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成 리스트' 수사팀이 강조한 '기둥', 어디서 무너졌나

81일. 경남기업 관련 의혹 특별수사팀(팀장 문무일 검사장)이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 수사에 착수해 리스트 속 인물들을 처음 재판에 넘기기까지 걸린 시간입니다.

이 밖에도 수사팀은 현존하는 최고의 '특별수사통'으로 꼽히는 검사장을 필두로 검사 13명을 투입했고, 확보한 디지털 자료만 9.3테라바이트(TB)에 달하는 등 상당한 규모를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수사팀이 성적표를 내놓자 알맹이 없는 결과에 질타가 쏟아졌습니다. 리스트 8명 중 2명을 기소하는 데 그쳤고, 금품수수 의혹의 실체도 대부분 규명하지 못한 채 의문 부호로 남았기 때문입니다.


수사가 끝나자 남은 것은 이제 말뿐입니다. 수사팀은 출범부터 마무리까지 내내 단서 없이 시작하는 어려움을 호소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사용한 수사(修辭)들이 성적표를 받아든 지금 부메랑이 돼서 날아오고 있습니다.

문무일 경남기업 관련 의혹 특별수사팀장. /사진=뉴스1

△끝내 찾지 못한 '귀인'과 세우지 못한 '기둥'들

수사팀의 공보를 맡은 구본선 부팀장(대구지검 서부지청장)은 수사 초기 "귀인을 기다린다"는 발언으로 화제를 낳았습니다. 금품의 흐름에 관여한 성 전 회장의 측근이 나타나 수사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기를 기대한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귀인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경남기업 관계자들은 조직적으로 증거를 은폐하려 시도한 정황이 드러났고, 수사팀은 아까운 수사력을 증거를 단속하는 데 쏟아부어야 했습니다.

수사팀은 또 수사의 진행 상황을 '기둥'에 비교하며 여러 해석을 부르기도 했습니다. "기둥을 세워 서까래를 올려야 하는데 기둥을 세우다 균형이 안 맞으면 다시 기초공사를 해야 한다" "2개의 기둥을 세우는 단계로 넘어갔다" 등의 발언이 그것입니다.

그러자 일각에서는 이같은 표현이 리스트 속 인사들을 비유하는 것이라는 풀이가 나왔습니다. 때마침 수사팀이 홍준표 경남도지사와 이완구 전 국무총리를 겨냥하는 조사를 진행하고 있어 이같은 관측은 힘을 얻었습니다. 해석이 힘을 얻자 수사팀은 거꾸로 부담을 느낀 듯 "기둥이 리스트 속 인사들을 비유하는 것처럼 풀이되고 있지만 사실과 다르다"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기둥'이 리스트 속 인사들을 비교하는 것이든 그렇지 않든 수사 결과가 나온 현재의 상황에 비춰볼 때 수사팀은 당초 계획했던 기둥을 세우고 집을 짓는 데 끝내 실패했습니다. 아니 집이 아니라, 변변한 방 한 칸 만들지도 못했습니다.

△"가진 것이라곤 망자의 메모 뿐" 수사팀의 호소

사실 '성완종 리스트' 수사는 시작부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검찰은 물론 언론인이나 정치권 대부분이 성 전 회장이 남겨둔 리스트 속 의문이 모두 해소될 것이라고 낙관하지는 않았습니다. 증거가 절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수사를 촉발한 '성완종 리스트'는 성 전 회장이 숨지기 전 남긴 종이 한 장입니다. 여기에는 총 8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고, 이 가운데 6명의 이름 옆에는 액수가 함께 적혀 있었습니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유일하게 단서로 볼 만한 시점이 적혀 있었지만 그나마 공소시효가 지난 상태였습니다.

그나마 수사를 가능하게 해 준 것은 성 전 회장이 숨지기 직전 한 일간지와 나눈 인터뷰 내용입니다. 여기서 성 전 회장은 일부 인사들에 대해 금품을 전달한 시점과 정황을 자세히 말했고, 실제 수사팀은 이 통과 녹취 파일을 제공받아 수사에 활용했습니다.

△문제는 수사 대상자들에 대한 검찰의 '차별 대우'

검찰이 가진 문제점은 이미 세간에 충분히 알려진 바였던 만큼 어쩌면 국민의 실망은 미진한 수사 결과 때문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보다 더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던 것은 여러 수사 대상자들을 대하는 검찰의 일관되지 못한 태도였습니다.

수사팀은 리스트 속 허태열·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에 대해서는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소환 조사 없이 수사를 마무리한 반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형인 건평씨에 대해서는 측근까지 소환해 가며 열을 올렸습니다.

전직 비서실장들과 건평씨에 대한 사법처리는 모두 '공소권 없음'으로 처벌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수사팀은 건평씨가 금품을 받은 경위와 액수까지 자세히 발표하며 공연히 흠집을 냈다는 논란이 제기됐습니다. 기소도 못하면서 괜한 '피의 사실' 공표 논란만 일으킨 것입니다. 건평씨는 변호인을 통해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정작 형사 재판에서 자신의 무죄를 입증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습니다.

검찰이 정권을 비호한다는 비판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전 정권을 흠집내는 데 검찰권을 이용한다는 지적도 하루이틀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수사팀이 리스트 속 인물들은 제쳐둔 채 굳이 전직 대통령의 친동생을 흠집 내는 수사결과를 내놓은 것은 이같은 세간의 비판에 스스로를 돌아보지 못했다는 반증이 아닌지 생각해 볼 일입니다. 그토록 강조하던 '기둥세우기'는 도대체 어디로 간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