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삼성 합병 표심' 10일·15일 중대기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연금의 표심이 이번 주 중대기로를 맞는다.


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늦어도 오는 10일까지는 삼성물산 (137,000원 ▼3,300 -2.35%)과 제일모직 (137,000원 ▼3,300 -2.35%) 합병에 대한 찬반 의결권 행사를 자체적으로 결정할지,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의결권위)에 위임할지 결정할 예정이다.

국민연금은 대부분의 기업 주주총회 의결권은 홍완선 기금운용본부장이 위원장을 맡고 실장급 위원 8명과 팀장급 위원 3명이 참여하는 투자위원회에서 결정하지만 민감한 사안이라고 판단할 경우 의결권위에 위임할 수 있다. 투자위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대한 의결권을 위임할 경우 의결권위는 시장 파장을 고려해 삼성물산의 합병 주총 하루나 이틀 전인 15일 또는 16일에 열릴 것으로 보인다.

국민연금은 아직 공식적으로 결정된 게 없다는 입장이다. 의결권 행사 방향은 물론, 의결권위 위임 여부에 대해서도 굳게 입을 다물고 있다. 다만 복수의 국민연금 관계자와 업계 전문가들의 얘기를 종합하면 현재까지는 합병 찬성 쪽에 무게가 실린다. 합병안 발표 이후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 등과 손잡고 삼성 경영진과 긴밀한 접촉을 유지하면서 주주가치 제고 방안 등을 논의한 만큼 이를 고려해 결정을 내리지 않겠냐는 관측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합병 시너지 효과와 합병 후 주주가치 제고 방안 등을 검토해 찬반 의사를 결정하겠다는 뜻을 삼성 측에 전한 것도 합병에 긍정적인 신호로 판단된다"며 "지난달 삼성물산 지분 추가 매수도 이런 과정에서 이뤄진 게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은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합병을 반대한다고 나선 지난달 4일부터 삼성물산 보통주 271만440주, 우선주 4290주를 추가 매수했다. 이에 따라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보통주 지분율은 10.15%(1585만861주)에서 지난달 30일 기준 11.89%(1856만1301주)로 늘어났다.

시장에서는 국민연금이 의결권 행사 지분으로 인정되는 11일이 지난 이후에도 삼성물산 주식 100만주 이상을 순매수하면서 지난달 추가 매수에 총 2000억원가량을 들인 배경에 주목하고 있다. 국민연금이 오는 17일 합병 주총에서 실제 행사할 수 있는 의결권 지분은 11.21%(1751만6490주)까지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합병 발표 이후 삼성물산 주가가 최근 3년간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고 합병이 무산될 경우 주가 하락으로 손실을 볼 수 있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추가 매수만 놓고 보면 국민연금이 반대 의견을 내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기관인 ISS는 지난 3일 합병 반대를 권유하면서 합병이 무산될 경우 삼성물산 주가가 23% 폭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국민연금이 투자위 차원에서 의결권 방향을 결정하기가 쉽지 않다는 게 변수다. 찬반 결정에 따른 책임 부담이 큰 데다 지난달 SK (153,500원 ▼3,300 -2.10%)와 SK C&C (153,500원 ▼3,300 -2.10%)의 합병안을 의결권위에 위임한 만큼 형평성 문제도 고민해야 한다. 의결권 결정이 의결권위로 넘어가면 합병 반대 의견이 나올 가능성이 한층 높아진다. 의결권위는 민간위원으로 꾸려진 사실상의 외부위원회로 국민연금 내부 분위기와 전혀 다른 판단을 내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의결권위는 의결권 판단 기준으로 수익성 못지않게 공공성을 중시한다. 지난달 SK 합병안에 대해 ISS와 한국지배구조원이 찬성을 권유했는데도 반대표를 던지기로 결정한 것도 합병비율과 자사주 소각 시점 등이 최태원 회장 등 오너 일가에 유리하게 결정되면서 SK 주주가치를 훼손했다는 이유였다.

지난해부터 의결권위에 위임된 사안은 SK 합병안을 포함해 3건으로 모두 반대 결정이 나왔다. 의결권위는 올 3월 현대차의 한국전력 부지 매입과 관련된 현대모비스와 기아차의 사외이사 재선임안과 지난해 7월 만도의 기업분할안에 반대표 행사를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