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미래 CEO가 아닌 신입사원을 뽑는다

머니투데이

박정호 KDI 전문연구원

경영학은 급변하는 기업 현장에 대한 유의미한 해답을 제시하면서 그야말로 눈부시게 발전해 왔다. 그런데 경영학에서도 좀처럼 풀지 못한 난제가 있으니 다름 아닌 ‘승진’ 대상자를 결정하는 기준에 관한 것이다. 기업들은 저마다 기업 고유의 특성과 사내 문화 등을 고려하여 다양한 승진 시스템을 활용하고 있지만 그 어느 누구도 승진시스템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점을 해결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것은 승진이 과거의 성과를 바탕으로 미래 업무를 결정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승진은 이전 직급에서 높은 성과를 보인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뤄진다. 하지만 이전 직급에서 업무를 효과적으로 수행했다고 해서 승진 후 보다 높은 직급의 업무를 반드시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직급에 따라 요구되는 업무 역량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가장 하위 직급은 운영(operation)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여기서 말하는 운영 능력이란 주어진 업무를 정해진 스케줄에 맞춰 정해진 절차와 방법에 따라 정확하게 수행하는 능력을 말한다. 이러한 운영 능력을 원활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꼼꼼함, 고지식함이 다른 특성보다 중요한 덕목이다.

반면, 중간 직급의 경우 운영 능력보다는 관리적(managerial) 능력이 보다 중요해진다. 관리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고지식함보다는 유연한 사고가 강조된다. 급변하는 경영 환경 속에서 원칙만을 고수하기보다는 변화된 상황에 부합하는 형태로 과업 처리방식과 과업 양을 유연하게 변경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변화된 상황에 빠르게 대응하기 위한 순발력도 요구된다.

최상위 직급의 경우에는 전략적(strategic) 사고 역량이 가장 중요하다. 최상위 직급은 회사의 미래 비전과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따라서 순발력보다는 통시적인 관점에서 해당 산업 분야와 회사의 방향성을 짚어 내는 통찰력이 필요하고, 이러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조직 구성원들을 독려할 수 있는 리더십, 회사의 경영환경을 제고할 수 있는 외부 인적 네트워크 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상에서 열거한 바와 같이 직급에 따라 강조되는 역량은 전혀 다르다. 따라서 운영적 능력이 요구되는 직급에서 높은 성과를 발휘한 직원을 관리적 역량이 요구되는 직급으로 승진시켰을 때 반드시 이전과 같은 성과를 달성하지 못할 수 있다. 꼼꼼함과 유연함은 전혀 다른 역량이며, 통찰력과 순발력 또한 전혀 다른 특징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스탠퍼드 대학의 조직 이론의 거장인 제임스 마치 교수는 1978년에 발표한 ‘거의 무작위에 가까운 경력 발전(Almost Random Career)’이라는 연구에서 과거의 성과와 승진 이후 성과 사이에는 통계적으로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었음을 실증적으로 분석한 바 있다. 조직행위론의 또 다른 대가인 로버트 머튼 교수 역시 이전 성과와 승진 이후 성과가 무관함을 ‘훈련된 무능(Trained Incapacity)’이라는 이론으로 제시한 바 있다.

이제 구직 얘길 해보자. 구직활동은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지원한 업무에 관심이 있으며, 이를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과 기술은 물론이고 인성적 역량마저 갖추었음을 설득력 있게 제시해야만 면접의 기회를 얻어 최종합격에 이를 수 있다.

그런데 많은 구직자들이 자기소개서 작성과정에서, 기업이 자기소개서를 통해 보다 확인받고 싶은 부분은 해당 기업의 미래 CEO가 될 재목인지보다는 입사 후 바로 수행할 업무와 관련된 운영 능력을 갖춘 인재라는 사실을 놓치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자기소개서를 가장 먼저 검토하는 사람들은 중간 관리자들이다. 이들은 지원자 중 자신의 부서에 배치 받아 실무를 수행하기에 적합한 역량을 보유한 지원자가 누구인지가 가장 큰 관심 사항일 것이다. 아무리 지원자가 회사의 큰 비전을 공유하고, 해당 산업 분야의 특성을 명확히 이해하고 있다 하더라도 지금 당장 수행해야 할 실무 부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면 쉽게 채용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신규 채용한 인력이 주로 수행할 업무가 회사 운영에 필요한 실무라는 점을 떠올려 보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구직자들이 자기소개서를 작성할 때는 지원한 회사의 총체적이며 거시적인 회사 전반에 대한 이해를 갖추었다는 사실 못지않게 지원한 부서의 세부적인 실무 내용을 이해하고 있으며, 이를 즉시 수행할 수 있는 준비가 되었음을 반드시 언급해야 할 것이다.

◇박정호 KDI 전문연구원은… 연세대 경제학과, 동 대학원 경제학 석사, KAIST 경영학 석사, 홍익대 산업미술대학원을 수학했다. “배워서 남 주자!”라는 신조에 따라 EBS, KBS 라디오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일반인들을 위한 교양 경제 강의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으며, 현대, SK, 롯데 등 주요 기업들에 출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