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이 되기 전 마지막을 기록하고 싶었어요"

'19세 여고생' 편집장 성벼리씨./사진=김현정 기자

한국 사회의 고3 수험생에 대해 사람들이 느끼는 생각과 이미지는 비슷하다. 소위 명문대, 혹은 그에 준하는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치열한 입시 경쟁에 돌입하는 시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19세, 꿈 많은 나이지만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잠시 미뤄두는 것이 일반적인 상황.

그런 점에서 '19세 여고생' 잡지가 주는 의미는 놀라웠다. 지난해 사진에 관심이 많은 어느 고등학교 3학년 여고생이 만들었다는 이 잡지는 단지 고등학생들의 일상을 담았다고 표현하기엔 그 몽환적인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어느덧 20살이 됐다는 잡지의 편집장 성벼리씨는 "성인이 되기 전 마지막 시기인 19세를 기록하고 싶었다"고 그 의미를 담담히 전했다.


"중학교 2학년 때 아빠가 카메라를 선물해 줬어요. 그 카메라를 가지고 놀면서 중학교 때부터 사진을 꾸준히 찍었는데, 진로는 계속 못 정하고 있었죠. 단지 예술 쪽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우연한 계기로 사진에 관심을 가지게 된 그는 입시를 준비해야 할 시기가 돼서야 학원에 가서 전문적인 교육을 받게 됐다. 하지만 이론 중심의 수업이었고, 수능 성적이 필요했기 때문에 고등학교 3학년 때는 공부에 전념할 수밖에 없었다고.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바로 이 잡지였다.

"고3 때 사진을 찍는데, 정말 열심히 찍었는데 봐주는 사람이 없어서 슬펐어요. 저는 제 사진이 너무 마음에 드는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했죠. 제 사진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독립출판물을 좋아한다는 그는 특정 출판사와의 계약이 아닌 크라우드 펀딩(다수의 개인으로부터 자금을 모으는 것) 사이트를 통해 후원을 받아 잡지를 제작했다. 처음엔 부모님의 반대가 심해 비밀리에 진행했지만 반응은 뜨거웠다고. 종이 값만 해서 40만원을 목표 금액으로 걸었지만, 후원자가 많아 180여만원이 모이게 됐다.

19세 여고생 1호 '봄과 여름 사이'/사진=성벼리씨 제공

"야자가 10시에 끝나면 그때부터 새벽까지 잡지를 만들었어요. 편집과 마감으로 바쁜 시기엔 하루 3~4시간만 자고 작업에 집중했죠. 사진 찍는 일에 시간을 쏟아 부은 날에는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했어요. 제가 이거 하는 동안 다른 친구들은 공부했을 것 아닌가 하고요."

입시 준비와 잡지 제작을 병행한 그는 하루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고 했다. 공부를 하는 와중에도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 등을 이용해 친구들의 자연스러운 일상을 카메라에 담았다. 작업을 끝내고 나면 해야 할 공부가 쌓여 있어 정신이 없었지만 잡지는 수험생활 중 작은 일탈구가 됐다고.

"특별히 사진에 의미를 부여하진 않았어요. 단지 사진을 보여주고 싶었고, 19세의 제가 바라보는 세상을 19세가 아닌 사람들에게 전달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한편으로 이 잡지는 제겐 기록이에요."

그에게 이 잡지는 학창시절의 마지막 순간을 남긴 기억이자, 추억이다. 어떠한 연출 없이 친구들과의 교감을 통해 완성된 잡지는 그런 점에서 특별하다.

중앙대 사진학과에 입학한 그는 최근 20살의 초상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고 전했다. SNS 등을 통해 20살 또래 친구들의 신청을 받아 1년 동안 같이 촬영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아직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했거나 행정고시를 준비하는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다.

"저는 이제 미성년자가 아닌 성인이 됐고, 대학에 가면 대학생이라는 타이틀이라도 있지만 학교에 안가면 사회인이에요. 어리다고 보호해주는 게 많이 없어졌잖아요. 이제 갑자기 성인이 된 것에 대해 20살의 사람들은 어떻게 느끼고 있나 궁금했어요."

20살의 일상을 공유하는 이번 작업을 통해 그는 남자친구가 생긴 사람도, 하고 싶은 일을 발견한 사람도 있다고 했다. 그들 삶의 반환점을 사진으로 남기면서 많은 이들과 친구가 되고 있다고.

조만간 19세 여고생 3호가 제작될 예정이다. 아르바이트비와 남은 후원금을 가지고 만들게 될 3호에서는 흐름이 맞지 않거나 분량 제한으로 1,2호에 넣지 못했던 사진을 만나볼 수 있다.

그는 앞으로의 꿈에 대한 각오를 다지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아직까진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가 무겁지 않아 모르겠지만 돈을 많이 벌든 적게 벌든 상관없어요. 단지 사진으로 인정을 받았으면 좋겠고, 이 일을 오래오래 하면서 살고 싶어요. 지금 교환학생도 준비하고 있는데, 더 큰 세상에서 일하고 싶은 꿈도 있어요."

19세 여고생 사진집 작품 중 한 사진./사진=성벼리씨 제공