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전공한 디아길레프, 러시아 종합예술 획을 긋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문화 부흥기는 있기 마련이다. 그런 문화 부흥기를 가질 때는 자국에서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로 뻗어나가기 마련이다. 러시아도 마찬가지로 음악, 미술, 무용을 막론하고 예술 전반에 걸친 예술문화를 서구에 전해주었다고 볼 수 있다.

몇 년 전, 파리를 갔을 때 이름 있는 극장들은 아예 대놓고 러시아 음악과 미술과 무용에 대한 포스터가 걸려 있었다. 포스터 뿐 만이 아니라 유명한 예술가들의 흉상까지 로비에 조각되어 있었다. 그 때 느낀 것은 하! 파리는 지금도 100년 전의 러시아 예술을 팔아먹고 있구나, 였다.


발레 뤼스(Ballet Russe)는 러시아 발레를 뜻하는 말로 프랑스어다. 1900년 대 초까지 러시아의 문학과 미술은 이미 프랑스에 널리 알려졌으나 발레는 서구에서 들여온 예술 장르이므로 엄격하게 말해 러시아 스타일이 없었다.

실제로 프랑스 사람(장 밥티스트 랑드)에 의해 1738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설립된 “황실 발레 아카데미”에서 부터 러시아 발레는 시작되었고 미하일 포킨(1880-1942)과 같은 남성 무용수에 의해 러시아의 전통적인 주제와 서구의 무용 기법이 접목되어 러시아 스타일로 고착되었다고 한다. 옛 짜르 시절에는 귀족들이 프랑스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사교계에서는 불어를 사용하는 것이 유행이었고 프랑스어를 할 수 있는 것을 큰 자랑거리로 생각했다고 한다.

필자가 살았던 시절에도 러시아 국민들은 프랑스에 대해 매우 관대한 마음으로 포용하고 있는 것에 반해 미국에 대한 감정들은 그리 좋지 않아 보였는데 상당히 뿌리 깊은 정서인 것 같았다.


20세기 초 1909년에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세르게이 디아길레프라는 걸출한 기획자로 인해 발레 뤼스는 쇠퇴기에 들어선 모더니즘 시기의 서구 예술계에 한 획을 긋게 되고 러시아 예술을 서구에 알리는 전령사가 된 것이다. 디아길레프는 발레 역사에 길이 남는 인물인데 이 사람을 빼고는 발레 뤼스를 이야기 할 수 없다.

아무튼 이 배포 좋은 남자는 노보고르트의 귀족집안 출신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학창시절 그는 법학을 공부하면서 음악원에서 음악도 배웠었다. 그리고 그는 러시아 상징주의의 대표적인 문예지를 창간하고 러시아 국민악파의 림스키코르사코프, 보로딘, 차이코프스키, 무소르그스키와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을 프랑스 파리에 전격적이자 전폭적으로 알렸다.

게다가 디아길레프가 남긴 가장 역사적인 일은 그 때까지만 해도 거의 춤만 있었던 발레라는 형태를 음악, 무대예술, 춤, 등 여러 장르의 예술을 결합시켜 종합예술을 만들어 낸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디아길레프는 발레 역사에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된 것이다. 이런 디아길레프는 발레를 통해 그야말로 총체적인 러시아 종합예술을 들고 파리에 갔다고 보면 되는데 그의 놀라운 기획력과 창의적인 예술성이 후일 독보적인 존재로 남게 되는 쾌거를 이루게 된다.

특히 발레 뤼스를 창단하여 1909년 파리에 입성했을 때 무대 디자인, 음악, 의상 등 모든 면에서 러시아 최고의 음악가들과 무용수, 무대 미술의 최고 권위자 등을 총동원해 모더니즘적이고 전위적인 성격으로 러시아 발레의 르네상스 시절을 구현하게 된다. 예술적으로 침체기에 있었던 파리는 화들짝 놀라고 러시아의 전반적이고 종합적인 예술의 형태를 대하고 그야말로 발레 뤼스에 열광하고 만다. 그들의 무대는 만원 사례를 이루고 비평가들은 새로운 모습과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무대 미술을 보고 격양적인 붓으로 칭송하게 된다.

필자가 파리에서 오페라 극장을 갔을 때 천정의 그림을 보고 기암을 했다. 샤갈의 그림인 ‘꿈의 꽃다발’이 천정 한 중앙에 버젓이 그려져 있었고 서명도 있었는데 그 색채가 어찌나 아름답던지 1964년에 그려진 그림 같지가 않았다. 현재 샤갈의 그림 값이 얼마인가, 그것을 생각하면 오페라 극장의 탁월한 안목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이 때 디아길레프는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 앙리 마티스와 같은 당대의 최고 화가들과 같이 일했으며 러시아 최고의 무대 장치자 알렉산드르 베누아, 레온 박스트, 나딸리아 곤짜로바 같은 인물들도 참여하게 만들었으니 그의 수완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코코 샤넬도 무대 의상 디자인을 해주었다고 하니 소름이 끼칠 지경이다.

그리고 발레 무대의 배경음악으로 쇼스타코비치와 프로코피예프, 스트라빈스키 같은 천재 음악가에게 곡을 의뢰했으며 여기에다 러시아 전설적인 남자 무용수 니진스키가 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이처럼 초호화 캐스팅으로 러시아 발레단을 이끌었으니 과히 무적 함대였을 것이다.

1911년 스트라빈스키의 발레 “페트루슈카”가 초연 된 파리의 샤틀레 극장 앞에는 디아길레프의 흉상이 있다. 그리고 극장 안으로 가보면 100년 전 그 시절의 무대 디자인과 의상 스케치들도 꼼꼼히 진열되어 있었다. 그걸 보면서 필자는 깊은 감동을 받은 것은 물론이고 예술의 정점에 있다는 파리도 러시아 종합예술을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발레 뤼스는 이처럼 지금까지도 서구 발레는 물론 미국 발레의 초석이 되어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것을 보고 예술의 진정성과 위대함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