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재정누수…전자증으로 막는다

머니투데이

베를린(독일)=이지현 기자

"독일 역시 한국과 마찬가지로 가족들이 보험증을 돌려쓰는 등 남용 사례가 많았다. 새로 도입한 전자건강보험증(IC카드)에 사진이 붙어있어 기본적으로 신분 확인을 할 수 있다. 1년에 14억8000만 명의 의사와 환자가 만나고 하루 400만 명이 약국을 방문한다. 이를 통해 50억 건의 문서가 생산되는데 이를 절약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독일 건강보험 IC카드 도입을 위해 2005년 설립된 '게마틱'의 요르크 마쿼트 관리책임자는 IC카드 도입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독일은 의료의 질, 경제성, 관리 투명성 등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건강보험 IC카드를 도입했다. 건강보험증 도용으로 매년 재정누수 규모가 커지고 있는 한국에서 IC카드에 주목하는 이유다.

◇건강보험증 도용 누수액 최소 3000억원= 지난해 국내 의료기관에서 다른 사람의 건강보험을 도용해 진료 받은 후 적발된 사람은 1202명. 이들은 의료기관을 4만5187번 찾았다. 이들이 쓴 건보재정 13억200만원은 모두 환수조치 됐다.

하지만 적발되지 않은 사례까지 포함하면 건강보험 도용으로 인한 재정누수 규모는 더욱 클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에 따르면 2012년 현재 국내 체류 외국인과 재외국민 중 건강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은 94만 명이다. 이들은 의료기관을 이용할 때 다른 사람의 보험증을 도용해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

이를 통한 재정누수액을 계산하면 3367억~7495억원이 빠져나가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적발 금액의 수백 배에 해당하는 규모다.

건보공단은 이 같은 재정누수를 전자건강보험증 도입으로 막을 수 있다고 판단한다. IC카드에 사진을 부착하고 진료시 보험증 제출을 의무화하면 신분을 쉽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경순 건보공단 징수상임이사는 "지역가입자 신분을 확인할 수 있는 제도가 만들어지지 않아 건강보험증을 대여하거나 도용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며 "이 같은 일을 막기 위해 IC카드 도입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주민등록 번호로 확인을 하고 있는데 노인, 어린이는 자신의 번호를 알지 못해 진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며 "IC카드를 가져가면 편리성 역시 높아질 것"이라고 했다.

◇중복 촬영 방지 등 다양한 목적으로 활용 가능= IC카드 도입은 건강보험증 도용 외에 엑스레이, CT(컴퓨터단층촬영) 등의 중복 촬영을 막는 데도 활용할 수 있다. 환자 정보를 전산화해 의료기관에서 IC카드로 읽을 수 있게 하면 불필요한 재촬영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김재원 새누리당 의원에 따르면 한 달 안에 같은 질환으로 다른 병원에서 CT(컴퓨터단층촬영), MRI(자기공명영상), PET(양전자단층촬영)를 재촬영한 환자가 2012년 기준 12만9405명이다. 이로 인해 건강보험 재정이 189억8900만원 낭비됐다. 월 평균 1만783명, 하루 평균 359명의 환자가 불필요한 중복 촬영을 해 월 평균 16억원을 낭비한 것이다.

독일은 건강보험 IC카드를 도입해 이 같은 중복 촬영을 해결했다. 라이너 후퍼 GKV IT시스템 전략팀장은 "의료 품질과 경제성을 개선하고 관리 투명성을 개선하기 위해 IC카드를 도입했다"며 "경제적 측면에서 같은 검사를 2~3번 받는 것을 막고 자료가 오가면서 일어나는 손실을 줄일 수 있다"고 했다.

IC카드와 빅데이터를 이용해 다양한 의료 서비스를 개발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독일에서는 병원이나 약국 등에 키오스크를 설치해 환자가 IC카드로 주변 의료기관 정보, 자신의 질환 정보 등을 관리하는 서비스가 등장했다.

독일의 인프라스트럭쳐 관리회사 DeGIV의 라스 클리에포드 공동대표는 "회사원이 아플 때 병원에서 진료 증명서를 떼 회사와 보험사에 각각 제출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사용되는 종이가 2억5000만장 규모이고 병원에서 증명서 한 장에 필요한 비용은 3유로"라고 말했다.

그는 "의료기관에 설치된 키오스크에 IC카드를 넣으면 자신의 질환에 맞는 의사 찾기, 개인정보 보관, 환자서류 보관, 병원예약 등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며 "문서 작업에 소용되는 비용이 줄고 환자들이 필요한 의료 정보를 손쉽게 구할 수 있게 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