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내각 운명의 카운트 D-1…과도내각부터 치프라스 잔류까지

그리스의 명운이 하루 뒤 결판난다. 그리스에서 현지시간 오는 5일 오전 7시(한국시간 5일 오후 1시) 시행되는 구제금융안 찬반 국민투표 결과와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의 사임 여부를 기반으로 크게 세 가지 시나리오가 부상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4일 보도했다.

첫째, 구제금융안 투표 결과 찬성이 우세하고 치프라스 총리는 사임하는 시나리오다. 이 경우 그리스는 집권 시리자(급진좌파연합)가 거국내각을 구축할 역량이 있느냐에 따라 운명의 분기를 맞는다.


최상의 방안은 시리자가 그리스 3대 야당인 중도우파 신민당, 중도좌파 파속, 친 유럽연합(EU) 성향 중도좌파 포타미와 손잡고 연정을 꾸려 협상을 속행·타결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전례로 2011년 그리스의 2차 구제금융 협상이 난항을 거듭하던 당시 집권 신민당의 게오르게 파판드레우 총리가 사임하고 과도 내각이 출범한 사례가 있다. 유럽중앙은행(ECB) 부총재 출신 루카스 파파데모스가 당시 총리로 취임해 연정을 이끌면서 2차 구제금융 협상을 빠르게 타결시켰다. 일각에서는 시리자 내부에서 실용주의자로 꼽히는 야니스 드라가사키스 부총리가 국민투표 후 잠재적 연정의 지도자로 거론됐다.

그러나 시리자 내부에서 적당한 지도자가 부상하지 않고 연정 구축도 파행을 겪으면 총선 정국이 불가피하다. 그리스가 데드라인인 오는 20일 전 까지 구제금융을 지원받지 못할 것도 뻔하다. 그리스는 그때까지 ECB에 35억달러의 채무를 상환해야 하는데 전문가들은 ECB에 대한 디폴트(채무불이행)는 그리스에 치명타라고 지적했다. 지난달 30일 IMF에 대한 디폴트는 어린애 장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ECB는 그리스에 빌려줬던 자금을 되돌려받지 못하면 그리스 은행권의 생명줄이었던 긴급유동성지원(ELA)을 중단할 수 있다. 이 경우 그리스는 결국 새 화폐를 찍어 자금을 조달할 수 밖에 없다. 이는 곧 그리스의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이탈(그렉시트)을 뜻한다.

총선의 향방도 미지수다. 신민당(76석), 파속(13석), 포타미(17석)는 시리자(149석)로부터 적어도 44석을 빼앗아와야 원내 300석 가운데 과반을 점할 수 있다.


둘째, 국민투표 결과 찬성이 나오더라도 치프라스 총리가 사임하지 않는 시나리오다. 이 경우 치프라스 총리는 채권단과 남은 협상을 재개하게 된다.

문제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반 치프라스 정서다. 유로존 관리들은 치프라스 총리가 지난 1일 TV에 출연해 그리스 국민들에게 반대표를 던지라고 종용하며 채권단이 그리스를 갈취하고 있다고 비난한 것에 격한 반감을 표하고 있다.

FT는 치프라스 총리가 유로존과의 균열을 메우고 대화를 재개할 준비가 돼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최근 예룬 데이셀브룸 유로그룹(유로존 재무장관 협의체) 의장은 치프라스 총리가 만약 구제금융 프로그램에 합의하더라도 이를 이행할지 믿기 어렵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그리스 연정의 소수정당인 독립 독립그리스인당(ANEL)이 탈퇴하고 포타미가 들어올 수 있다고 관측했다. 일부 유로존 관리들은 포타미가 연정에 합류하면 협상이 보다 수월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연정과 정부구조를 개편하는 작업을 오는 20일까지 마치기에는 지나치게 촉박하다는 문제가 있다.

셋째, 그리스 국민투표 결과 반대표가 우세한 시나리오다. 이 경우 그리스와 유로존간 갈등이 극단적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와 대통령,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 장-클라우드 융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의장들은 그리스 국민들이 반대에 투표하는 것은 곧 유럽의 분열과 그렉시트를 뜻한다고 경고해왔다. 그리스 정부는 채권단의 이 같은 발언들은 허세일 뿐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FT는 다만 그리스와 채권단 간 협상의 여지가 완전히 닫히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독일 언론들은 강경론자인 볼프강 쇼이블레 재무장관이 집권 기독민주당원들에게 비공개 회의에서 반대표가 곧 그렉시트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