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의 와인 '원형 탑 위의 사자'

'샤토 라투르 1982' 와인과 프랑스 보르도 지역 포도밭(배경)/사진제공=고재윤 교수, 그래픽=유정수 디자이너

기업 CEO와 와인의 공통점을 찾는다면 변화라는 인생의 코르크를 여는 것이며, 경영은 와인생산자처럼 창의적이어야 차별적 경쟁우위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세계적인 화학자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는 “한 병의 와인에는 세상의 어떤 책보다 더 많은 경영철학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으로 한국 기업을 대표하는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은 2005년말 사장단 회의에서 “국제무대에서 활약하려면 와인을 마시는 매너가 중요하다”며 글로벌 시대는 와인문화로 소통하는 시대라고 강조했다.

와인 마니아인 이 회장은 그가 선별하는 와인이 소개될 때 마다 ‘이건희 회장 와인’이라는 신드롬을 만들어냈다. 매년 이 회장이 삼성그룹 신년 사장단 회동 만찬에 제공했던 와인, 삼성경영진들에게 새해 선물로 주는 와인, 매년 생일 때 사용한 축하 와인 등이 뉴스에 보도될 때마다 해당 와인들이 불티나게 판매되는 등 세간의 큰 관심을 끌어 모았다.

특히 2007년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 회의가 끝난 후 신라호텔에서 개최된 만찬에 프랑스 보르도 지역의 ‘샤토 라투르 1982(Château Latour 1982)’ 와인이 나왔는데 그 다음날 다른 기업체 CEO들이 너도나도 이 와인을 주문하자 일시에 품절돼 가격이 폭등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최근 이건희 회장 와인으로 주목을 받았던 와인으로는 2012년 이 회장의 생일 만찬에 등장한 프랑스 론지역의 ‘이기갈 콩드리외 라 도리안(E.Guigal Condrieu La Doriane)’ 와인, 2013년 칠순 만찬에 등장한 프랑스 상파뉴 지역의 ‘돔 페리뇽 바이 데이비드 린치 2003(Dom Perignon by David Lynch 2003)’ 와인, 미국 나파의 ‘케이머스 카베르네 쇼비뇽 스페셜 셀렉션 2009(Caymus Cabernet Sauvignon Special Selection 2009)’ 와인, ‘팔메이어 샤르도네 2009(Pahlmeyer Chardonnay 2009)’ 와인, 그리고 2014년 생일 만찬에 오른 전통주 ‘백련맑은술’, 미국 나파의 ‘샤토 몬텔레나 이스테이트 카베르네 소비뇽 2012(Chateau Montelena Estate Cabernet Sauvignon 2012)’ 와인 등으로 이 모두 그 당시에 품절 현상을 불러 일으켰고 지금도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다.

2013년 칠순기념 만찬에 그룹 사장단에게 선물한 미국 센트럴 코스트의 레드 와인 ‘씨네 쿼 넌 레이블스 시라 2007(Sine Qua Non Labels Syrah 2007)’, 미국 소노마의 화이트 와인인 피터 마이클 와이너리의 '벨 꼬뜨 샤르도네 2006(Belle Cote Chardonnay 2006)'이 제공됐는데 이 2종류의 와인은 모두 컬트와인으로 사장단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는 삼성에 근무하는 자긍심, 차별적 우위성뿐만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 도전할 때 창조정신을 잊지 말라는 의미로 해석 될 수 있다.

이 회장이 1993년 6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개최된 그룹 사장단회의에서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꾸라”며 신경영을 선언한 이후 20년이 지난 2013년 삼성그룹 신경영 선언 20주년 기념식에는 공식기념 만찬과 함께 3종의 와인이 제공됐다. 건배주는 프랑스 상퍄뉴 지역의 ‘모엣 샹동 그랑 빈티지 1993(Moet &Chandon Grand Vintage 1993)’, 전채요리에는 독일 라인가우의 화이트 와인 ‘발트하사 레스 하텐하이머 슈첸하우스 리슬링 카비넷 1993(Balthasar Ress Hattenheimer Schutzenhaus Riesling Kabinett 1993)’, 메인 요리에는 프랑스 론의 레드 와인 ‘샤토 드 보카스텔 샤토네프 디 파프 2009(Château de Beaucastel Chateauneuf du Pape 2009)’가 각각 제공됐다.

3종류 와인 모두 도전과 창의성을 바탕으로 성공한 세계적인 와인으로 사장단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는 도전과 혁신으로 재무장하고 현재 1위를 지키고 있는 삼성그룹을 역사에 영원히 기억되는 아비뇽 교황의 새로운 성처럼 삼성을 재구축하라는 주문이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세계적인 기업의 총수인 이 회장은 프랑스, 이탈리아, 미국 등의 수많은 와인들을 사랑하지만 그중에서도 프랑스 보르도 포이약(Pauillac) 지역의 남성적인 ‘샤토 라투르’ 와인이 ‘이건희 와인’으로 명명되는 이유가 있다.

이 회장이 2007년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 회의가 끝난 후 제공한 ‘샤토 라투르 1982’ 는 삼성이 세계 수준의 글로벌 기업으로 완벽한 경영 체제를 갖추고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리는 메시지 역할을 했다. ‘샤토 라투르’ 와인 중 최상의 빈티지는 1945년, 1959년, 1961년, 1982년, 1990년, 1996년, 2000년, 2003년이지만 그중에서도 1982년의 와인은 완벽에 가까운 와인으로 미국의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가 100점 만점을 줬다.

그리고 지난 2004년 6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방북 환영 만찬회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샤토 라투르 1993’ 와인을 제공하여 ‘평화의 와인’으로 명명된 역사적인 와인이다.

일본의 와인 만화 ‘신의 물방울’에서는 러시아 음악의 거장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Rachmaninov, Symphony No.2 in E minor, Op.27)에서 느낄 수 있는 신비한 깊은 숲의 향기와 강한 생명력이 넘치는 와인으로는 ‘샤토 라투르’ 밖에 없다고 평했으며, 특히 와인 라벨에는 1620년에 세워진 원형 탑 위에 갈기를 휘날리는 사자 한 마리가 올라가 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마치 와인의 제왕다운 이미지를 말해 주고 있다.

삼성은 한국의 자존심이면서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 발전시켰고, 삼성의 성공신화를 창조해온 이 회장이 빨리 쾌유하여 건강한 모습으로 삼성의 원형 탑 위에서 ‘라투르 와인’ 한잔을 마시는 모습을 다시 보기를 기대해본다.

고재윤 교수/캐리커처=임종철 디자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