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고 수준 넘어선 그렉시트…IB "현실화 임박" 한 목소리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이탈)는 더 이상 위협이나 경고가 아니다."


지난 6개월간 지속된 그리스의 구제금융 연장 협상이 기대와 실망을 거듭한 끝에 결국 불발된 데다 그리스 국민들이 채권단의 개혁안에 압도적인 반대를 나타내자 그렉시트가 코앞에 닥쳤다는 관측이 널리 퍼지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대부분 그렉시트 가능성을 높게 본다. 모간스탠리와 크레티트스위스는 최신 보고서에서 그렉시트 발생 가능성이 75%라고 전망했다. 바클레이스도 그렉시트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코메르츠방크의 울리히 레흐트만 외환 투자 전략가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그리스가 정상화되기는 불가능해 보인다"며 "그리스 정부는 유로존 잔류를 주장하지만 그렉시트 발생 가능성이 더 높다"고 말했다. JP모간 역시 그리스가 유로존에 남는 것보다 유로존을 떠날 가능성이 더 크다고 진단했다.

유명 투자전문가들도 그렉시트를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채권왕' 빌 그로스는 6일(현지시간) 블룸버그TV를 통해 그렉시트 가능성이 최대 80%라고 말했다. 그로스와 막역한 모하메드 엘에리언 알리안츠 최고경제고문도 그렉시트 발생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하지만 그렉시트가 이같은 전망처럼 곧바로 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시장에서는 그리스가 유럽중앙은행(ECB) 채무 35억유로를 상환해야 하는 오는 20일을 그렉시트의 분수령으로 본다. 그리스가 지난주 국제통화기금(IMF)에 이어 ECB의 채무까지 상환하지 못하면 그리스 은행권의 생명줄인 ECB의 긴급유동성지원(ELA)이 끊길 수 있다. 이에 따른 금융시스템 붕괴는 그리스 정부의 유일한 돈줄이 끊기는 것을 의미한다. 이 경우 그리스는 자금 고갈로 인해 차용증서(IOU)를 발행할 가능성이 높다. 이중 통화 체계가 되는 셈이다.

이렇게 되면 그리스는 유럽연합(EU) 조약 위반으로 유로존 내에서 역할이 제한될 수 있다. ECB 집행위원회에서 투표권을 잃거나 유로존 재무장관 협의체인 유로그룹에 참석하지 못할 수 있다. 그렉시트나 마찬가지다. 귄터 외팅거 EU 집행위원은 독일 대중지 빌트(Bild)와의 회견에서 "병용통화(parallel currency)를 사용하는 국가는 유로존에 절대 어울릴 수 없다"고 못 박았다.

그렉시트가 현실화하면 그리스는 옛 통화인 드라크마화를 발행해야 한다. 하지만 이 또한 쉽지 않다. 우선 국제표준화기구(IOS)의 컴퓨터시스템에 드라크마화가 등록돼 있지 않다. 등록 자체는 하룻밤이면 충분하지만 문제는 실제 적용 기간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통화지불에 사용되는 메커니즘에 적용되기까지는 훨씬 더 많은 기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동안은 그리스가 국제 금융시스템에서 소외는 셈이다.

금리스왑이나 옵션과 같은 장기선물계약의 경우 새 통화를 적용하려면 까다로운 법적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 또한 오랜 시간과 검토 과정이 필요하다.

그렉시트 현실화 가능성이 커졌음에도 글로벌 금융시장은 일단 침착한 모습을 보였다. 독일을 비롯해 유럽 주요 증시는 이날 일제히 하락했지만 낙폭은 제한적이었다. 유로화는 주요 통화 대비 약세를 나타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안정을 되찾았다. 이날 달러/유로 환율은 전장대비 0.52% 떨어진 1.1056달러를 기록했다.

국채시장도 차분했다. 10년 만기 독일 국채 수익률(금리)는 이날 0.7615%를 기록해 전장대비 0.0258%포인트 하락하는 데 그쳤다. 영국, 프랑스 등 다른 유로존 국가들의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오히려 상승세를 보였다. 만기가 같은 미국 국채 수익률은 0.086%포인트 떨어진 2.296%를 기록했다. 그렉시트 공포에 따른 안전자산 수요가 크지 않았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렉시트가 현실화하면 금융시장은 곧장 패닉에 빠질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 등 재정취약국이 그리스의 뒤를 이어 유로존을 이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로존 엑소더스엔 투자자들이 동참할 게 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