정부 규제권한은 그대로다. 그럼에도 마치 인가제 폐지를 큰 특혜처럼 바라보는 시선이 SK텔레콤으로서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요금 경쟁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기대도 마찬가지다. 요금을 빨리 내리라는 압박으로 전해지기 때문. 국회 논의 과정에서 되레 여러 가지 규제들로 덧칠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 가장 큰 걱정이다. "이럴 바에는 사문화된 인가제를 그대로 놔두는 게 속 편하다"는 소리가 내부에서 흘러나올 정도다.

미래부 관계자는 이날 인가제 폐지방침을 발표하면서 "사업자가 요금을 정하고 최소한의 가이드라인만 정부가 제시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요금 결정권을 정부가 아닌 시장에 넘기겠다는 뜻이다. 당연한 말이다. 그런데도 이 당연한 말을 우려하는 현실이 어쩌면 지금의 통신업계가 풀어야 할 가장 큰 숙제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