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온 중국 매출 2조원 향한 전략은?

오리온의 중국법인 하오리요우가 중국에서 가동하고 있는 허베이성 제2공장. /사진=원종태 특파원

그래픽=최헌정 디자이너

오리온 중국법인의 올해 매출 목표는 1조3500억원으로 한국 본사 매출액 7100억원 보다 두 배 가까이 많다. 중국 법인은 영업이익도 1650억원을 무난히 돌파해 본사 이익을 압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오리온처럼 연 매출 2조원이 넘는 대기업 가운데 해외법인 매출과 이익이 본사를 앞지르는 곳은 선례를 찾기 힘들다. '퍼스트무버(시장 선도자)'로서 오리온이 중국에서 쌓은 저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오리온처럼 13억 인구의 중국을 내수시장으로 만들겠다고 도전한 한국 기업은 한 둘이 아니었다. 식품 분야만 해도 오리온과 비슷한 시기에 내로라하는 한국 기업들이 너도나도 중국에 전진기지를 세웠다.


그러나 출발 총소리가 울린 후 오리온의 움직임은 남달랐다. 남들처럼 초반 기선을 제압하겠다고 덤비지 않았다. 다른 기업들이 진출 첫 해 수 백 억원의 매출을 올렸다며 으쓱할 때도 오리온은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자기 갈 길을 갔다. 진정한 퍼스트무버로서의 내공은 이 대목에서 빛난다.

◇오리온은 외상거래를 하지 않는다=담철곤 오리온 회장은 1997년 베이징 랑팡에 1호 공장을 가동하며 중국에 본격 진출할 때 '3대 원칙'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첫째 외상 거래는 절대로 하지 않고, 둘째 철저히 현지화한 제품으로, 셋째 한 걸음씩 나아가겠다는 원칙이다.

직원들은 속이 끓었다. "외상을 주지 않으면 어떻게 징샤오상(經小商·도매상인)을 뚫으라는 거냐?"며 볼멘소리를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 대부분의 징샤오상들은 식품업체 영업사원에게 제품을 먼저 받고 대금은 나중에 결제했다. 한국 식품기업들도 그렇게 수 백 억 원의 외상거래를 깔아놓고 매출 목표를 달성했다고 자화자찬했다.


담 회장의 원칙이 진가를 발휘하기까지는 오래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일부 징샤오상이 차일피일 대금 결제를 미루는 것은 물론 야반도주까지 했다. 4~5명의 주재원이 고작인 시절이어서 채권관리팀을 별도로 둘 수 없었던 한국 기업들은 속수무책으로 결제대금을 떼었다.

오리온은 달랐다. 처음에는 "무슨 헛소리냐"며 손을 내젓던 징샤오상들은 초코파이를 보내달라는 소매상들의 주문에 결국 오리온의 현금결제 원칙을 수용했다. 오리온도 현금거래 외에는 징샤오상의 고민을 자기 일처럼 풀어주려고 애썼다. 이렇게 오리온과 거래를 튼 징샤오상 중 차오피라는 중견 업체는 현재 매출 100억 위안(한국 돈 1조8100억원)의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래픽=최헌정 디자이너

◇중국인 입맛에 맞는 게 좋은 제품이다=철저한 현지화도 퍼스트무버 오리온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미국이나 유럽의 내로라하는 식품업체들은 13억 중국 시장은 탐이 났지만 자신들의 레시피는 꺾지 않으려 했다. 중국인이 좋아하는 맛을 찾기보다는 자신들의 제품에 중국인 입맛이 길들여지기를 원했다.

하지만 오리온은 처음부터 중국인을 위한 초코파이를 선보였다. 2003년 40명 규모의 자체 식품연구소까지 가동하며 중국 속으로 파고들었다.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최적의 밀가루 '메쉬'(1인치 내에 들어가는 입자 수를 나타내는 단위로 숫자가 클수록 고운 입자임)를 찾는가하면 과자 '하오뚜어위(好多魚·고래밥의 중국 브랜드명)' 주재료를 밀가루에서 감자로 바꾸기도 했다. 토마토 양념을 유난히 좋아하는 중국인이 많다는 점에 착안해 일부 제품 레시피는 한국과 전혀 다르게 쓰기도 했다.

눈앞의 실적보다는 확신이 섰을 때만 나아가는 원칙도 오리온을 강자로 만들었다. 중국에서 매출 1조원을 돌파했지만 오리온은 무리한 확장을 자제하고 있다. 베이징 랑팡에 첫 공장을 세운 이래 초기 가동률이 50%를 넘지 않으면 절대 공장을 짓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켰다. 2002년 상하이 공장과 랑팡 제2공장(2006년), 광저우공장(2009년), 선양공장(2014년)에 이르기까지 수요가 충분히 뒷받침돼야만 움직였다.

◇신 퍼스트무버 전략으로 2조원 시대 연다=중국 매출 2조원을 향해 뛰는 오리온은 이제 새로운 '퍼스트무버' 전략으로 재무장하고 있다.

하오리요우(好麗友·오리온의 중국 브랜드명) 과자와 파이, 껌을 시골 구멍가게 어디에서도 팔겠다는 '채널 확대'가 제1 전략이다. 하오리요우 판매 채널은 대형마트, 편의점 등 '모던 트레이드(Modern Trade)'와 동네 슈퍼마켓, 소매점 등 '트레디셔널 트레이드(Traditional Trade)'로 양분되는데 앞으로는 '넓이'에서 '깊이'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특히 트레디셔널 트레이드는 대형마트처럼 진열비용이나 행사상품 지원을 따로 요구하지 않아 식품업체 입장에서는 수익성이 높은 시장으로 통한다.

'지역 확대'도 오리온의 차기 승부수다. 오리온이 중국 전역에 진출했다고 하지만 중서부 쓰촨성과 화남지역 등 아직까지 하오리요우 제품이 없는 곳이 많다. 중국 서부의 신장자치구도 오리온이 마지막으로 승부를 걸어야 할 미개척지다.

'라인업 확대'도 2조 매출 달성을 위한 전략 중 하나다. 지난해 배우 이민호를 광고모델로 내세워 인기몰이를 한 'Q띠'는 초코파이를 이을 차세대 제품으로 통한다. 징둥, 타오바오 같은 온라인 시장도 오리온이 전담팀을 만들 정도로 놓칠 수 없는 신시장이다.

김흥재 오리온 중국법인 사장은 "지난 20년은 오리온이 먼저 움직이면 시장을 이끌 수 있는 퍼스트무버 게임이었다면 앞으로의 전략은 달라질 필요가 있다"며 "확대보다는 깊이를 중시하고 브랜드 가치를 끌어올리는 신전략으로 2020년 매출 2조원을 달성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