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니 아모레"…랑콤·디올도 백기든 서경배 회장의 뚝심

아모레퍼시픽은 지난해 해외에서 8325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2013년(5447억원)보다 52.8%, 2011년(3272억원)보다 154.4% 증가한 눈부신 성장세다. 이 같은 추세라면 올해는 화장품 기업 중 최초로 해외에서 매출 1조원을 돌파하는 대역사를 쓸 전망이다.
국가별로는 해외 매출 비중이 가장 높은 중국을 비롯해 홍콩, 대만,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시장이 매출 견인차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 흑자를 내는 등 사업이 탄력을 받고 있는 것도 의미가 크다.

아모레퍼시픽이 글로벌 화장품 기업으로 결실을 맺고 있는 배경에는 서경배 회장(52·사진)이 있다. 다부지고 전략적인 경영방식으로 선친인 고(故) 서성환 태평양 선대회장이 그토록 꿈꾸던 해외사업을 현실화하고 있다.


◇'오직 화장품' 경영철칙, 글로벌 기업 초석=서 회장은 선친의 여권을 보물처럼 아낀다. 이 여권에는 서 선대회장이 1960년 화장품 종주국인 프랑스로 출장을 갔을 때 직항 노선이 없어 6개국을 경유했던 기록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서 회장은 해외사업이 어려움에 부딪칠 때마다 아버지의 여권을 꺼내보며 마음을 다잡는다.

태평양 기획조정실 사장 시절이던 1994년 프랑스에서 출시했던 '순정' 브랜드를 철수했던 뼈아픈 경험도 최고 경영자로 해외사업을 추진하는데 밑거름이 됐다. 당시 태평양은 어설픈 시장조사만 믿고 추진했던 해외사업 실패로 50억원의 손해를 봤다.

서 회장이 화장품 연구개발(R&D)과 시장조사에 몰두하는 것은 해외사업 실패에서 얻은 교훈이 컸다. '소비자에게 필요한 제품', '오직 아모레퍼시픽만 만들 수 있는 제품'을 내놓는 것이 곧 경쟁력이라는 신념이 확고하다.


대규모 자금을 투입해 중국 상하이에 생산기지를 세우고 R&D센터를 운영하며 현지 여성들의 피부를 연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6대 도시(상하이·선양·베이징·무한·청두·광저우) 피부과 병원들과 지역별 여성피부 특성과 필요한 화장품 기능을 분석하고 있다. 그 결과로 나온 것이 바로 라네즈 '워터슬리핑 팩'이다. 편의성을 중시하는 중국 여성을 겨냥해 씻어낼 필요 없이 바르고 자도록 한 제품을 만들었는데 전 세계적으로 히트를 쳤다.

◇랑콤·디올도 백기…주가는 퀀텀점프=아모레퍼시픽에 프랑스나 미국 화장품을 모방하지 않고 독자 개발한 제품들이 많은 것도 퍼스트무버(시장 선점자) 전략과 통한다. 2008년 출시한 쿠션 화장품이 대표적이다. 특수 스펀지 재질에 선크림, 메이크업베이스, 파운데이션 등 기초 메이크업 제품을 담은 것으로 팩트형 용기로 만들어 편의성을 높인 것이 특징이다.

이 제품은 각국 소비자들이 열광하고 해외 유명 패션 잡지들이 경쟁적으로 소개할 정도로 글로벌 뷰티 시장에서 이슈가 됐다. 결국 랑콤이 지난해 말 비슷한 제품을 출시했고, 크리스챤디올은 최근 아모레퍼시픽에 쿠션 제품 기술 제휴를 요청했다. '서양 화장품과 다른 길을 가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서 회장 지론이 시장에서 입증된 것이다.

회사 실적이 탄력을 받으면서 주가도 뛰고 있다. 지난해 초 100만원 대였던 아모레퍼시픽 주가는 지난해 8월 200만원, 올 3월 300만원, 4월 400만원을 돌파해 국내 증시 최고의 황제주로 부상했다. 주식 액면분할 이후에는 43만원선을 유지하고 있다. 서 회장의 지분평가액은 11조원대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에 이어 국내 2번째 주식 부자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