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창구서 계좌이탈…보험사 '냉가슴'

"증권사가 공격적일 줄 알았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은행이 더 심하네요. 방카슈랑스(은행창구에서 모집한 보험계약)에서 맺은 계약에 대해 신탁이나 펀드로 갈아타기를 권하고 있습니다."-한 보험사 관계자


보험사들이 연금저축계좌 이동 간소화 시행 이후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 있다. 제도 시행 전에는 증권사가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설 줄 알았는데, 정작 은행창구에서 신탁이나 펀드로 계좌 이탈이 많이 발생하고 있어서다.

방카슈랑스는 보험판매의 주요 채널이다. 그러다 보니 은행들이 ‘고객 빼가기’를 해도 보험사들은 은행에 대놓고 불만을 제기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최근 펀드 판매 자격증을 소지한 설계사들까지 펀드로의 이동을 권유하면서 보험사들의 고민은 깊어졌다.

2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지난 4월 27일부터 연금저축계좌 이동 간소화가 시작된 후 1개월여가 지났다. 연금저축은 신탁(은행)·펀드·보험으로 나뉘는데 간소화 이후에는 A사에서 B사로 계좌를 옮기고 싶으면 B사만 방문하면 된다.

제도 시행 이후 삼성생명, 한화생명, 교보생명 등 대형 생보사의 보험료 이탈이 심상치 않다. 보험사당 평균 150억~300억원(적립금 기준)이 이탈했다. 물론 ‘대이동’이라 할 만큼 큰 금액은 아니지만, 문제는 이동속도와 계약해지 채널이다. ‘미풍’에 그칠 줄 알았는데 최근 계좌 이동속도가 빨라진 것. 1인당 이전한 평균보험료는 2000만원에 달했다.


특히 계좌 이전 금액의 75%는 은행에서 계약이 해지됐다는 점에서 보험사들이 긴장했다. 한 생보사 관계자는 “연금저축보험은 은행창구에서 많이 팔렸는데, 은행들이 자기들이 팔았던 보험계약을 해지시키고 연금저축신탁이나 펀드로 이동을 권했다”고 설명했다. 은행은 자사의 신탁도 팔지만 보험과 펀드도 함께 판다. 은행창구가 중심이 돼 해지된 연금저축보험이 펀드와 신탁으로 이동한 것이다.

실제 KB국민은행은 지난달부터 지점장 실적평가 지표에 ‘연금저축계좌 이동’ 실적을 포함시켰다. 국민은행의 지점 1100여개라는 점에서 향후에 계좌이동 파급력이 클 것으로 보인다.

보험사 전속 설계사들도 가세했다. 펀드판매 자격증을 갖고 있는 설계사들이 연금저축보험 가입 고객에게 연금저축펀드로 갈아타라고 권유했다. 연금저축보험 모집 수당을 가입 초기(통상 3년) 모두 받았기 때문에 펀드로 이동시키면 펀드 모집수수료를 추가로 챙길 수 있어서다. 가입 3년이 지난 고객이라면, 계좌 이동 시 수수료를 이중 부담해야 한다.

다만 연금저축보험은 보험료를 꼬박꼬박 내지 않으면 2년 내 계약이 해지돼 기존에 받았던 세액공제 혜택을 토해내야 한다. 반면 펀드·신탁은 장기간 납입하지 않아도 계약은 유지된다. 설계사들이 이를 마케팅 포인트로 활용한 것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펀드판매 자격증을 갖고 있는 설계사들이 부러움을 사고 있다”며 “펀드판매권유대행인 시험에 응시하거나 관심이 있는 설계사가 늘었다”고 귀띔했다.

한편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5월 26일까지 한달 간 연금저축펀드 설정액은 2099억원이 증가했다. 이는 지난해 월평균 증가액(881억원)의 2.4배에 달한다. 같은 기간 일반 공모펀드에서 4조5000억원의 자금이 빠져나간 것과 대조된다. 지난달 26일 기준 연금저축펀드의 총 설정액 규모는 7조4479억원으로 집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